SEARCH

검색창 닫기

50이후의 부부는 동무다 : 말동무, 밥동무, 몸동무가 되자!

[라이프점프] 고선주의 ‘50이후 새로 쓰는 관계 이야기’ (4)



50대 이상이라면 어린 시절 동네 벽에 붙어있던 산아제한 포스터를 기억할 것이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저출산으로 고통 받는 지금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다. 자녀가 둘인 필자만 해도 형제는 넷이었고 아버지는 여덟 분의 형제가 있으셨으니 정확하게 세대가 지나면서 절반씩 감소한 셈이다. 평균수명은 길어지는데 자녀수가 감소한 것은 무엇보다 인생 후반전의 부부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막내 자녀가 혼인하기 전 배우자가 사망할 가능성이 높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자녀가 독립한 이후에 부부만 남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이다. 노후 생활에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은 배우자로 부부관계의 중요성과 결정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성이 커지는 부부관계는 오히려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황혼 이혼이나 졸혼 사례 등을 보면 노년의 부부관계는 그야말로 ‘검은 머리 팥 뿌리 되도록 백년해로 했습니다’ 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부부가 기억하는 두 사람만의 시기는 결혼 후 첫 자녀 출생까지의 짧은 신혼 기간인데 수십 년 지나 중년이후의 남녀로 마주섰을 때 서로의 모습은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여기에 은퇴라고 하는 사건이 더해져 둘이 함께 보내는 절대 시간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면, 두 사람간의 묵혀두었던 갈등이 수면위로 올라오기도 한다. 그간 사느라 바빠서 미뤄두고 양해해주던 많은 과거사가 하나하나 부각되는 것이다. 남녀가 아니라 부모로서의 역할을 우선하는 삶을 사는 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생활방식의 차이와 달라진 역할수행에 당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50이후의 부부관계는 어때야 할까?

가장 단순한 답은 ‘부부는 동무’라는 것이다. 말동무면서 밥동무이고 몸동무이기도 한 사람이다. 친한 사람이라는 뜻이 강한 ‘친구’보다 ‘동무’라고 표현하는 데는 무언가 일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삶을 살아가기’는 일을 함께 하는 친구란 뜻이다.

말동무, 밥동무, 몸동무 중에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말동무’이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고 소소하게 작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말동무이어야 한다. 조직생활을 하면서 논쟁을 하거나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논리적인 언어가 아니라 그야말로 소소한 대화, 잡담을 나누는 동무이어야 한다. 편한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오랫동안 소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어쩌다 우연히 10년 만에 학교동창을 만났을 때보다 매일매일 만나는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키우는 이웃과 더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함께 공감하는 맥락의 범위가 광범위해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의 감정과 상황을 쉽게 이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50이후의 부부는 서로가 함께 살아온 삶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소소한 대화를 나누기에 가장 좋은 파트너이다. 말이란 어느 일방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린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동무와 싸우지 않고 오래 같이 노는 비결은 단순하다. ‘나 한번, 너 한번’의 차례를 잘 지키기 때문이다. 그네를 탈 때 어느 누군가 밀어줘야 한다면 내가 열 번 타고 다음에 네가 열 번 타는 식으로 순서를 정해서 그 규칙을 따르면 된다. 부부간의 말도 같은 원리이다. 내가 말할 때 상대는 듣고 상대가 말할 때는 내가 듣는 차례를 지키면 된다. 내가 말할 때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서운함을 느낀다. 중요한 것은 내가 듣고 있다는 것을 상대에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상대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듣는다는 것은 말로 직접 표현하는 언어뿐 아니라 표정과 몸짓에 담긴 비언어적 표현까지도 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관찰하지 않으면 상대가 표정과 몸짓으로 보내는 신호를 들을 수 없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 그리고 들었다고 알려주는 것이 말동무의 기본 원칙이다.

두 번째, 부부는 밥동무가 되어야 한다. 부부는 밥을 함께 먹는 동무라는 뜻이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누군가 밥을 준비한다는 것을 가정한다. 밥을 준비하는 사람이 늘 정해진 것이 아니라 서로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중년 이후엔 나날이 쇠약해지는 부모님을 돌보는 일은 가장 큰 고민이고 본인들의 건강도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부모님이나 배우자가 아프거나 병원에 갈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즉, 50이후의 삶에서 누군가의 밥을 챙겨주는 일은 성별을 불문하고 피해갈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부부가 밥동무가 되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기본이 될 수 있다. 또한 밥동무란 단순히 식사를 챙기는 것뿐 아니라 함께 밥 먹는 것이 즐겁다는 의미도 갖는다. 식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고, 채워질 때 행복을 느끼는 인간의 공통적인 기본 욕망이다. 다양하고 창조적인 요리는 새로운 과업이 될 수 있다. 설계하고 준비하고 조합하고 그래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매우 어려운 작업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고 식탁에서 함께 나누는 대화로 관계는 더욱 성장할 수 있다. 함께 밥을 먹는 행위를 통해 비단 배우자뿐 아니라 새로운 타인과의 교류도 확장된다.

세 번째, 부부는 몸동무가 되어야 한다. 나이 들수록 건강은 악화되기 마련이다. 부부가 서로의 건강을 돌봐주는 트레이너 겸 주치의가 될 때 노년의 건강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어느 한 사람이 질병을 앓는다면 다른 배우자가 함께 병원에 다녀주고 의사 이야기를 같이 듣고, 서로 투약을 챙겨주고 식습관을 조절하도록 하는 것이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나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잘 이해하고 있는 나만의 전속 트레이너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서로의 건강을 돌봐주는 배우자가 가장 이상적인 동무다.

50이후의 부부란 이렇게 서로 삶을 같이 하기에 즐거운 말동무이고 밥동무이자 몸동무가 된다. 만약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를 꼽는다면? 이런 질문이 주어진다면 주저 없이 ‘말동무’라고 답할 것이다. 소소한 대화가 통하는 편안한 친구, 가장 이상적인 인생 후반전 부부의 모습이다.

/고선주 서울시50플러스재단 생애전환지원본부장
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
< 저작권자 ⓒ 라이프점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메일보내기

팝업창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