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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명의 생명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 여전히 반복되는 26년 전의 악몽

지난 6월 9일 전라도 광주 학사빌딩 붕괴 사고 발생,

26년 전 삼풍백화점 사고 이후에도 반복되는 설계·시공·유지관리의 부실

삼풍 사고 생존자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책 펴내

26년 전인 1995년 6월 29일 핑크빛이었던 삼풍백홰점이 무너지면서 일대가 핏빛으로 물들었다./이미지=이미지 갤러리


여느 때와 다름없었던 나른한 오후가 삶에서 절대 잊지 못할 악몽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지난 6월 9일, 아들의 생일상을 준비하기 위해, 병원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러 가기 위해,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던 사람들이 영영 우리 곁을 떠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라도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철거 중이던 학사빌딩이 7차선 도로변으로 쓰러지면서 정류장에 정차해 있던 버스를 덮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버스에 타고 있던 9명이 사망하고 중상자 8명이 발생했다. 사건이 발생한 순간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 사건으로 인해 삶이, 일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회적 참사는 대부분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시작된다. 광주 참사 역시 그랬다. 철거 업체가 건물 꼭대기 층부터 차례로 허물겠다는 계획서를 지키지 않고, 중간층부터 무너뜨려 발생한 어이없는 사고였다.

광주의 건물 붕괴사고는 26년 전 그날의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핑크빛 건물로 당시 서울 강남의 상징이었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바로 그것. 삼풍백화점 사고는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2개월, 성수대교 붕괴 8개월 만에 발생한 또 하나의 대형 참사였다. 사회적 참사에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던 사람들은 26년 전이나 된 이 사건이 매년 회자되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평생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최근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라는 책을 낸 저자는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날의 기억이 습도, 온도, 사이렌 소리, 피비린내, 회색빛 먼지구름까지 전부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나는 바람에 몇 번이나 도망가고 싶었다”고 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 중 한명은 최근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라는 책을 펴냈다./이미지=푸른숲


◆ 그날에 대한 늦은 후회, 붕괴 징후를 무시한 사람들

사회적 참사가 안타까운 이유는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역시 그랬다. 사건이 발생한 뒤 건물이 지어질 당시부터 문제가 있었던 게 드러나면서 ‘예고된 참사’라는 표현이 나오기도 했다.

지상 5층, 지하 4층, 옥상의 부대시설로 이뤄진 삼풍백화점은 설계 시 4층 대단지 상가로 설계됐으나 정밀 구조 진단 없이 5층 백화점으로 변경돼 1989년 완공됐다. 원래 건축구조를 변경할 때는 구조를 강화해야 하나 당시 삼풍백화점 측은 오히려 구조를 약화하는 방법으로 건물을 지어나갔다. 그 후에도 무리한 확장공사가 수시로 진행됐다. 전문가들은 이 건물이 완공 후 6년이나 버틴 게 대단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렇게 지어진 건물이었어도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붕괴 수개월 전부터 있었던 붕괴 조짐을 백화점 측이 무시하지 않고 제대로 보수만 했다면 말이다. 아니 사건 전날, 아니 사건 당일 오전에라도 붕괴 조짐을 인정하고 영업을 중지한 후 제대로 된 보수공사를 했다면 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영진은 응급조치로 대응하며 백화점 영업을 지속했다.

1995년 6월 29일 사건 당일 오전 9시, 5층 식당 천장이 뒤틀려 내려앉고, 바닥침하 현상이 발생한 데 이어 바닥이 기울자 백화점 측은 5층 식당가와 4층 귀금속 코너의 영업을 중단시킨다. 붕괴 약 1시간 전인 오후 5시에는 건물 4층 천장까지 내려앉기 시작해 백화점 측은 고객들이 4층으로 가는 것을 막았다. 이로부터 약 50분 뒤인 5시 52분 삼풍백화점은 먼지구름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이로 인해 사망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의 인명피해가 났다. 세계건물 붕괴 관련 참사 중 사망자가 10번째로 많은 참사였다.

사고 발생 1시간 전에만 직원을 포함한 고객들을 대피시켰다면, 실종자를 포함한 507명의 삶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의 저자는 생존자 937명 중 한 명이다. 살아남았지만 그의 삶은 이전과 달랐다. 저자는 “많이 아팠다”고 표현했다. 밖에서 멀쩡히 웃고 떠들고 돌아와 가만히 손목을 긋기도 했고, 일하다 말고 갑자기 집으로 가 수면제를 한 움큼 집어삼키고 누워있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세상은 생존자가 침묵하는 딱 그만큼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그에게 20년도 넘은 일이니 잊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2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삼풍백화점과 같은 사회적 참사가 계속 일어나고 과거의 실수가 반복되고 있는데 그때의 일을 과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형태와 이름을 바꿔 계속 일어나는 사회적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26년 전 그날의 악몽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정혜선 기자
doer01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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