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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점프 ‘커튼콜’] ‘노동자의 친구’로 살다간 ‘노회찬’이 그리운 시절

故 노회찬 의원 3주기, 2018년 7월 23일 우리 곁을 떠나

경기고 재학 시절 반독재 투쟁 참여

고려대학교 재학 시 용접기능사 자격증 취득해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 확보와 중소자영업자 위한 법안 등 발의


■ 라이프점프 ‘커튼콜’은…

유명 작가 스티븐 킹은 부고 기사를 쇼가 끝난 뒤 배우들이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서 인사하는 '커튼콜'에 비유했습니다. 부고 기사는 '죽음'이 계기가 되지만 '삶'을 조명하는 글입니다. 라이프점프의 '커튼콜'은 우리 곁을 떠나간 사람들을 추억하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를 되밟아보는 코너입니다.

노회찬 의원이 우리 곁을 떠난지 올해로 3년이 됐다./사진=노회찬재단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드는데 한평생을 바친 사람”

“자본에겐 단호했지만 노동자, 민중에겐 한없이 부드러웠던 사람”

“노동자를 마음에 담고 살았던 사람”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힘쏟아온 사람”

“약자를 위한 강자와의 싸움에 망설임이 없었던 사람”

우리가 기억하는 故 노회찬 의원의 모습이다. 우리 기억 속의 노 의원을 꺼내 보면 그가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노동가 출신 정치인 중 뼛속까지 노동자를 생각한 몇 안 되는 정치인으로 살다 우리 곁을 떠났다.

‘노동자’라 하면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하는 우리가 모두 노동자다. 노동자는 우리 아빠, 엄마이고, 내 남편이자 아내이며, 나 자신이다. 그런 노동자를 존중해주고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애쓴 사람이라 우리 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리운듯하다.

노회찬 의원은 1956년 8월 31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에게 여름은 특별한 계절이 아닌가 싶다. 무더운 8월에 태어나 한여름에 접어드는 7월에 우리 곁을 떠났으니 말이다. 노 의원은 어린시절 첼로를 배워 수준급의 첼로 실력을 자랑할 정도로 유복하진 않지만, 문화적으론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런 그가 노동운동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73년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 10월 유신에 반대해 반독재 투쟁에 참여하면서다. 당시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하는 일을 하며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그였다. 노 의원의 민주화운동은 1979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후에도 이어진다. 그러다 5?18 민주화운동을 겪곤 조직화된 노동자가 앞서야 근본적인 변혁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을 하게 된다. 1982년에는 지금의 서울산업정보학교인 영등포 청소년 직업학교에서 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따 용접공으로 일하며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1987년에는 6월 항쟁 이후 인천과 부천 지역의 노동운동 단체들을 모아 인천지역민주노동자동맹 출범에 앞장서며 인민노련 중앙위원으로 활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활동은 1980년 후반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조직화하는 데 큰 이정표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노 의원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거돼 2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1992년 만기 출소한 이후에도 노동운동가로서의 삶은 이어진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들은 아홉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 노회찬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런 나 그렇다고 이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 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 노회찬 의원을 말과 글을 엮은 책 <노회찬, 함께 꾸는 꿈> 본문 중-

노회찬 의원은 평생 노동자를 위해 살다 간 노동자의 친구다/사진=노회찬재단


노회찬 의원은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 노동운동가로서의 두 번째 삶을 시작한다. 합법적 정치세력화를 꿈꾸며 진보정당운동을 시작한 것. 2004년에는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17대 총선에 당선되면서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노동운동가에서 정치가가 됐지만, 여전히 권위주의나 엘리트주의를 싫어했다. 3선 의원으로서 7년 남짓 정치 활동을 하며 의정활동을 하면서 대중주의적 정치를 펼치려 했으며, 사회적 양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했다. 그런 그의 활동은 그가 발의한 법안을 보면 알 수 있다. 노 의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 확보와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 농민 생존권과 식량 주권 확보, 주택 및 상가 세입자 보호, 중소 자영업자를 위한 법안 등을 발의했으며, 호주제 폐지,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을 제정했다.

노 의원은 진보정당 추진위원회 및 진보정치연합 대표, 민주노동당 부대표 및 사무총장, 매일노동뉴스 발행인, 진보신당 대표,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정의당 원내대표 등을 역임하며, 많은 일을 해왔다. 그러나 그가 꿈꿔온 검찰 및 사법 개혁과 선거제도 개혁 등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래서 그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시절이다.
정혜선 기자
doer01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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