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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단절된 기간 조직 밖 생활에서 얻은 유연함이 자신감 돼”

신혜숙 메디비전 대표, 잘나가던 20년차 AE 자리 내려놓고 미국 MBA 유학길에 올라

5년 반의 경력단절 경험 후 스타트업에 재취업해 메디비젼 대표로 이직

경력단절 여성 과거의 화려한 ‘나’ 잊고 내면의 변화 맞이해야

신혜숙 메디비전 대표를 만나 경력단절 후 재취업까지의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비록 경력이 단절됐더라도 일에 대한 간절함이 크면 클수록 재취업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력단절은 가정을 둔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지나가는 과정과 같다. 신혜숙 메디비전 대표도 그랬다. 그는 국내외 메이저 광고대행사에서 20년 넘게 AE로 근무해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때 돌연 미국으로 MBA 유학을 떠났다. 주변에서는 신 대표의 퇴직을 만류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40대 중반을 넘어선 고학력 여성을 받아 줄 회사가 많지 않을 것이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에는 누구나 부러워할 그런 위치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1년 후를 예측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신 대표는 5년 후 더나아가 10년 후를 준비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고 경력단절이 시작됐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이 이어졌다. 그렇게 5년 반의 공백기를 맞이하고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신 대표는 결정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메이저 광고대행사 AE 경력 20년에 미국 MBA 학위를 가진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스타트업이었다. 연봉도 턱없이 낮았다. 그는 과거 자신에 비해 초라해진 것 같은 현실에 고민이 됐지만, 결국 스타트업으로 출근을 한다. “과거의 연봉을 생각하면 지금 스타트업에서 제시한 연봉이 낮을 수 있지만, 경력이 단절되면서 무뎌진 감을 회복하며 새로운 일을 배우면서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해보라”는 지인의 한마디가 그의 결정에 도움을 줬다.

신 대표는 경력단절 후 재취업하는 데 있어 과거와 달라진 조건에 힘들어하는 여성들에게 처음부터 딱 맞는 옷을 고르려고 애쓰지 말라고 조언했다. 재취업에 성공한다면 그 회사를 디딤돌 삼아 얼마든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라이프점프는 경력단절 후 재취업에 성공해 인생 2막의 문을 성공적으로 연 신혜숙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반갑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광고대행사에서 AE로 20년간 일했고, 이후 여행 및 레저 관련 스타트업 CMO를 거쳐 현재 비앤빛 강남밝은세상안과의 별도법인인 메디비전 대표를 맡고 있는 신혜숙이다.”

- 20년간 광고대행사에서 AE로 일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나.

“대학교 졸업 후 입사한 광고대행사에서 여성 AE는 나 혼자였다. 그렇게 일을 시작해 국내외 대표적인 기업들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광고캠페인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을 20년을 넘게 했다.”

- 혹시 만든 광고 중에 들으면 알 만한 광고가 있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5년 간 닌텐도DS와 닌텐도 위(WII)의 국내 런칭 광고캠페인을 시작으로 닌텐도 클라이언트의 광고마케팅 업무를 총괄하는 일을 했었다.”

- 정말 경력이 화려한데, 그 많은 경력을 내려놓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이유가 있다면.

“미국에서 MBA 공부를 하기로 결정하고 추진했던 그때 당시 나이가 40대 초중반이었다. 경쟁이 심하고 업무 강도가 세기로 유명한 광고업계에서 일하면서 나이가 너무 많아져 버렸다는 생각과 지금은 괜찮지만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일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앞으로 5년, 더 나아가 10년 뒤까지 경쟁력 있게 일하며 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배움과 도전을 통해 재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광고대행사에서 오래 일하며 얻은 경험과 능력을 살려 기업의 마케팅 필드로 커리어 전환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 흔히 말하는 박수 칠 때 떠난 셈인데, 그 결정에 후회를 한 적은 없나.

“공부하러 미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공부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거나 돌아와서 후회할 거라고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오히려 익숙하고 편했던 업무와 조직 생활에 그대로 안주해버렸다면 나중에 더 큰 위기가 왔을 거란 생각이 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미있는 도전이었던 것 같다.”

- 경력단절 여성들의 재취업 관련 고민 중 대표적인 게 고학력이다. 학력이 높을수록 재취업이 어렵다는 통계도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바로 그 케이스였다. MBA로 가방끈은 더 길어졌는데, 나이도 많아졌다(웃음). 당시 나를 굉장히 아끼던 광고업계 선배도 재취업이 쉽지 않을 거란 말을 했다. 좋든 싫든 그게 바로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그 현실을 단숨에 바꿀 수 없다면 우리가 바뀌어야만 사회로 나갈 수가 있다.”

-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까.

“과거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회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경력이 단절된 상태에서 재취업을 고려할 때는 그 사람의 내면에 큰 변화가 있어야 가능하다. 일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돈에 대한 가치,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을 토대로 과거와 다른 내면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전의 나와 자꾸 비교하면서 재취업이 안되는 이유를 사회 탓으로 돌리며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게 된다.”

- 미국 유학 이후 2년 반 정도 더 경력 단절 기간이 있었다. 자발적 공백이었나.

“아니다. 그 반대였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뒤 바로 재취업을 하려 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3년을 지내다 온 두 아이 모두 한국 학교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큰아이는 중학교 2학년,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다. 평생을 워킹맘으로 살아왔고, 미국 유학도 엄마인 나를 위한 선택이었기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잠깐 일을 멈추고 옆에 있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기간을 짧게 잡았는데 3개월에서 6개월, 6개월에서 1년을 넘어 결국 2년 반을 엄마로, 조직 밖의 자유인으로 살게 됐다.”

신혜숙 대표는 경력단절을 통해 경험한 조직 밖 생활이 지금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 비록 일은 쉬고 있었지만, 감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들었다.

“나중에 어떤 분야의 마케팅을 맡게 될지 모르니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려 했다. 특히 한살림의 지역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했다. 한살림에 제품을 납품하는 기업 탐방을 가 소비자로서 제품에 대한 조언을 하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과 인연을 맺고 함께 하면서 삶이 풍요로워진 시기였다. 그 경험을 통해 과거에는 위만 바라보고 이 사다리에서 떨어지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을 안고 살았었는데, 이젠 그 사다리에서 내려와도 옆의 다른 사다리로 건너가 커리어를 다양하게 넓혀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자신감도 생겼다. 비록 경력은 단절된 기간이었지만, 그것 또한 나에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 5년 반의 경력단절 기간이 있었는데, 다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모든 경력단절 여성이 다시 사회로 나가려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이고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나는 일을 쉬는 동안 ‘나는 다시 일 할거아, 준비된 나를 알아보는 회사나 사람이 분명히 있을거야’란 암시를 계속해왔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옛말처럼 일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은 덕분에 주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재취업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 경력단절 이후 스타트업에서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 결정을 하기까지 고민은 없었나.

“최종 결정을 하기까지 솔직히 고민이 많았다. 모든 경력 단절 여성이 그렇듯 나도 광고업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메이저 기업들에서 일을 했던 과거를 내려놓는 게 쉽지 않았다. 처음 들어본 회사인데다, 무엇보다 연봉이 너무 낮았다. 주변에서 미래 가치만 보고 열정 페이로 일하다 망해 사라지는 스타트업이 많다며 우려를 표혔다. 그런데 고민 끝에 아직 부족하지만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이야말로 나처럼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경력자가 필요한 곳이란 결론을 내렸다. 현실적인 조건이 나를 머뭇거리게 했지만, 내가 인생에서 중요한게 무엇인지를 가만히 생각했을 때 배움과 도전이 있는 회사를 선택했다. 그곳에서 일하며 생소했던 IT기반 이커머스 플랫폼 비지니스와 마케팅을 경험할 수 있었다.”

- 지금 메디비전에선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메디비전은 비앤빛 강남밝은세상안과의 별도법인으로, 비앤빛안과의 모든 광고 마케팅업무를 비롯한 의료관련 기업의 마케팅과 고객접점 의료 서비스 기획 업무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오랜 광고마케팅 필드에서의 경험을 살려 의료 분야에 있어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직원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 이제 50대에 접어드셨는데, 50대 일하기에 어떤 나인가.

“사실 나는 지금이 일에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기다. 결혼해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일과 삶의 균형이 항상 깨져 있었다. 지난해 이 회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큰아이가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육아로부터 자유로워졌고 가정에 대한 책임감도 줄어들었다. 자연스레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과거 힘들었던 그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해내온 결과 그땐 꿈꿔보지 못한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 지금까지의 삶을 뒤돌아 봤을 때, ‘일’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도전하게 했고 때론 좌절도 맛보게 해준 나를 키워준 친구다. 이제야 내가 이 일이란 친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좀 알 것 같다. 많은 짐이 어깨에 지워졌을 땐 몰랐던 사실이다. 이젠 언젠가 지금의 대표라는 자리에서 내려오더라도 방황하지 않고 인생을 충분히 즐기며 또 다른 일을 찾아서 삶을 풍성하게 만들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순전히 경력단절과 유학이라는 조직 밖의 생활에서 얻게 된 자신감이다. 나는 경력단절된 여성들이 더 유연할 수 있고 더 잘 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혜선 기자
doer01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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