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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50년·배우의 65년···'내공의 무대'가 온다

[가을 문턱 줄잇는 명품 연극]

◆등단 50주년 이강백作 '신데렐라'

인간의 욕망 담긴 빨간구두

21개의 에피소드로 담아내

12일까지 아트원씨어터서

◆창단 70주년 국립극단 '만선'

작년 코로나로 취소후 올해 다시

'바다 위 치열한 生' 현실 속 투영

19일까지 명동예술극장서 열려

◆ 연기인생 65년 이순재의 '리어왕'

'역대 최고령 리어왕' 타이틀로

오만함에 가린 진실의 가치 조명

내달 30일 예술의전당서 개막


시간과 경험이 쌓여 만든 깊고 진한 맛의 연극 작품이 잇따라 관객을 찾아온다. 무르익은 이야기와 연기, 그 축적의 내공이 선사할 무대는 더위의 끝자락, 이제 막 시작되는 가을의 문턱에서 이 계절에 어울리는 묵직하고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작가 이강백의 신작 연극 ‘신데렐라’/사진=아트리버

■작가의 50년…이강백 신작 ‘신데렐라’
인간의 욕망을 묻는 빨간 구두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은 작가 이강백의 3년 만의 신작 ‘신데렐라’는 ‘빨간 구두’로 상징되는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신데렐라 구두가 유리 구두가 아닌 빨간 가죽 구두였다는 설정 속에 이 구두가 주인을 찾는 여정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삶을 21개의 에피소드로 담아냈다. 그 옛날 신데렐라였다는 할머니와 그녀의 손녀, 단조로운 삶을 사는 톨게이트 직원, 아픈 딸을 둔 엄마… 세 명의 여배우로 완성하는 각기 다른 20여 명의 캐릭터를 연결하는 것은 빨간 구두다. 매혹적인 자태로 사람을 사로잡지만, 야속하게도 구두는 그 누구의 발에도 맞지 않는다. 맞지 않는 신발에 억지로 몸을 맞추려 애쓰는 인물들은 ‘내 것 아닌 무엇’에 집착하는, 성별 나이 불문의 너와 나다. 발에 딱 맞는 것을 찾겠다며 빨간 구두를 347켤레 샀다는 여자는 앞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허기와 가시지 않을 갈증에 허덕이며 378번째, 379번째 구두를 살 것이다. 색깔을 볼 수도 없고, 그래서 구두를 신고 거리를 누빌 수도 없는 눈먼 여자는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눈을 감고 구두에 올라타 환희의 춤을 춘다. 반복되는 패턴의 에피소드는 극 중 등장하는, ‘빨간 구두 하나 지나간다, 빨간 구두 둘 지나간다…’의 끝이 없는 시(詩)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욕망과 집착을 보여준다. 관록의 배우 김화영·강애심과 27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신인배우 박소영의 호흡도 인상적이다. 12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연극 ‘만선’/사진=국립극단

■극단의 70년…국립극단 ‘만선’
비정한 바다 위 치열한 生의 의지


만선은 국립극단이 지난해 70주년 기념으로 공연하려다 코로나 19로 취소했던 작품이다. 1964년 국립극장 희곡 현상공모 당선작으로 같은 해 7월 초연했다. 작은 섬마을을 배경으로 평생 배 타는 일밖에 몰랐던, 그래서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어부 곰치 가정에 서민들의 무력한 현실을 동시에 투영해 호평받았다. 뗏목 마냥 경사진 무대 끝자락엔 반쯤 기운 판잣집이 위태롭게 걸쳐 있다. ‘뱃놈 인생’을 고집하며 만선을 꿈꾸는 곰치의 집이다. 지독한 가난과 선주의 빚 독촉, 바다에서 먼저 보낸 아들 넷, 그리고 부자 후처로 팔려갈 처지에 놓인 딸까지. 곰치가 싸우는 건 거칠고 냉혹한 바다뿐만이 아니라 이보다 더 잔인한 인간과 그들의 탐욕이다. 금방이라도 파도에 휩쓸려 부서질 것 같은 집이 곰치 그 자체로 보이는 이유다. 60년대 쓴 작품이지만, 한 개인을 둘러싼 고난과 이를 극복하려는 강인하고도 무모한 생(生)의 의지는 2021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다.

연극 ‘만선’/사진=국립극단


모든 것을 잃고 망연자실한 곰치와 실성한 아내 구포 댁이 우두커니 선 집 마당. 그 위로 세차게 비가 내리치고, 거친 파도가 휘몰아친다. 야속하게 퍼붓는 비와 파도는 그렇게 누군가의 터전을, 삶을 집어삼킨다. 곰치는 말한다. “바다는 못 속인다”고. 곰치 가족을 속이고, 파멸로 몰고 간 게 매정한 바다가 아님은 분명하다. 배우 김명수(곰치)·정경순(구포댁)과 국립극단 시즌단원, 그리고 과거 국립극단의 단원으로 활동했던 원로 배우들의 세대를 초월한 연기 조화에 박수를 보낸다. 19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연극 ‘리어왕'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이순재/사진=파크컴퍼니

■배우의 65년…이순재 ‘리어왕’
오만함에 가려졌던 진실의 가치


“나이 먹어 햄릿은 어렵겠지만, 리어왕은 할 수 있겠지.” 지난 2014년 배우 이순재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욕심 나는 배역’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젊은 시절 노인 연기를 많이 하느라 햄릿 역을 못했다”고 아쉬움을 털어놓은 뒤였다. 오는 10월 이순재가 연기인생 65년을 맞아 리어왕으로 무대에 선다. 역대 리어왕 연극 중 최고령(88세) 타이틀 롤이다. 서울대 관악극회와 예술의전당이 공동 주최하는 연극 ‘리어왕’을 통해서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은 인간 존재와 인생의 근본적인 성찰과 함께 아름다운 시적 표현으로 유명하다. 행복한 은퇴를 꿈꾸던 왕이 경험하는 비극과 처절한 삶의 여정을 통해 진실의 가치를 조명한다. 이순재는 모든 것을 소유한 절대 권력자인 왕에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리어왕 역을 맡았다. 그는 “기존에 있던 공연들과 달리, 제대로 된 리어왕을 보여주겠다”며 “65년 연기 인생의 경험을 모두 녹여내겠다”는 열의를 내비쳤다. 국내외의 대표적인 셰익스피어 학술단체 임원을 지내고 셰익스피어 작품의 번역, 연출, 드라마트루그로 활약해온 이현우 순천향대 교수가 연출과 번역을 맡는다. 10월 30일~11월 21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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