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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재생은 장기 프로젝트··· 지속 가능 하려면 10년은 해야죠"

충남 부여 '자온길 프로젝트' 박경아 세간 대표

"100년 문화 마을 조성 목표로

3년 전 인구 6만 소도시로 낙향

버려진 한옥·담배집 등 온기 담아

이젠 SNS 핫플레이스로 탈바꿈

"단기로 매달려선 지속 가능 안해"

자온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박경아 세간 대표가 충남 부여 규암길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작은 한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도시재생을 할 때 10년 이상을 봅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단기간에 끝내려 하죠. 그래서는 지속 가능성이 없습니다.”

충남 부여에서 도시재생을 위한 ‘자온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박경아(40·사진) ㈜세간 대표는 23일 자신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작은 한옥’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청년들이 자유롭게 창작하며 오랫동안 먹고살 수 있는 농촌 관광의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23세 때 3평짜리 1인 기업을 창업한 박 대표는 서울에서 17년 동안 사업을 해온 사실상 ‘서울 사람’이다. 서울 인사동과 삼청동 등지에서 전통 공예 관련 의류와 작품을 소개하는 매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박 대표가 자온길 프로젝트를 하겠다며 인구 6만 2,000명의 소도시 부여로 내려간 것은 3년 전이다. 100년 동안 변하지 않는 문화적 마을을 만들겠다는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그는 “서울 삼청동과 경기 파주 해이리에도 건물을 지었지만 월세가 너무 올라 정작 있어야 할 작가들이 떠나는 현상이 가슴 아팠다”며 “그들이 오랫동안 머물며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자온길’이란 ‘스스로(自) 따뜻해지는(溫) 길’이라는 뜻으로 버려진 거리를 다시 사람들의 온기가 도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온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박경아 세간 대표가 충남 부여 규암길에 있는 한옥 ‘이안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부여읍 중심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규암길. 예전에는 나루터가 존재해 선술집·여관·양조장 등이 즐비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지금은 사람들 뇌리에서 잊혀진 곳이다. 당연히 땅값·집값이 싸다. 새로운 거리를 만드는 데 비용 부담이 적다는 의미다. 다른 이점도 있다. 부여는 백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부여가 아름다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경주나 전주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문화 콘텐츠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곳을 ‘숨은 보석 같은 곳’이라고 말한 이유다.

충남 부여에서 진행 중인 자온길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린 '책방 세간'.


시작은 버려지고 허물어진 건물에 숨결을 불어넣는 것부터.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린 독립 서점 ‘책방 세간’은 원래 담배 가게였고 지금은 카페가 된 ‘수월옥’도 예전에는 요정이었다. 철거 위기에 놓였던 ‘작은 한옥’은 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했고 백년 한옥 ‘이안당’도 조만간 박물관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한옥들이 단지 시간이 오래되고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철거되는 현실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비단옷이 중요하지만 모시·삼배옷도 소중한 것처럼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들”이라고 강조했다.

자온길 프로젝트의 한 공간인 이탤리언 식당으로 운영 중인 ‘더 테이블’.


쉬운 일은 아니다. 공사 현장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진척 상황을 지켜봐야 하고 필요하면 벽지나 페인트칠도 직접 해야 한다. 당연히 흙·먼지와 친구가 될 수밖에 없다. 인터뷰 장소에 흰 운동화에 흙을 잔뜩 묻히고 나타난 박 대표는 “서울에서는 항상 힐을 신고 다녔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며 “때로는 식모, 때로는 청소부가 돼야 하고 어떤 때는 인부도 돼야 할 만큼 노동 강도가 세다”고 귀띔했다.

자온길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거리는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처음 5개였던 매장은 3년이 지난 지금 30개 이상으로 늘었다. 그럼에도 외지인의 눈으로 봤을 때 거리는 여전히 한산하기 그지 없다. 문화적·예술적 가치를 담은 더 많은 장소가 생겨나야 한다는 의미다. 박 대표가 도시재생을 10년 이상의 장기 프로젝트로 추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창업을 위해 이곳을 찾는 청년들에게 결코 환상을 갖지 말라고 당부한다. 박 대표는 “지방에서 창업하는 것은 굉장히 큰 결심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며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생각하면 안 된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전쟁 영화로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사진(부여)=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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