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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수익률 3%P 오르면 28년 뒤 1억差···'쥐꼬리 퇴직연금' 뗀다

[연금부자 시대 온다]

<상>디폴트옵션發 '92조 머니무브'

미국 수익률 8.6%·濠 7.7% 달하지만 韓은 2%대 그쳐

알아서 자산배분 매력…예금에 묶인 수백조원 움직일듯

ETF에 자금 유입 등 美처럼 증시에 버팀목 가능성도



일 년에 300만 원 정도의 투자금을 굴린다고 할 때 연 1~2%의 수익률 차이는 고작 십여 만 원 수준으로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2%포인트 이상의 수익률 격차가 20년 이상 이어질 경우 손에 쥐게 되는 자산은 제법 커진다. 이자가 이자를 낳는 복리 효과 때문이다.

실제 서울경제가 키움자산운용에 의뢰해 월 300만 원의 급여를 받는 만 28세 직장인이 연평균 1.4% 수익률을 주는 예금 상품과 연평균 4.0~5.0%가량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중위험 투자 상품에 각각 투자하도록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만 55세 은퇴 시점에 받게 되는 연금 자산은 1억 원까지 벌어졌다. 예금으로 운용할 경우에는 약 1억 7570만 원이 적립됐지만 펀드 등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해 연평균 5%의 수익률을 낼 경우 2억 7643만 원까지 자산이 불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퇴직연금 가입자의 대다수는 아직도 연금 자산 대부분을 연 1~2% 수익률의 예금에 방치하는 경향이 높다. 12일부터 도입되는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는 바로 이런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퇴직금 운용 수익률을 높여 안전한 은퇴를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퇴직연금 적립금을 굴릴 만한 적절한 금융 상품을 결정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을 경우 은행·증권사 등 사업자와 미리 협의해둔 상품에 적립금이 자동 투자되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연금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호주 등은 이 같은 디폴트옵션 도입을 통해 연금 가입자들의 수익률을 연평균 6~8%까지 대폭 끌어올렸다.

◇韓 2.73% VS 美 8.6%…수익률 3배 차이 낸 디폴트옵션=퇴직연금 수익률, 특히 근로자인 가입자가 적립금 운용 결과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이나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수익률은 근로자의 은퇴 자금 마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아직도 DC형·IRP 가입자들의 적립금인 약 125조 원 중 76%에 달하는 92조 원은 연 1~2% 수익률을 제공하는 예금이나 보험 등에 머물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DC형 가입자의 수익률은 2.49%, 개인형 IRP 가입자는 3.0%에 그쳤다. 회사가 적립금을 대신 운용해주는 확정급여(DB)형 가입자의 수익률(1.52%)보다는 높았지만 지난해 명목 임금 상승률(4.6%)은커녕 최근의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미국·호주 등 연금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한국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은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한국 DC형 가입자의 경우 지난해까지 10년 장기 수익률이 연평균 2.73%에 그쳤지만 미국은 8.6%, 호주는 7.7%로 3배가량 높았다. 국가 간의 차이는 가입자가 예금 등 저수익, 원금 보장형 상품 대신 펀드 등 실적배당형 상품을 선택하도록 독려한 디폴트옵션에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 2006년 디폴트옵션 등을 담은 연금보호법을 제정한 미국의 경우 2019년 말 기준 적립금의 98%가 타깃데이트펀드(TDF) 등 금융 상품에 투자되고 있다. 1992년 일명 ‘마이슈퍼(My Super)’로 불리는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호주 역시 2021년 말 기준 예금 등 원금형 상품에 투자되는 적립금은 전체의 9%에 그쳤다.

◇예금에 묶인 100조 원 ‘머니 무브’ 일어날까=고용노동부나 금융투자 업계가 디폴트옵션 도입을 통해 기대하는 효과 역시 바로 미국·호주와 같은 실적배당형 상품으로의 ‘머니 무브’다. 실제 디폴트옵션을 통해 가입자가 사전운용지시를 할 수 있는 상품에는 가입자의 생애주기에 맞춰 위험·안전 자산의 배분을 알아서 정해주는 TDF나 운용사가 시장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자산을 배분하는 밸런스펀드 등 장기 투자 시 원금의 손실 가능성이 낮으면서도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간접투자 상품이 주로 포함됐다.

금융투자 업계는 디폴트옵션 도입으로 당장 미국처럼 ‘연금 백만장자’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가입자들이 금융 상품의 수익률 등을 보다 꼼꼼히 따지는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고 있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이사는 “디폴트옵션이 불러올 가장 큰 변화는 가입자들이 자신의 퇴직연금을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이라며 “내 연금이 어떤 상품에 투자되고 있고, 얼마나 쌓였으며, 어떻게 굴려볼 수 있는지를 고민하면 할수록 금융 상품의 수익률이나 매력, 연금 사업자의 책임감 있는 운용 등에 대해서도 꼼꼼히 따져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에서 은행·보험·증권사 등 연금 사업자들의 수익률 및 수수료 경쟁이 펼쳐질 수 있다는 점도 가입자들에게는 긍정적인 요소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퇴직연금(401K)이 증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듯 국내에서도 퇴직연금발 머니 무브가 증시를 끌어올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강송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의 퇴직연금 증가세를 감안하면 2024년 국내 DC형 및 IRP 적립금은 200조 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401K의 자금 흐름 등을 고려할 때 원금비보장(실적배당) 투자 비중이 20%만 늘어난다고 가정해도 현재 기준 40조~50조 원의 자금이 증시와 상장지수펀드(ETF) 등으로 유입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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