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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예순 여덟, 나는 여전히 상상력이 고프다"

[창간 인터뷰(4)] 인기 만화작가 장태산

'야수라 불리는 사나이', '스카이레슬러' 등

1980~1990년대 인기 만화 다수 연재

종이책에서 온라인으로 만화 시장 재편 속

40년 넘게 작품활동 이어가

2015년부터 네이버 '몽홀' 연재

"만화는 내 존재 이유...체력은 문제 없어 상상력 고갈이 고민"


중학생 시절 인기 주간 만화잡지 아이큐점프에 연재된 ‘스카이레슬러’의 장면은 20년이 흐른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링 위에 서 있는 레슬러들의 박력 있는 표정과 근육의 꿈틀거림이 수많은 펜 터치를 통해 종이 위에 고스란히 담겼다. 잠깐이라도 딴 생각을 하면 만화 속 레슬러들이 종이를 찢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웹툰에 익숙한 요즘 젊은 세대는 잘 느끼지 못할 묵직함이라고나 할까.

만화를 그린 장태산(68) 화백은 힘이 넘치고 세밀한 극화체로 1990년대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앞서 1980년대 중반엔 ‘야수라 불리운 사나이’가 대본소(만화가게)에서 큰 히트를 쳤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또 다른 만화잡지 보물섬에 ‘소림사의 바람’, ‘나간다 용호취’를 잇따라 연재했다. 그 시절 보물섬, 아이큐점프를 읽으며 자란 지금의 4050 세대에게 장 화백은 청소년기의 기억을 통째로 소환시켜주는 ‘향수’ 그 자체다. 라이프점프는 지난 2015년 대하 서사극 ‘몽홀’을 네이버 웹툰에 연재하기로 한 이후 이렇다 할 대외 활동 없이 작품 활동에만 매진해온 그를 경기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내 작업실에서 만났다.


- 2016년 언론 인터뷰를 끝으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질 않으셨다. 장 화백님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4050 세대들이 많다.

“2015년 1월부터 네이버 웹툰에 ‘몽홀’을 연재하고 있다. 일주일 단위로 마감이 돌아오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다. 금요일 하루 정도만 쉬고 나머지는 작품 연재에 몰입해왔다. 그러고 보니 10대 때 내 작품을 읽던 청소년들이 이제 40~50대이겠구나. 고맙다.”

- 1980~1990년대 종이 만화 부흥기에 스타 작가 가운데 한 분이었다. 웹툰은 작업 방식도 다르고, 소비하는 층도 다르다. 그럼에도 웹툰을 하기로 한 이유는.

“솔직히 말하면 첫째는 돈을 벌어야 했다. 둘째는 40년 이상 그림만 그려온 사람이 평생 해왔던 일을 중단할 수 없었다.”

- 만화 시장이 종이 기반에서 인터넷 기반으로 바뀐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나.

“그렇다. 만화 시장이 웹툰으로 재편되는 과도기에도 종이 만화책을 출판 기획하는 회사가 있어서 그 쪽 일을 했다. 하지만 한계가 왔다. 열심히 그리는데 노출이 안되니 주변에서 ‘나이 먹어서 은퇴했느냐’는 소리나 듣고.(웃음) 곰곰이 ‘에잇, 때려 칠까 ’ 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난 만화 그리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무너지는 집에서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기분으로 웹툰을 시작했다. 변화에 동승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도태되는 것 아닌가. 만화라는 건 보는 사람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인데 독자들이 보는 창이 종이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었으니.”

- 그래도 평생을 종이 위에 만화를 그려오셨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쉽진 않다. 무엇보다 세대 간 감정을 공유하는 게 어렵다. 우리 직업의 주요 독자층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10~30대가 주류다. 내가 40대였을 때만 해도 독자들과 공감대를 어떻게 형성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60대 후반의 나이가 되니 요새 아이들 노래를 들으면 ‘저게 노래인가’ 싶기도 하고.(웃음) 난 조용필 세대라 그 시대의 노래를 들으면 와 닿는 게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힙합을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나름 젊은 세대와 공감하기 위해 음악 TV를 틀어 놓고 억지로라도 들으려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노력으로만 끝나고 감정이입이 잘 안된다. 거기서 겪는 고충이 있다.”


- 대단한 열정이다. 젊은 독자와 소통하려는 노력이 인상적인데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는 있지만 의미 없는 삶이 되기 쉽다. 첫째로 돈을 얘기했지만 사실 이게 더 중요한 가치다. 평생 해온 일인데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면 그 허탈감은 굉장하다. 주변에 그런 작가 친구들이 많다.”

- 2015년부터 네이버 웹툰에 ‘몽홀’을 연재하고 있다.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나

“만화작가로서 체력보다는 상상력 고갈이 더욱 견디기 힘들다. 몽홀을 연재한 이후 잠깐씩 쉰적은 있어도 길게 휴재한 적은 없었다. 지금껏 5년 연재했고, 앞으로 5년 더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지금까지 연재한 작품을 정리해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연재를 1~2회 쉰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최근 네이버 측과도 두 달 정도 쉬면서 재점검을 하기로 얘기했다.”

- 4050세대는 만화 작가하면 화백님을 떠올린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주호민, 기안84, 이말년 등 젊은 웹툰 작가를 얘기한다. 화백님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웹툰 연재는 처음이지만 종이매체엔 수십 년 간 연재를 한 경험이 있다. 요새 젊은 작가들 보면 힘을 많이 쏟아 붓는다. 육상선수로 치면 단거리 선수다. 하지만 나는 마라톤 경험이 많은 장거리 선수다. 내 스스로 호흡을 조절하는 것이 습관화돼 있다. 이건 좀 슬픈 얘기지만(웃음) 나에겐 절박함이 있다. 젊은 시절엔 살아갈 시간이 많았고 그릴 수 있는 작품도 다양했지만 이젠 그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

- 만화를 대하는 작가들의 태도도 예전과 지금이 다를 것 같다. ‘맞다, 틀리다’ 혹은 ‘옳다, 그르다’를 묻는 건 아니다

“동의한다. 난 옛 시절과 지금은 다르다고 본다. 내가 만화가의 길로 들어설 때는 ‘이것이 돈벌이가 될까 안될까’를 따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모래사장 위에서 성을 쌓듯이 좋아서 뛰어든 거다. 하지만 요즘 젊은 작가들은 목적의식이 뚜렷하다. 웹툰을 통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거다. 만화를 여성에 비유한다면 난 만화와 짝사랑에 빠져 산 거고, 젊은 작가들은 필요에 의해 만화와 사는 것 아닐까. 난 노트르담의 곱추처럼 그냥 만화가 좋아서 아무런 계산 없이 만화를 시작했고 여기까지 왔다. 젊은 작가들이 보면 미련하게 보일 수 있는 해바라기 같은 사랑인거다.”

- 화백님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작가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어찌 보면 그래서 웹툰으로 전환한 분들이 거의 없는 것 일수도 있겠다.

“그렇다. 주변에 나처럼 웹툰을 그리고 싶은 친구들 꽤 있다. 하지만 아까 얘기했듯이 젊은 세대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게 쉽지 않다. 웹툰 회사들에서 ”저 사람은 감정이나 감각이 떨어져서 안된다“며 기회 자체를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친구 이현세와 그런 얘기를 자주 한다. ‘옛날 생각 다 잊고 변화한 시대를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 너나 나나 그래도 기회를 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자.’ 젊었을 땐 상상할 수 없던 대화다. 자존심 상한 일이지만 30~40년 내 인생을 쏟아부은 일을 못한다는 건 그야말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 나이와 상관없이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 화백님이 후배 작가들이 오래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 아닌가.

“후배들이 ‘내가 늙어서도 작품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힘이 된다’고 생각해주면 고맙다. 하지만 내가 롤 모델이 될 수 있을까는 망설여진다. 젊은 사람의 미래는 예단할 수 없다. 그게 만화 작가라도 마찬가지다. 꼴랑 40~50년 세상 경험을 갖고서 후배들에게 앞으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얘기를 못하겠더라. 20~30년 전만 해도 후배들에게 무조건 실력을 키우라고 했다. 지금 당장 배고프고 못 씻어도 미래를 위해 실력을 키우는 게 중요했다. 그러면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양분이 될 거라고 봤다. 그땐 그게 맞았다. 하지만 요샌 틀리다. 직장인들 봐라. 마흔 살 중반만 되면 회사에서 내쫓기는 분위기를 느낀다. 평생 만화만 그리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을 못하는 거다. 될 수 있으면 말을 안 하려고 한다. 노인네들이 하는 말 중에 가장 멋있는 말이 뭔 줄 아나. ‘입은 닫아라. 그리고 귀와 지갑만 열어라.’ 지갑을 열려면 돈을 벌어야 하니 웹툰을 그리는거다.(웃음)


- 화백님의 경력을 고려하면 강의, 인터뷰 요청이 많을 것 같은데. 한동안 대외 활동이 없었다. 위와 같은 이유에서였나

“그렇다. 자기가 존경하는 부모님이나 선생님, 선배들이 그냥 하는 말이 젊은 아이들에겐 지침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젊은 시절 일 할 때는 회사가 힘들어도 몇 달 간 임금 동결하고 버티자고 하면 다 그렇게 했다. 요즘은 그렇게 이야기했다간 ‘말이야 똥이야’ 그럴 거다. 야속하지만 그게 맞다. 세상이 변했다. 그런데 과거의 얘기만 해줄 순 없지 않은가. 나는 만화가 좋아서 만화가가 되고 싶어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걸 젊은 세대에게 강요할 순 없는 거다. 강연, 인터뷰 요청을 다 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 장 화백은 아들의 부탁(?)에 라이프점프의 인터뷰에 응했다. 그의 아들과 기자는 중학교 동창이다.)


-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 ‘야수라 불리는 사나이’, ‘나간다 용호취’, ‘스카이레슬러’ 등 이름만 거론해도 4050세대의 가슴이 쿵쿵 뛴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작품, 어떤 캐릭터가 가장 애착이 가나.

“미안하다. 없다(웃음) 만화가를 비롯한 창작을 업으로 하는 작가들은 작품을 내는 걸 ‘산고의 고통’에 비유한다. 난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 당시 내 내면에 있던 감정을 만화를 통해 발산 시켰던 거다. 애착이 가는 특정한 캐릭터가 있다기보단 당시에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발산한 나를 포용해준 시대가 고마울 뿐이다.



- 네이버에 ‘몽홀’을 연재하고 있다. 처음 연재를 결정하기 전 반대도 많았다고 들었다.

“그렇다. 인기가 없을 거라고 했다. 친구 이현세도 반대했다. (몽홀은 몽골 칭기즈칸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한 창작만화다) 하지만 몽홀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게 있었다. 야만적이라 불렸던 몽골의 시대를 현 시대로 끌고 와 비교해보고 싶었다. 징기즈칸의 몽골 제국이 사람을 말로 깔아 죽이거나 기름에 튀겨 죽이는 야만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하는데, 과연 요즘 세상이 그 시절보다 잔인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드론으로 사람을 죽이고, 잘못된 정부 정책으로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지 않는가.

- 장태산을 기억하고,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청소년들이 이제 4050세대가 됐다. 종이에서 온라인으로 작업환경이 바뀐 어려움을 겪었던 만화가들처럼, 이들 세대도 경제·사회 환경이 바뀌면서 퇴직·이직 등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조언을 해준다면.

“현혹되지 말고 솔직해 지길 바란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얘기다. 나이 들어보니 무슨 일을 하는데 내가 즐기지 않으면 오래 할 수 없더라. 남들의 잣대에 맞춰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인지 살펴봐라. 백종원의 골목의 식당이란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젊은 친구들이 장사를 하는 것 보고 감명을 받았다. 프로그램에 소개 된 후 손님이 많아졌고, 이후 제작진이 찾아갔더니 그 친구들의 표정이 울상이더라. 돈은 전보다 많이 벌리는데 만들고 싶은 만큼만 음식을 하지 못하는 게 죄악시 된다고 했다. 돈을 좀 덜 벌더라도 음식의 퀄리티를 높이고 싶다는 거다. 이처럼 돈은 벌리는데 즐겁지 않은 경우가 왕왕 있다.

장태산 화백이 라이프점프의 창간 축하 메시지를 담아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

- 마지막으로 라이프점프에게도 한 마디 해달라.

“창간을 축하한다. 40~50대들과 같이 힘내고,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길 바란다.

/서민우기자 ingaghi@lifejump.co.kr 영상=조민교기자 mink94@lifejump.co.kr

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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