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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의 관계 맺기 :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나, 그래서 고마워

[라이프점프] 고선주의 '50이후 새로 쓰는 관계 이야기' (3)



백설 공주의 비극이 왕비의 불안한 비교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면 동의하는가?

매일 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라는 질문에 ‘당연히 왕비님이 제일 예뻐요’ 라는 확인을 받고서야 마음 놓고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왕비는 매우 불쌍한 사람이다. 스스로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어 거울이라는 존재를 통해 매번 인정받으려 했기 때문이다. 만약 동화에 등장하는 왕비가 거울이 아닌 스스로에게 질문과 답을 주었다면 백설 공주라는 동화는 탄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한나라의 통치자로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왕의 협력자로서 그리고 어린 소녀의 엄마로서 왕비가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고 있었다면 그녀는 자신에 대해 뿌듯해 하며 ‘난 오늘도 참 멋졌어’라고 매일매일 스스로를 칭찬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무기력하고 어린 미성년자인 백설 공주를 살해하라는 잔인한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지 모른다. 왕비의 진정한 가치는 사람에게 미치는 선한 영향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미성년자인 어린 소녀의 존재감과는 비교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왕비가 백설 공주로 인해 열등감을 맛보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왕비는 이미 지나가 버린 ‘젊음’이란 가치에 집착하고 있어 끊임없이 비교 대상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경쟁자라고 여긴 백설 공주가 사라진 다음은 어땠을까? 또 다른 예쁜 소녀가 등장할까 내내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어느 날 갑자기 제 2의 백설 공주가 나타나게 되어 거울이 ‘왕비님보다 그 소녀가 훨씬 더 예뻐요’ 라고 답할까 불안함에 시달렸을 것이다. 결국 이 모든 불안은 왕비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제3자의 평가에 의지하려고 했던 것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동화에 등장하는 왕비와 비슷하지 않은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나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내 삶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일상에서 내가 어떤 고민을 했고 무엇 때문에 힘들어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포기했고 무엇을 얻었는지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바로 나란 뜻이다. 어쩌면 우리는 오랫동안 조직과 타인의 평가에 스스로를 가둬온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객관적인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이 부여한 체계 안에서 스스로를 적응시켜온 것이다. 내 존재가 아니라 내 성과를 기준으로 가치를 부여했기에 조직을 떠났을 때 내 가치를 어떻게 인정받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한다. 내가 하는 일의 성과는 타인이 평가할 수 있지만, 그 평가가 내 존재에 대한 인정일수는 없다. 이제 내가 먼저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

인생 후반전에 접어들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와의 관계를 재확립하는 것이다. 관계는 타인과 맺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관계 맺기부터 시작한다. 내가 스스로 의미 있고 귀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타인과의 관계 맺기가 가능해진다. 관계란 서로의 자존감을 잇는 선이라고 볼 수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 만났을 때 균형 잡힌 수평적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높이가 맞지 않는 관계선 위에서 관계의 질은 풍성해지지 않는다. 관계의 질은 눈덩이와 같아서 움직여야 커질 수 있는데 높이가 맞지 않는 관계선 위에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자존감의 높이를 올리는 일이 관계 맺기의 기본이 될 것이다.

직장에서 갓 은퇴한 사람 중에는 자존감에 상처 입은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조직 내 인정받던 지위에서 물러나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효용성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인정해주던 조직이 사라져버리고 오랜만에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 가족들도 서먹해 할 수 있다. 존재에 대해 회의감이 들고, 현직이 아니어서 다른 이들에게 무시당하는 것 같다고 호소한다. 예전에는 나를 만나지 못해 안달하던 후배가 이제 내 연락을 피하는 것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환영받고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닌가보다 우울해지기까지 하다. 이 모든 것은 나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인정을 통해 내 존재를 확인받아온 습관 때문이다.

이제 생각을 바꿔보자. 인생의 반을 살았는데 더 이상 타인의 인정이 필요할까? 그렇지 않다. 부모에게 칭찬받으려고 애쓰는 어린이가 아니고 상사에게 인정받으려는 직원도 아니다. 그냥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인 셈이다. 나 스스로 ‘괜찮아. 너는 정말 멋져, 오늘도 하루를 잘 보냈어.’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내가 알고 있으면 충분하다. 굳이 예전의 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내 화려했던 과거를 설명하고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자신에게 먼저 칭찬하고 나면,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게 된다. 멋진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면 이렇게 멋진 나를 있게 한 것에 온통 감사할 일 뿐이다. 비단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멋진 자신을 있게 해준 그 모든 것에 감사할 일이 많아진다. 오늘 하루, 나란 존재를 가능하게 한 많은 사람들과 사소하지만 많은 일상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힘들었던 시간조차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인이기에 지나보면 감사할 수 있다. 수많은 시간과 스쳐간 인연들, 주어진 상황에 감사할 일이고 나와 관계 맺은 많은 이들에게 감사할 일이다. 내가 귀하듯이 타인의 존재에 대한 귀함을 알기에 그 인연에 더욱 감사할 수 있음이다.

중년이후 누구나 꿈꾸는 행복한 삶의 열쇠는 결국 귀한 나와의 관계 맺기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귀함을 알고 그 귀함만큼 소중한 귀한 다른 사람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가 새로 맺는 관계의 출발점인 셈이다.

이제 거울속의 나를 바라보고 이렇게 외쳐보자.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은 바로 나야, 나! 그래서 참 고마워!’

/고선주 서울시50플러스재단 생애전환지원본부장
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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