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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 수바위 벗삼아 차 한잔…속세의 번뇌 저만치 가네

■ 강원도 고성 천년고찰 화암사·건봉사

  • 글·사진(고성)=최성욱 기자
  • 2021-04-27 14:22:09
[休] 수바위 벗삼아 차 한잔…속세의 번뇌 저만치 가네
화암사 전통찻집 란야원은 수바위를 조망하기 가장 좋은 위치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미덕인 시대다. 하지만 불교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는 말대로 오래전부터 세간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지켜왔다. 불자들에게 산중 사찰이 수행의 공간이라면 불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경관을 내다볼 수 있는 쉼의 공간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불교 사찰이 피난처로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다녀온 강원도 고성의 사찰들 역시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빼어난 풍광과 호젓함을 간직해온 곳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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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범종루에는 단풍으로 물든 가을 금강산을 뜻하는 풍악제일루(楓嶽第一樓)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쌀바위 사찰' 화암사


769년 금강산 신선봉 오르는 길목에 창건


산수화 풍경 품은 전통찻집 '란야' 눈길


미륵불 올라서면 동해·속초 시내 한눈에




요즘 고성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은 화암사다. 이름 때문에 지리산 화엄사(華嚴寺)와 헷갈리기 쉬운데 화암사는 벼 화(禾)에 바위 암(巖) 자를 쓰는 쌀바위 사찰이다. 신라 혜공왕 5년(769년) 진표율사가 창건한 이 사찰은 초기 화엄사로 불리다가 지난 1912년 화암사로 이름을 고쳐 썼다. 그 이유가 사찰 앞 바위와 관련한 전설 때문이라고 한다.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시주를 구하기 어려운 승려가 바위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흔들자 쌀이 쏟아져 나왔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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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야원과 수바위는 직선거리로 200m에 불과할 정도로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

불자들만 찾던 산중 사찰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것은 수바위를 조망할 수 있는 전통찻집 란야원 덕분이다. ‘란야’는 산스크리트어 아란야(Aranya)의 줄임말로 고요한 사원이나 수행처를 의미한다. ‘금강루’라는 누각을 1997년부터 찻집으로 바꿔 운영하기 시작했다. 찻집에서 바위까지는 직선거리로 200m 남짓. 미닫이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수바위와 그 아래로 흐르는 신선계곡까지 마치 액자 속 산수화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눈이 내리는 한겨울에는 사진이 잘 나오는 명당자리를 놓고 손님들 간에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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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야원 여름철 인기 메뉴인 호박식혜.

화암사는 금강산 일만이천봉 가운데 남쪽 제1봉이라는 신선봉을 오르는 길목에 있다. 이 때문에 화암사도 팔만구암자의 첫 번째 암자라고 적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 내 위치해 있으면서도 일주문에 ‘금강산 화암사’라는 현판을 걸어놓은 이유다. 주차장에서 화암사까지는 걸어서 20여 분 거리. 일주문을 통과하면 계곡을 따라 가파른 오르막과 함께 참나무숲길이 이어지는데 이 길은 수바위와 성인대(신선대)를 거쳐 산림치유길로 원점 회귀하는 총 4.1㎞ 거리의 등산 코스 중 일부다. 신선대는 영화 ‘신과 함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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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미륵불 조성지를 찾은 한 방문객이 수바위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미륵불 조성지에서는 수바위와 울산바위·달마봉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화암사는 수차례 화재와 수해로 중창을 거듭하면서 건물 대부분이 새로 지어져 사찰 자체로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지만 경내에서 가장 높은 미륵불 조성지로 올라가면 울산바위와 동해, 속초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금강산 산신을 모신 삼성각 벽면에는 금강산 풍경화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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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사는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뒤 지난 1994년부터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현재 경내에 들어선 건물들은 모두 최근에 지어진 것들이다.


-'고성 8경 중 1경' 건봉사


한때 전국 4대 사찰…조선 왕실의 원당


그림 같은 누각에 능파교 등 절경 수두룩


세계적 보물 '부처 진신 치아사리'도 봉안




고성 건봉사는 화암사보다 250년이나 앞서 세워진 사찰이다. 신라 법흥왕 7년(520년) 아도화상이 원각사라는 사명으로 창건한 후 고려 공민왕 7년(1358년) 나옹화상이 건봉사로 개칭했다. 지금은 화암사와 함께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로 등록돼 있지만 한때 신흥사와 백담사, 낙산사 등 31개의 사찰을 말사로 거느린 전국 4대 사찰 중 하나였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세조가 건봉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으면서 3,183칸의 대가람을 이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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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서 봉서루를 바라보면 위로는 건봉산이, 아래로는 능파교가 분할 화면처럼 보인다.

건봉사 역시 ‘금강산 건봉사’라고 적고 있다. 위도상으로도 북쪽인 건봉사가 화암사보다 금강산에 더 가깝다. 1980년대까지는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어 일반인 출입도 엄격히 제한됐다고 한다. 그러다가 출입이 자유로워진 것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절터의 복원이 진행되면서다. 1994년부터 시작된 건봉사 복원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대웅전·봉서루·적멸보궁이 제자리를 찾았고 주춧돌만 남아 있던 극락전도 지난달 완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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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사 극락전에서 바라본 봉서루. 봉서루에는 ‘금강산 건봉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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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사를 찾은 여행객들이 봉서루에 올라 극락전 방향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세(寺勢)는 크게 기울었지만 건봉사는 여전히 고성 8경 중 1경으로 꼽힌다. 그 이유가 경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누각 봉서루와 그 주변 풍경이다. 봉서루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나뉘는 극락전과 대웅전 지역 중 대웅전 쪽으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한다. 대웅전에서 보면 단층이지만 극락전에서 보면 2층 높이의 누각이다. 건너편 극락전 지역에서 봉서루를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무지개 모양의 능파교(보물 제1336호)부터 십바라밀석주·봉서루, 그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한 대웅전 불상까지 머릿속에서만 그려왔던 오래되고 소박한 절집 풍경 그대로를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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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사 진신사리 봉안탑에는 부처님 진신치아사리 8과 중 3과가 봉안돼 있다. 이 때문에 봉안탑 앞쪽 적멸보궁에는 불상 대신 통유리를 설치해 봉안탑을 향해 절을 하도록 했다.

전쟁으로 불에 탄 건봉사에서 유일하게 남은 건 일주문 역할을 하는 불이문이다. 불이문을 떠받친 4개의 돌기둥에는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불이문 옆으로 수령 500년의 팽나무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나무가 불이문을 지켜줬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건봉사는 부처님의 진신치아사리가 있는 적멸보궁으로도 유명하다. 부처의 진신치아사리는 전 세계에 15과밖에 없는 진귀한 보물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통도사에서 약탈한 것을 되찾아왔다. 이후 또 한 차례 도난을 당해 지금은 일부만이 남아 있다. 사찰 측은 그중 일반 관람을 위해 염불원에 전시한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를 적멸보궁에 봉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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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들이 건봉사 불이문을 통과해 경내를 걷고 있다.

건봉사 경내에는 특이하게도 소나무와 장군샘은 꼭 보고 가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수령 300년의 소나무는 숱한 화재로 전각들이 소실되는 과정에서도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왔다. 장군샘이라 불리는 냉천약수는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승병을 일으킨 사명대사를 따라 전국에서 모여든 승려들이 이 물을 마시고 각종 질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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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대형 산불이 난 고성에는 아직 곳곳에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다. 사진은 고성 토성면 바우지움조각미술관 입구 솔숲이다. 미술관에서는 불에 탄 나무에 나비 조형물을 달아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 사찰은 당일치기로 한꺼번에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사찰을 즐기기 가장 좋은 방법은 템플스테이다. 화암사와 건봉사는 주중 예불과 공양 외에는 자율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특별한 활동 없이 산중 사찰에서 조용히 하룻밤을 묵어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쌓인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고성)=최성욱 기자 sec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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