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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 듯 강인한 생명력···제주 해녀, 거인을 닮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5주년

양종훈 사진전 제주국제공항서

높이 3.6m·폭 2.4m 전시 눈길

제주국제공항 1층 게이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양종훈 사진전 '제주해녀' 전경


어쩌면 해녀는 설문대할망의 현신일지도 모른다. 해녀들은 칠흑 같은 바다를 헤치고 물질을 해 커다란 망사리(해산물 채취용 그물주머니)에 한가득 전복·조개, 미역·감태를 담아 나온다. 제주지역 창조설화 속 설문대할망은 태초에 세상이 생겨날 때 물에서 솟아나왔고 치마 폭에 잔뜩 화산재와 돌덩이를 담아 옮겨 제주 섬을 만들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을 만들고자 물 안팎을 오가는 ‘삶을 위한 분주한 움직임’에서 설문대할망과 해녀가 꼭 닮았다.

그런 해녀의 모습이 높이 3.6m, 폭 2.4m의 대형 화면으로 확대돼 관람객을 에워쌌다. 제주 해녀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5주년을 기념해 제주국제공항 게이트홀에서 29일 개막한 양종훈 사진전 ‘제주해녀’다. 양종훈은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담담하지만 생생하게 포착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제주 해녀’라는 주제에는 20년 이상 매달렸다.

양종훈의 '제주 해녀' /사진제공=양종훈 작가


어른 키의 두 배는 됨직한 큰 화면 속 해녀는 우러러 봐야 할 거인처럼 사진에 담겼다. 성큼 내딛는 큰 발걸음, 꽉 채운 망사리를 짊어지고 가는 모습은 강인한 생명력 그 자체를 상징한다. 물질을 준비하며 돌아앉은 뒷모습은 한 자리를 영원히 지키는 바위섬처럼 단단하지만, 물 밖으로 나와 불을 쬐며 웃음을 주고받는 모습은 자연에 순응하는 인간 그 자체다.

제주 태생인 작가는 미국 오하이오대학과 호주 왕립대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하며 ‘밖으로’ 돌았다.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의 에이즈 환자들, 히말라야와 호주 원주민, 동티모르에서의 수중 분만 등 그의 카메라는 굳이 드러내지 않으려 하나 분명 강렬하게 존재하는 ‘삶’을 향했다. 그러다 문득 고향의 바다가 생각났고, 바다에서 살아가는 제주 해녀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해녀는 사진 촬영에 인색하다. 목숨 담보로 일하는 와중에 한가롭게 사진에 응할 수 없다는 팽팽한 긴장감이 쌀쌀맞게 사진가를 외면했다. 양 작가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해녀를 찍기 위해 사진 욕심은 잠시 내려놓고, 항상 주변에 머무르며 도움을 주려고 애쓰기를 1년 이상 했더니 마침내 눈을 맞출 수 있게 됐다”며 “다큐멘터리 사진은 대상과의 교감이 먼저”라고 말했다.

양종훈의 '제주 해녀' 전시 전경.


이날 개막식에 참석한 이승택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은 “제주 문화를 상징하는 해녀 사진이 제주공항에 전시된 것은 이곳을 기점으로 세계 곳곳에 뻗어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박범신은 해녀가 참았던 숨을 쉬며 내는 소리인 ‘숨비소리’라는 제목으로 “태초에 그 소리가 있었네/ 정결한 아침햇빛 같은/ 세계의 모든 처음을 여는 소리/ 모든 말의 시작/ 모든 숨결의 기원 (이하 생략)”이라는 시(詩)를 헌사했다.

양종훈의 '제주 해녀' 전시 전경.

제주=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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