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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질 52년' ···조선 5대 궁궐 옛 모습 되살리다

[대한민국 명장을 찾아서] 문화재 복원 산 증인 임동조 씨

경복궁·창덕궁·창경궁 등 공사서

30년간 한번도 이름 빠진 적 없어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도 주도

"돌 다듬을 땐 정신통일 가장 중요

신규 전문 인력 1년에 겨우 2명 뿐

전통 기술 전승 위한 투자 했으면"

임동조 명장이 경기도 포천 미성석재 작업장에서 화강석으로 된 석재를 다듬고 있다.


4-2 1420, 5-3 1426, 5-2 2200…. 난수표 같은 숫자들이 도면에 가득하다. 앞에 표시된 숫자는 석재의 위치, 뒤의 숫자는 돌의 크기로 일일이 손으로 잰 실측 수치들이다. 모두 183개. 지난 2010년 해체 복원돼 제 모습을 찾은 광화문 석재들은 한 장인이 정과 망치로만 만들어낸 종합 예술품이다.

2007년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으로 선정된 임동조(67) 명장은 52년간 석재와 인생을 같이한 대한민국 문화재 복원의 산증인이다. 우리나라 주요 문화재 복원 사업 중 임 명장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 작업을 주도한 것을 비롯해 청계천 모천교 난간 및 교명주 신축, 충주 중원고구려비 재현, 종묘 어도 박석 채석과 해체 복원, 동구릉 및 선릉 보수 정비 석공사 등이 그의 정 끝에서 이뤄졌다.

백미는 1991년부터 참여한 조선 5대 궁궐 복원 공사. 경복궁 수정전과 건청궁·창덕궁·인정전과 규장각, 덕수궁 중화전, 창경궁 문정전, 경희궁 자정전 등이 그의 망치질로 되살아났다. 특히 경복궁의 경우 수정전과 자정전·소주각·흥복전 등에 이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계조당 권역 복원 공사까지 임 명장이 담당하고 있다. ‘경복궁은 임동조가 만들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임동조 명장이 광화문 해체 복원 당시 도면을 보여주며 당시 작업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광화문 복원 사업.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 13일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미성석재에서 만난 임 명장은 “복원 당시에는 160년 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할 때 썼던 석재와 한국전쟁 때 포탄에 맞은 후 다시 사용된 석재가 뒤섞여 있었다”며 “이것들을 훼손하지 않고 새것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임 명장을 처음 본 사람들은 큰 키와 떡 벌어진 어깨를 보고 감탄하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문화재 복원 작업에는 전동공구를 사용할 수 없다. 오로지 정과 망치로만 석재를 다듬어야 한다. 힘을 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평평한 석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돌의 솟아오른 부분에 망치질을 해야 하는데 자칫 깊게 팬 곳을 건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경우 처음부터 다시 손질해야 합니다. 하루에도 수천 번은 정질을 해야 합니다. 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광화문 해체 복원 때 사용된 실측 도면, 흐릿하게 연필로 쓴 숫자들이 복원에 필요한 석재의 크기다.


임 명장이 돌과 인생을 함께하기 시작한 것은 열다섯 살 때인 1969년. 형과 매형이 석재 다듬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 3년의 도재 생활을 마치고 독립한 후 일본에 석등이나 석탑을 수출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일본에 석등과 석탑을 제공하던 대만이 중국 문제로 일본과 국교를 단절하면서 일거리가 한국으로 몰려들었다”며 “덕분에 돈을 만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다듬었던 서울 서대문 부근 팔각정 돌을 눈여겨보던 문화재 복원 관련 기업 관계자가 자신과 같이 일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가 문화재 복원의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 이유다. 이후 30년간 진행된 조선 5대 궁궐 복원 사업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돌을 다듬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임 명장의 대답은 ‘정신 통일’이었다. “돌은 유리와 같습니다. 모서리 같은 곳이 깨지면 쓸 수 없습니다. 척수(돌의 치수)도 제대로 나와야 합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석재가 나올 수 없습니다.” 아침마다 목욕 재개를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임 명장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문화재 복원 기술을 계승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요즘은 석재 다듬는 기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제자들이 연간 2명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문화재 복원의 명맥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임 명장은 “복원 기술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여러 사람이 습득할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부도 홍보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전통 기술 전승을 위해 멀리 내다보고 투자를 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글·사진=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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