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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평 공간서 찾은 긍정의 힘···사람 덕이죠"

■에세이 작가로 변신한 택시운전사 이정관

25년간 결근않고 10시간씩 근무

승객과 대화 나누며 삶의의미 찾아

서로 이해하며 마음 응어리 풀기도

싸움 부르는 정치얘기는 절대 안해

택시 운전사 이정관 씨.


“택시 운전을 하다 보면 세상에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내 자그마한 위로에 승객들이 힘을 내고 손님들의 말 한마디에 내가 위안을 받는다는 것도 저절로 느끼게 됩니다. 택시는 결국 사람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공간인 것 같아요.”

25년간 핸들을 잡은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택시, 작은 공간 넓은 이야기’라는 에세이를 출간하며 작가로 변신한 택시 운전사 이정관(사진) 씨는 1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사람은 언제나 따뜻한 존재”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 씨는 자신을 나름 성공한 택시 운전사라고 평가한다. 지금은 허리가 아파 잠시 운전대를 놓았지만 그전까지는 매달 300만 원 가까이 집에 들고 갔다. 집도 새로 장만했다. 새벽 4시에 출근해 오후 2시에 교대할 때까지 10시간을 일하면서 단 한 번의 결근도 하지 않은 치열함이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그는 “글을 쓰기 시작한 후에는 동료들로부터 부럽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며 “덕분에 택시 운전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처음 핸들을 잡았을 때는 너무 힘들어 손님이 타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운전만 했다고 한다. 머릿속은 ‘세상은 불평등한 곳’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부정적이기만 했던 그를 긍정적으로 만든 것은 택시 안 4.3㎡ 공간이었다. 승객들과 나누는 한마디 한마디에 삶의 의미를 찾은 것이다. 이 씨는 “좁은 택시 안에서 승객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지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손님들에게 얻은 에너지를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택시 운전사 이정관 씨.


바뀐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서로 아픔을 나누고 어루만지다 보면 뒷좌석에 앉은 승객의 마음도 풀어진다. 집에서 돈을 훔쳐 나온 청년은 자신을 설득한 이 씨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36만 원을 던져주고 홀연히 떠나기도 했다. 그가 받은 가장 많은 ‘팁’이었다. 30년 만에 어머니와 재회했지만 끝내 ‘엄마’라는 말 한마디를 못했다며 펑펑 울던 중년인의 등을 토닥인 것도 자신이었다. 이 씨는 “택시를 타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굳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조금만 얘기를 하면 가슴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다”며 “내가 할 도리를 다하면 승객들도 운전사를 따뜻하게 대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고 전했다.

아무 얘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철칙이 있다. 절대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다. 택시 안을 싸움판으로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진보든, 보수든 장단점이 모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양자택일을 하라는 사회 분위기가 싫었던 탓도 있다. 이 씨는 “정치 문제를 거론하다 보면 꼭 나오는 얘기가 ‘너는 누구 편이냐’는 말”이라며 “나는 그저 사람 사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승객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요즘 세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피부로 느낀다. 실제로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분위기가 이전과 다르게 많이 냉랭해졌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특히 젊은이보다 기성세대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 심하게 나타났다고 한다. 이 씨는 “나이가 좀 드신 손님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가 적대적으로 바뀌면서 세상에 대한 불만이 커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어려움도 있다. 정부가 택시비를 올리면 요금만 비싸졌다고 손님에게 구박받기 일쑤다. 취객에게 맞는 것도 다반사다. 택시를 ‘남성의 마지막 직업’이라고 일컫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그는 택시 운전대를 다시 잡을 계획이다.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승객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서다. 이 씨는 “허리가 나으면 택시를 몰면서 계속 힘을 받고 희망을 주고 싶다”며 “2~3년 안에는 책을 한 권 더 낼 생각도 있다”고 고백했다.
사진·글=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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