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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한 켠 품어둔 '전업 화가'의 꿈···인생 2막에는 이룰래요

■ 인생디자인학교 통해 전업 화가 준비하는 김동수씨

초등생부터 화가 꿈…미대 진학에도 생계 걱정에 강사로 20여년

미래 고민에 인생디자인학교 지원…동기부여에 ‘전업 화가’ 도전

“그림 그리는 시간 행복. 제 그림 보는 분들도 행복하길”

김동수씨가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촬영을 하고 있다. 박도훈PD


“이건 어떤 작품이에요?”

“포도를 모티브로 그린 그림이에요. 제가 어릴 적 어머니께서 포도 농사를 지으셨거든요. 포도는 제게 남다른 의미가 있어요.”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갤러리. 30분 안팎의 짧은 시간, 거센 비가 퍼붓는 와중에도 관람객 열댓 명이 이곳을 찾았다. 전시의 주인공 김동수(50)씨는 관람객들의 반복되는 질문에도 상기된 표정으로 늘 처음인 것처럼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이곳은 그의 개인전 ‘행행전’ 현장. 라이프점프는 미술 강사에서 전업 화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김동수 씨(오른쪽). 박도훈 PD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40년 된 그의 오래 묵은 꿈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은 그림을 곧잘 그리던 그의 작품을 교실과 학교 복도 곳곳에 전시해줬다. 그때부터였을까. 그는 자신의 그림을 전시하는 걸 업으로 삼고 싶었다.

“그림만 그리면 칭찬 받았어요. 살다 보면 마음대로 되는 게 많이 없잖아요. 흰 도화지 위에서는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죠. 화가가 되고 싶어 부모님께 학원에 보내 달라고 졸라도 봤지만 그 시절에는 미술 학원에 다니는 건 흔치 않아서 혼자 그렸죠.”

고교 2학년, 부모님을 다시 졸라 미대 입시 학원에 몇 개월 다니게 됐다. 이후 세종대 회화과에 진학해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입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미술 전공자들은 대학교 입학 후 미술 강사를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저도 그 케이스죠. 강사가 하고 싶어서 미술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그러다가 강사가 생업이 된 거죠.”

시간이 갈수록 ‘내 작품’을 그리는 화가에 대한 꿈은 작아졌다. 2006년부터 2020년 5월까지, 14년간 성남시청소년재단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코로나19로 폐강되면서 2020년 강동구에 개인 교습소를 차렸다. 중간중간 그는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전시는 가구점을 하는 남편 사업장에 그림을 거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렇게 근 30년 미술 강사 일을 해오던 그가 화가의 꿈을 다시 꾸게 된 일이 생겼다.

라이프점프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동수씨. 박도훈 PD


“언젠가는 아이들이 절 싫어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정년’이 없는 개인 교습소. 퇴직 시점을 받아 든 회사원보다야 걱정이 덜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인공지능이 몇 초 만에 정교한 그림을 생산해내고, 나이가 들어 갈수록 아이들이 자신을 찾지 않을까하는 두려움도 생겼다. 더 이상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는 지난 5월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의 중장년 생애전환교육 ‘인생디자인학교’에 수강 신청을 했고 합격했다.

그는 5월부터 현재까지 인생디자인학교의 강좌를 통해 그간 궁금했던 인공지능 활용법에 관해서도 배우고, 영상 편집 도구 ‘캡컷’ 활용법도 배웠다. 함께 영화도 보고, 맥주도 한 캔 마실 수 있는 또래 중장년 친구도 사귀었다. 제일 큰 수확은 ‘이제는 내 삶을 살아야겠다’, ‘인생 2막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받은 것이다.

“전혀 접점이 없는 분들과 교류도 하고, 개인 포트폴리오도 만들어 보고요. 그러다 보니 인생 2막 목표를 세우게 됐어요. 처음에는 이것저것 시키는 게 많아 귀찮았지만 다 도움이 되더라고요.”

수강생이 각자의 인생 2막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천해보는 인생디자인학교의 ‘프로젝트 실험실’에서 그는 인생 2막의 목표로 ‘전업 화가 되기’를 잡았다. 개인전을 위한 전시도록과 명함을 만들고, 틈틈이 해오던 그림 작업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준비된 게 이번 ‘행행전’이다. 50㎡(약 15평) 남짓한 공간에 19점을 전시했다.

행행전에 전시된 김동수씨의 작품. 박도훈 PD


그의 모티브(Motive·창작 동기)는 포도다.

“포도를 그린 건 2018년부터예요. 그전에는 꽃과 풍경 등 다양하게 그렸죠. 어느 날 마트에서 종이로 겹겹이 싸여진 포도를 봤는데 ‘이걸 모티브로 삼으면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어머니가 포도 농사를 지으셨는데, 포도를 감싼 흰 종이가 엄마의 품 같더라고요. 포도로 엄마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행행전에 전시된 김동수씨의 작품. 박도훈 PD


이번 행행전도 ‘포도’가 중심이다. 주제는 내리사랑과 그로부터 오는 행복이다.

“19살 된 딸이 있어요. 제게 딸은 행복과 행운을 가져오는 존재예요. 이번 그림에 클로버(토끼풀)를 넣어서 그걸 표현해 봤어요. 행복을 뜻하는 ‘세잎클로버’ 사이사이에 행운을 뜻하는 ‘네잎클로버’를 그려 넣었죠. 전시회 이름도 ‘행복 속에 피어난 행운’이라는 뜻의 ‘행행전’이에요.”

그가 이제까지 접어뒀던 전업 화가의 꿈을 다시 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을 그리는 순간 만큼은 정말 행복해요. 40년 넘게 그림을 그렸지만 아직도 물감을 섞어 색을 만들고, 칠하는 게 재밌어요.”

그는 전업 화가가 돼 좋아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리면서 경제 활동도 하고, 노후에는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그동안은 홀로 미술 교습소를 운영하고, 살림과 육아도 해내야 하는 워킹맘으로 살아야 하다 보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 평일에는 1~2시간, 주말에도 5~6시간에 불과했다. 교습소 스케줄에 일정을 맞추다 보니 개인 시간 내기도 어려웠다. 먹고 사는 문제가 남아 아직 전업 화가의 꿈은 진행형이지만 꿈을 꾸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그다.

“전업 화가가 되기까지 10년은 걸릴 거라고 봐요. 그때까지 개인전도 더 열고, 체계를 잡아야겠지요.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스스로가 기특할 것 같아요. 이제 막 40대가 된 분들도 인생의 꿈을 묻어둘 것인지, 인생 2막에 펼칠 것인지 결정을 미리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펼칠 거라고 마음을 먹으면 계획을 세워보는 거죠. 이루지 못하더라도 도전해보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기사에 공개해도 되냐는 질문에 그는 ‘“최대한 많이 실어 달라”고 전했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정말 행복해요. 그림에 제가 제일 행복한 시간이 담겼으니 제 그림을 보는 분들도 이 그림을 보고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은 4050 중장년의 직업 전환을 위한 ‘서울런 405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중장년이 자신을 진단하고 ‘인생 2막’을 설계해보는 ‘인생디자인학교’를 운영한다. 라이프점프는 인생디자인학교를 통해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는 중장년들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정예지 기자
yeji@rn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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