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이 회사의 울타리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남들이 가고 싶어하는 대기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일반인들의 시각에서는 그 도전이 무모해 보일 수도 있다. 최근 전기 자격증 입문서로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김기사의 e-쉬운 전기’의 저자 김명진 씨의 삶이 그런 케이스다.
김 씨는 대학원에서 통계학 석사 학위를 딴 소위 ‘가방 끈이 긴’ 사람이다. 대학원 졸업 후 전공을 살려 모두가 부러워하는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에 입사, 데이터 분석 업무를 맡았다. 김씨의 회사는 높은 복지와 처우로 젊은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직장이었다. 하지만 명진 씨는 취업한 지 2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전기기사 자격증을 땄고, 관련 책도 썼다. 현재는 ‘소망이엔씨’의 대표로, 30년간 전기공사 분야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전국을 돌며 전기공사를 하고 있다. 라이프점프는 명진 씨와 그의 아버지 김영민 씨를 만나 남들이 보기엔 무모해 보였지만 그에겐 절실했던 퇴사와 창업에 대해 물었다.
- 청년들이 가고 싶어하는 대기업에 입사한 지 2년 만에 나온 이유가 궁금하다
“좋은 회사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40대 이후 내 삶의 그려지질 않았다. 내가 몸을 담고 있던 업종은 정년이 짧은 편이다. 40대 초중반이 되면 힘들어지는 구조였다. 40대 직장 상사를 보면 직급은 높아졌지만 조직 안에서 행복해 보이질 않더라. ‘계속 있으면 나도 저렇게 될까’라는 고민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 퇴사를 결심할 때가 30대 중반의 나이였다. 퇴사를 결심하는데 망설여지지 않았나.
“고민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주변 친구들의 반대가 심했다. 퇴사했거나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주로 가입해 있는 커뮤니티에서도 ‘힘들어도 붙어 있는 게 낫다’ 라는 조언이 많았다. 하지만 내 미래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데, 꾸역꾸역 다니는 건 아니라고 봤다. 고민은 많았지만 퇴사를 결심한 이후엔 단 한번도 후회를 해 본적이 없다. 솔직히 제 성격도 한 곳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잘 참지 못한다(웃음)”
-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전기기사 자격증을 따기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회사에서 데이터 분석 업무를 하다 보니 사무실에 앉아서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컴퓨터 화면에서 엑셀 프로그램에 꽉 채워진 숫자와 씨름할 때가 많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퇴사를 결심하고 나니 아버지가 보였다. 지난 30년 간 전기공사 관련 일을 하셨는데, 한 번도 내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신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기술 하나로 동네에서 ‘사장님’이란 말을 들으며, 존경도 받고 지내셨다. 나도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고, 직업의 귀천이란 없는 법이다. 하지만 몸을 주로 써야 하는 전기공사 노동자로서 대학원까지 공부시킨 아들이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 치고 자신이 하는 일을 물려받겠다고 하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터. 그래서 아버지에게 ‘아들의 퇴사를 말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왔던 아이였기에 아들의 결정을 존중했다. 물론 대학원 나와서 좋은 기업에 들어갔을 땐 기뻤다. 하지만 좀 더 길게 생각하면 회사가 평생 고용을 책임져주진 않는다. 나는 평생 전기공사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다. 전기가 참 재미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회사를 그만두는 건 반대했다. 그래서 자격증을 먼저 따라고 했다. 자격증을 못 따면 전기공사 일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랬더니 1년 만에 전기기사 자격증을 따오더라.”
비전공자가 전기기사를 도전하는 일이 흔치 않지만, 명진 씨는 작가임과 동시에 KT 등 국내 유명 대기업에서 전기 교육 강의로도 활동 중이다. 그가 직접 쓴 ‘김 기사의 e쉬운 전기’는 한 달 만에 초판 3,000부가 다 팔려나갔다.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는 이웃 수가 9,400명, 평일 방문자만 2,000명에 달한다.
-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전기기사 자격증 공부를 딱딱한 이론서로 하면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쉽게 설명해도 되는데 왜 이렇게까지 어렵게 설명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자격증 취득 후 블로그에 전기와 관련된 이론이나 글들을 최대한 쉽게 풀어썼는데,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블로그에 사람들이 모이니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의뢰가 왔다. 출판 계약을 맺고 책을 집필했다.”
- 최근엔 강연도 많이 다니는 걸로 알고 있다. 전기공사가 주업, 책 쓰기와 강연이 부업이 된 것 같은데
“그렇다. 전기 시공 업무, 시설 수리 등 본연의 업무를 꾸준히 하면서 전기와 관련된 컨설팅을 부업으로 할 생각이다. 책을 낸 이후 40~50대 직장인들의 전화를 많이 받는다. 상담해 주는 사람들 가운데는 대기업, 공기업,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회사는 미래를 책임져 주지 않기에 스스로 기술을 익혀서 미래를 설계하고 싶은 분들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의견을 구할 때가 많다. 그분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알려주는 것이 주업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 쓰는 일도 틈틈이 할 거다. 올 봄에 전기와 관련한 책을 또 하나 계약할 계획이다. 전기는 우리 주변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사람들에게 전기라는 것이 어렵고 무서운 게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다.”
- 전기기사 직에 4050 직장인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다고 했다. 이쪽으로 전직이나 창업하는 것을 고려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정보(IT)기술이 발달해도 전기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술만 잘 갖춘다면 4050세대들의 새로운 직업으로서 경쟁력 있다고 본다. 다만 기술이란게 한 번 몸에 베이면 수정하기 어렵다. 나 같은 경우엔 30년간 현장에서 일하신 아버지로부터 기초부터 배울 수 있었다. 자격증도 중요하지만 이론과 실무를 잘 아는 사수 밑에서 배우는 걸 추천한다. 처음 진입할 때 제대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 국밥집, 곱창집처럼 요식업엔 대를 이어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술 분야에서는 흔치 않은 일인 것 같은데
“그렇다. 현장을 다니다 보면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의 사장님들을 많이 만났다. 그 분들이 저를 보고 ‘내 자식도 이걸 배웠으면 좋겠는데, 쉬운 일만 찾으려고 한다’며 투덜대신다. 기술직은 여전히 우리나라 사회에서 어렵고, 깔끔해 보이지도 않고, 돈도 못 벌 것 같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모두가 안 하려고 할 때 내가 먼저 개척하면 의외로 재미있는 게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작은 욕심이 있다면 내가 이렇게 아버지의 전기 기술을 이어받는 행위가 좋은 사례가 돼서 기술직에서도 대를 잇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
/서민우기자 ingaghi@lifejump.co.kr 영상=조민교기자 mink94@lifejump.co.kr
-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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