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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할머니의 나라 될라” 걱정하는 日

[라이프점프] 송주희의 똑똑! 일본(1)


“퇴직금도 없이 노후를 살아가려면 생활보호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안락사 시설이나 만들어줬으면 좋겠네요.”

초고령 사회 일본에서 여성들의 불안정한 노후가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결혼·육아를 이유로 퇴사하는 경력 단절 여성이 여전히 많은 데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상당수가 여성인 탓에 ‘빈곤한 노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인데요. 특히 남성보다 여성 고령자의 장수가 늘어나는 추세를 고려할 때 ‘가난한 할머니의 나라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적지 않습니다.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2018년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일본 고용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율은 남성이 22%인 반면 여성은 56%입니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남성의 경우 25세 이상 20대의 비정규직 비율이 15.2%, 30~34세 11.7%, 35~39세 9.3%, 40~44세 8.1%, 45~49세 8.0%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여성은 25세 이상 20대 30%, 30~34세 41.1%, 35~39세 49.0%, 40~44세 52.%, 45~49세 56.% 등 남성에 비해 비정규직 비율이 월등히 높았습니다. 여성이 결혼 후 회사를 그만두고 가계를 보조하기 위한 비정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겠죠. 여기에 혼인·취업 활동에 실패한 미혼 여성이 고령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장래를 미루고 비정규직 업무에 편입되는 사례도 상당한 현실입니다.

아사히 신문은 최근 이 같은 실태를 분석하는 시리즈 기사에서 ‘노후 없는 시대의 일본에서 여성들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신문에 따르면 현재의 30대가 70대가 되는 2060년, 일본의 고령화율은 40%에 육박할 것으로 보입니다. 남성보다 여성의 장수가 늘어나 이 시기 일본은 ‘할머니의 나라’가 되는 것인데요. 당사자가 될 여성들의 현재는 그러나 ‘행복한 할머니의 나라’보다는 ‘가난한 할머니의 나라’에 가깝다는 게 신문의 분석입니다. 특히 전업주부로 지내다 남편과 이혼·사별한 여성, 결혼하지 않은 비정규직 미혼 여성 등 이른바 ‘단신(單身) 여성’의 노후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공익재단인 요코하마 남녀 공동 참여 추진협회가 비정규직 미혼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83%가 ‘노후 생활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답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한 응답자는 “퇴직금 없이 미래에 살아간다면 (할 수 있는 것은) 생활보호자가 되는 것뿐이다. 차라리 안락사 시설을 개설해줬으면 좋겠다”고 비관적인 답변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장수는 더는 축복이 아니다. 재앙이다’라는 말이 떠올라 씁쓸하기만 하네요. 국제의료복지 대학의 이나가키 세이이치 교수는 아사히신문에 “미혼·이별 등에 의한 단신 여성은 2050년에 고령 여성의 30% 수준인 약 583만명에 달하고, 그중 약 45%가 생활 보호 수준의 빈곤에 빠질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말 중 들을 때마다 어색한 게 ‘코토부키 타이샤’라는 단어입니다. 여성이 결혼을 계기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의미하는 이 말은 ‘퇴사’ 앞에 ‘축복’, ‘경사’라는 뜻의 ‘코토부키’가 붙은 형태입니다. 결혼한 여성이 퇴사하는 것은 여전히 축복일까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본에서 ‘축복 퇴사’가 마냥 ‘축복’인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 남성 대비 높은 여성 비정규직 비율… 초고령 사회 일본이 직면한 오늘과 40여 년 후 맞이할 얼굴은 대한민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 ‘라이프점프’는 국내 최초의 경제지인 서울경제신문이 론칭한 4050세대의 이직·재취업, 창업·창직, 겸·부업 전문 미디어입니다. 라이프점프는 ‘일하는 행복, 돈 버는 재미’를 이야기합니다

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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