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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해 사랑을 꾹꾹 눌러 쓴 동시 한편 써보실래요

어린이교재 만들다 뒤늦게 동화·동시 연달아 신춘문예로 등단한 늦깎이 작가 최영동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이 앞에 정장을 차려 입고 나타나는 일이 아닐까요

  • 박해욱 기자 spooky@lifejump.co.kr
  • 2021-03-10 13:37:10

시인은 붉게 물든 수평선 노을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풍경에서 의미를 길어 올린다, 라는 말이 있다. 일상에서 흔히 보게 되는 텅 빈 골목을 응시하며 범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추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문자로 담아내는 것이 시인이라는 것이다. 시인을 만나거든 꼭 물어보고 싶었다. 저 말이 맞는 것인지, 또 범인들도 시를 쓸 수 있는 것인지.


이번에 라이프점프가 인터뷰이로 모신 이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서른 여덟에 동화로, 나이 마흔이 넘어 동시로 뒤늦게 신춘문예에 등단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뒤늦게 신춘문예에 등단했다. 장르는 일반소설이나 시가 아닌 동화와 동시. 흥미롭게도 동화로 등단한 지 2년이 안 돼 동시로 연이어 등단에 성공했다. 그를 만나 직업인으로서의 시인이 사는 법, 아동문학을 좇는 이가 생각하는 이 시대 어른의 상(像) 등을 들어봤다.



-자기소개부터 부탁 드린다.


“동시와 동화를 쓰는 작가 최영동이다. 글을 쓰는 일 외에 공공기관에서 뉴스미디어 리터러시(News Media Literacy) 업무를 맡고 있다. 뉴스를 활용해 어린이나 실버계층 등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교육과정이다.”



-아, 일종의 N잡러이신 거네. 개인적으로 아동문학을 하시는 분은 처음 만나본다. 계기가 궁금하다.


“지인이 집을 방문하면 서가에 가득 꽂힌 아동 관련 책들을 보고 의아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동문학에 대한 관심은 항상 있었던 것 같다. 아동문학을 시작하기 전부터 ‘꼭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동문학을 소수자 문학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아동문학 풍토가 넓은 나라를 가면 아동문학은 아동을 위한 전유문학이 아닌 모든 세대가 함께 읽는 문학으로 받아들인다. 언제든 꺼내 읽을 수 있는 문학,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문학, 그것이 진짜 아동문학이라고 생각한다.”



-한창 자라나는 딸이 있어서 ‘라푼젤’ 같은 아동문학을 함께 읽는데 영화든, 책이든 어른인 나도 즐겁게 보게 되더라. 아마도 작가님의 지적이 여기에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아직 미혼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아동문학 작가라고 하면 당연히 어린이를 사랑할 것 같은데.


“물론이다. 왜 어린이를 사랑하고 아동문학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첫 직장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대학 졸업하고 1년 정도 방랑생활 비슷한 것(?)을 했다. 숙식을 제공하는 예술가 단체에 들어가 일을 했고 홀로 여행하며 시간을 보냈다. 일종의 자아탐구의 시기였다고 할까.(하하) 그러다 서울로 돌아와서 이제 취직을 해야겠다 싶어서 원서를 넣었는데 유일하게 연락이 온 곳이 어린이교재 출판사였다. 여기서 어린이문학 관련 업무를 맡게 되면서 아동문학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 그러니깐 오래 전부터 아동문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네.


“첫 직장에서 어린이문학이 아닌 교재팀으로 발령 났으면 아마도 아동문학을 하지 않았을 거 같다. (하하)


그때 주로 했던 일은 그림작가와 글작가 간 협업구조를 짜는 것이었다. 협업이 잘 되면 굉장히 뿌듯했는데 이때 작가에게 최고의 독자는 어린이 독자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어린이 독자는 성인독자보다 창의적으로 글을 읽고 굉장히 공격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냥 재밌게 읽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질문과 해석, 즐거운 오독을 보여준다. 점점 아동문학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한 거지. 이 정도면 나도 한번 써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마음이 생겼고 어린이 교육활동을 하면서 그 꿈을 구체화했다.“




아이를 위해 사랑을 꾹꾹 눌러 쓴 동시 한편 써보실래요


-작가들은, 특히 문학을 하시는 분들은 글쓰기를 두고 고통스러운 작업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저 관문을 지났을 뿐이다. 등단을 했지만 아직도 자기확신이 들지는 않는다. 자기확신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좌절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 없겠지. 그 좌절은 ‘안 될 거야’, 라는 부정적 확신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다른 작가분들 말씀대로 글 쓰는 시간은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아동소설에 이어 동시로 두 번 연속 등단했는데 문학담당 기자에게 물어보니 흔한 사례는 아니라고 하더라.


“많지는 않지만 또 그렇다고 아주 희귀한 것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신문사가 운영하는 신춘문예 분야에서 동시와 동화는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동화-동시 순서로 등단했는데 두 장르는 다르다. 시의 경우 사진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장면을 포착하고 그 장면을 응시할 때 명징하게 나오는 언어들이 있다. 이 언어들이 모여서 하나의 동시가 된다. 소설은 인물과 네러티브가 있어야 하고 시공간을 오가면서 이야기할 때 서사가 만들어진다.“



-가장 궁금한 질문. 시를 쓸 때 영감은 어떻게 얻는 것인가.


“시적 순간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창문을 봤는데 오랜 시간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 그 뭔가가 내 안에 들어온 건데 그런 순간은 몇 초 만에 올 때도 있고 굉장히 오래 전 기억에서 떠올릴 때도 있고. 사람마다 고유의 역사가 있어서 맞닿는 지점은 다르겠지. 등단작품인 동시 ‘검은 고양이’는 귀가하는 어느 날 보게 됐던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떠올리며 썼다. 그 검은 고양이를 보면서 ‘왜 저렇게 말랐을까’, ‘기괴하게 생겼는데 안쓰러움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감정들이 교차했다.”



-나 같은 범인들도 시를 쓸 수 있을까.


“한충자라는 이름의 시인이 있다. 평생 농부로 살다가 일흔이 넘어 한글을 배우셨는데 글을 깨우치고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시를 쓰는 것이었단다. 밭에서 낫질하다가 멍하게 앉아 있으면 할아버지한테 핀잔 듣고 그랬는데 사실은 시상을 떠올리고 있었던 거지.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어떤 세계나, 자신이 말하고 싶은 무엇인가가 마음에 담겨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꾹꾹 눌러쓸 힘만 있다면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인터뷰를 하다 보니깐 갑자기 딸을 위해 동시를 써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당연한 질문이지만 딸을 무척이나 사랑하지? 사랑에 빠지면 없던 것들이 보인다. 우유를 마시는 모습, 울고 있거나 혼자 앉아 있는 모습만 봐도 아주 오래 눈길이 머무는 것이 자신의 아들과 딸이다.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그저 그 모습을 언어로 담는다고 생각해보라. 그러면 시가 술술 나오지 않을까.”




아이를 위해 사랑을 꾹꾹 눌러 쓴 동시 한편 써보실래요


-부끄럽지만 한때 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끄적여본 적도 있다. 그때마다 못하겠다 싶었던 것이 계속 멋을 내려고 하더라.


“시를 쓸 때 초고는 하루 만에도 가능하지만 퇴고의 시간은 끝도 없더라. 시라는 것은 자를 것은 자르고 남길 수 있는 것을 끝까지 남겼을 때, 그러니까 가장 경제적인 언어로 극대화된 효과를 내는 것이라고 배웠다. 조사 하나로 의미가 바뀌는 것이 시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멋 부리기’, 이걸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아, 늦은 질문인데 등단한 작품을 좀 소개해달라.


“서울 노고산동에서 혼자 살던 때 겪었던 일을 동화로 썼다. 지하 1층과 2층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이상한 곳에서 살았는데 앞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그 고양이를 키우던 청년이 이사를 갔는데 이상하게 고양이는 남아 있었다. 전화번호를 구해 연락을 해봤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고양이를 버리고 간 거였다. 그때부터 먹을 것을 주고 집도 마련해줬다. 이름은 하늘처럼 훌륭하게 크라는 의미에서 ‘하륭이’라고 지어줬다. 그 고양이의 시점에서 이름 없는 친구가 이름을 얻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작품엔 어린이와 동물이 함께 등장한다. 가난한 집의 아이와 거처를 잃고 떠돌아 다니는 고양이. 세상에서 가장 유약한 두 존재가 일어서는 힘이 무엇일지, 고민하면서 썼다. 조그맣고 작은 존재지만 서로가 ‘내가 너의 이름을 지어줄게’하는 순간 찾아오는 삶의 중요한 순간에 대해서.”



-어떤 책에서 소설가의 글쓰기는 체험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라는 말을 들었는데 딱 들어맞는 것 같다. 등단한 시도 검은 고양이를 다룬 것을 보니깐 고양이를 특히 좋아하는 가 보다.


“딱히 고양이라고 할 것은 없고 어린이와 동물을 제일 좋아한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파충류도 돌보다 동물원에 보낸 적이 있다.”



-밥벌이로서 글쓰기의 전망은 어떤가.


“밥벌이 관점에서 볼 때 글쓰기는 밥이 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문학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그런다. 글쓰기로 먹고 사는 일은 답도 없고 의지도 없다고. (하하) 책이 잘 돼서 강의가 많이 들어오면 모를까.”



-수익성을 고민한다면 요즘 유행하는 웹소설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떤가.


“웹소설을 보긴 했는데 이건 동화나 동시와는 전혀 맥락이 다르더라. 종이책의 문법이 아니라고 할까. 종이책이 지닌 무게감이란 것이 있다. 문학이 갖고 있는 엄격함이라고 할까? 웹소설을 쓸 수 있는 감각이 내겐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질문을 꼭 하고 싶었다. 얼마 전 드라마 ‘아저씨’를 정주행했다. 좋은 어른에 대한 이야기라고 이해했다. 동화를 쓰는 작가로서 좋은 어른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무거운 질문이다. 감히 그 질문에 알맞은 답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경험에서 습득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런 거다. 어린이들을 보면 각자마다 특징이 있다. 어떤 아이는 ‘어쩜 아이가 저렇게 속이 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어떤 때는 ‘어떻게 자기고집만 저리 할 수 있을까’하는 안타까움을 주는 아이도 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부모를 만나보면 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어린이의 시기는 거울과 같아서 어른의 모습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이 앞에 정장을 차려 입고 나타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장을 입고 말할 때는 말 한마디라도 함부로 내뱉지 않으니까. 가장 가까운 어른은 부모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이 부모이고 그들이 곧 어른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아이를 위해 사랑을 꾹꾹 눌러 쓴 동시 한편 써보실래요
최영동 작가의 등단작 동시 ‘검은 고양이’


-인터뷰 시간이 거의 끝났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시라.


“아동문학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 어떤 작품을 보면 일반문학인지, 아동문학인지, 경계가 굉장히 모호하다. 언어는 이 시간에도 계속 바뀌고 있고 아동문학은 그렇게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전 세대가 향유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도록 글을 쓰겠다. 아,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전해주시면 감사하겠다. ‘구자’, ‘유’, ‘원’, 세 사람이다. 고마워!”


/박해욱 기자 spooky@lifejum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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