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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이제는 블록체인 사업가 이주노라 불러주세요

활동당시 내 역할은 태지와 양군 사이 가교역할…이주노는 곧 '춤'
잇단 사업도전, 실패 맛봤지만 경영이 아닌 콘텐츠 기획에 집중

  • 노윤주 기자 daisyroh@decenter.co.kr
  • 2021-03-17 09:56:06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이제는 블록체인 사업가 이주노라 불러주세요
이주노 베리컬처 부사장이 인터뷰 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베리컬처 제공

2021년 방탄소년단이 있다면 1991년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존재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잔잔한 호수와 같던 가요계에 돌을 던지며 화려하게 등장했고,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났고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아이들’을 담당했던 이주노는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을 보냈다. 제작자로 변모했다 쓴 실패를 맛봤고, 뮤지컬로 다시 재기했다. 이후로도 사기 등 여러 사건사고에 휘말리며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는 블록체인 사업가로 변모했다. 스타 애장품을 경매하고, 수익금을 기부하는 '베리컬처'의 부사장으로 인생 후반 새로운 시작에 나선 것이다. 지난 4일 오뚝이처럼 재기를 꿈꾸고 있는 이주노를 만났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 부탁한다.


베리컬처라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에서 부사장을 맡고 있다. 내부 경영보다는 연예제작사, 스타들과 협력하고 제휴하는 대외 활동에 집중 중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이제는 블록체인 사업가 이주노라 불러주세요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커버사진. 맨 앞부터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다. 1992년 3월 타이틀곡 ‘난 알아요’를 담아 발매했고, 이 앨범은 17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서태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다. 출장을 가면 방도 따로 썼다는데, 사실인가?


태지와는 다섯 살 차이가 난다. 나이 차로 인한 거리감이 있었지만, 불화는 아니었다. 현석이가 중간 역할을 해줬다. 한 명의 뮤지션과 두 명의 댄서로 이뤄진 그룹이었다. 이에 현석이가 태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나에게 전달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매니저와 방을 쓴 것은 큰형으로서의 배려였다. 세 명이다 보니 생긴 헤프닝인데 외부에서 보기엔 사이가 안 좋아 보였을 수 있겠다(웃음).



-제작자로서 영턱스클럽을 성공시켰는데, 비결이 있었나?


처음에는 주변에서 멤버들 비주얼 때문에 제작을 말렸다. 당시에는 친근한 이미지로 공략하는 게 대세가 아니었다. 음악도 트롯이 섞인 댄스 장르라 더욱 만류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대중에게는 통했다. 친근한 애들이 춤을 잘 추니까 신났던 것 같다. 특별한 비결은 없다. 안정적인 것보단 새로운 걸 추구하는 성향이다.



-경영에 실패하면서 큰 빚을 지고, 추후 뮤지컬 제작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재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제작사(엔터테인먼트) 경영에 실패했다. 영턱스클럽, 허니패밀리 전부 재능 있는 친구들이었지만 이들을 리드하기에 나의 경영 마인드가 부족했다. 지금도 미안하다.


이에 경영보다는 창작에 집중했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원작: 프리즈), 빨간구두 등 춤을 이용한 논버벌 뮤지컬을 만들었다. 춤도 하나의 창작이지 않나, 잘하는 것에 집중해보잔 생각이었다.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이 있다면?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베리컬처에서도 콘텐츠에 집중 중이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대외 협력을 통해 협약(MOU)를 체결하는 게 주 업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이제는 블록체인 사업가 이주노라 불러주세요
이주노 베리컬처 부사장에게 춤에 대해 묻자 ‘춤과 이주노는 하나’라고 답했다./ 출처=베리컬처 제공

-이주노에게 춤이란?


춤과 이주노는 하나다. 이주노라는 이름을 얻기 전에도 춤을 췄고, 가수 활동 중에도 춤에 집중했다. 춤을 통해 기획 능력이 생겼다. 서태지와 아이들 캐스팅도 춤을 찰췄으니 가능한 것이었고. 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최근 방탄소년단 열풍을 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서태지와 아이들도 못지않은 인기를 구사했었는데.


많은 아이돌그룹이 전 세계에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15-20년 전 한류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케이팝(K-pop)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이 바로 나다. 아시아는 당연하고, 빌보드에도 진입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당시에는 '말도 안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케이팝 그룹들은 확고한 장점이 있다. 밝고, 예쁘고, 잘생겼다. 게다가 퍼포먼스와 가창력까지 뛰어나다. 국가 경쟁력이 커지고, SNS가 발달하면서 기회가 왔다. 매스 미디어에서 소개하지 않아도 SNS를 통해 가수들을 찾아볼 수 있으니 자연스레 많은 팬들이 유입된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이제는 블록체인 사업가 이주노라 불러주세요
(왼쪽부터) 양현석, 서태지, 이주노. 서태지와 아이들은 4장의 정규 앨범을 출시하고, 1996년 은퇴를 선언했다. 4장의 앨범 모두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 선정됐다.

-서태지와 아이들 당시 인기를 회상한다면?


유일했다. 대중 연예인이 누릴 수 있는 인기의 한계가 있다면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걸 뛰어넘었다. 대중문화를 국회와 청와대에 전파한 그룹이다. 서태지가 가지고 있는 생각 그리고 그가 쓴 노랫말을 보면 공감대가 형성된다. 발해를 꿈꾸며, 교실 이데아와 같은 노래들은 기존 대중 예술인들이 화두화 시킨 내용은 아니었다. 젊은 층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당시 이주노의 팬층은? 어떤 사람들이 이주노를 '최애'로 좋아했나?


일반 대중들은 서태지를 좋아했다. 나중에 보니 독특한 성향의 팬들이 나를 좋아했던 것 같다. 평범한 회사원보다는 패션이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았다.



-향후 계획 공유 부탁한다


베리컬처에서 운영하는 '베리스토어'를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다들 아직 이르다고 했지만 결국 블록체인 업계에 뛰어들었다. 개척 본능이 있는 것 같다.


/노윤주 기자 daisyroh@dece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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