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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살, 고졸로 이력서 고쳐 재취업에 성공···1년의 미화원 생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얻어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의 최성연 작가… 대학원에서 연극 전공해 희곡작가로 데뷔

녹록지 않은 예술인의 생활에 아르바이트 필수, 돈 벌기 위해 미화원 일해

현재 요가 수련자로 학생들에게 요가 가르쳐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희곡작가로 데뷔해 글을 써오다 돈을 벌기 위해 딱 일년만 미화원을 한 최성연 작가./사진=정혜선


서울 광화문 대형서점을 둘러보다 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라는 책이었다. 다른 책에 비해 표지가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책 제목이 크게 박혀 있지도 않은 이 책이 눈에 띈 이유가 궁금했다. 아마도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직장생활을 하는 데 있어 기간을 정해두진 않을 테니 ‘일 년만 하겠다’는데 관심이 간 듯하다.

궁금한 마음에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화려했다. 연세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한양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해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희곡작가로 데뷔한 그가 미화(美化)원으로 1년만 일하게 된 사연이 궁금했다. 그렇게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의 최성연 작가를 만났다.

- 만나서 반갑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최성연이고, 요가 수련자이자 프리랜서 작가다.”

- 이력을 살펴보니 화려하더라.

“이력이요? 음 대학교에선 피아노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연극공부를 했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200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 데뷔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우연한 계기로 요가에 빠졌다. 지금은 요가를 가르치며 작가로 살고 있지만, 연극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다. 앞으로는 내키는 대로 살거라, 기회를 만들어 새로운 형태의 연극도 해보고 싶다(웃음).”

- 이렇게 이력이 화려한데, 미화원으로 취직하게 된 사연이 있을 듯 하다.

“사실 특별한 사연이 없다. 연극배우들은 소득이 일정치 않아서 늘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미화원을 하기 전에는 가르치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는데, 어느 순간 그 일에 염증을 느꼈다. 제가 예술 교육에 대한 이상이 너무 컸는지 현실하고 괴리가 있었다. 그런 측면들 때문에 회의감이 들어 단순하게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력서를 써서 넣기 시작했다.”

- 그때가 언제였나.

“음, 3년 전이니까 딱 50세 때였다(웃음)”

- 대학원까지 졸업한 고학력자가 이력서를 고쳐 쓸 정도로 취업이 간절했나.

“정말 간절했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이력서를 냈는데 연락이 안오더라. 전문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분야도 아니었고, 마트 판매원, 계산원, 주방일까지 지원했는데 다 안됐다. 여자 나이 오십에 취직이 어렵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간절해져 갔다. 그러다 미화원 구직 공고를 보게 됐고, 근무 시간과 월급 등 근무 조건이 너무 좋아 일하고 싶은 마음에 이력서를 고졸로 고쳐 쓰게 됐다.”

- 이력서 합격 후 면접도 봤나.

“면접도 본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그 분들을 배신한 부분도 있는 듯하다.”

최성연 작가의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는 미화원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이미지=위즈덤하우스


- 왜 배신했다고 생각하나.

“면접 볼 때, 면접관이 젊은 분들은 금방 그만두던데 오래 다닐 수 있느냐고 묻더라. 그때는 취직해야 하니까 당연히 오래 다닐 거라고 대답했다(웃음). 원래 딱 1년만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1년 후 그만뒀다. 그런 부분에서 배신한 게 아닌가 싶다.”

- 근무 기간에 대한 질문은 어느 회사에서나 묻는 흔한 질문인듯하다.

“그런가(웃음). 이후 그 질문에 대해 되뇌면서, ‘청소 일을 왜 오래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더라. 직접 해보니까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일도 아니고, 굳이 경력자를 선호해야 하는 분야도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마음으로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이 일을 오래 한 분들이 능숙하게 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사실 이것은 그분들을 배신한 것에 대한 나의 변명이다(웃음).”

- 미화원 일은 책 제목처럼 딱 1년만 했나.

“그렇다. 딱 1년만 하고 그만뒀다. 그 일을 하게 된 이유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시작할 때부터 기간을 정해놨다. 1년간 미화원 일을 통해 돈을 벌어 다른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하고 싶었다.”

- 미화원의 일과가 궁금하다.

“보통 일반 건물청소는 그 건물 내 일하는 분들이 나오기 전에 청소를 다 마치고, 또 그 분들이 퇴근한 후 청소를 하는 방식인데, 제가 청소했던 곳은 아트센터라 조금 달랐다. 공연을 하다 보니 이용하는 고객이 늘 있으니까 공연장과 로비, 고객이 이용하는 화장실 등을 수시로 청소하는 게 주업무다. 그렇다 보니 공연시간에 따라서 일과가 달라진다. 평균적으로는 아침 에 출근해 맡은 구역 청소를 하고 잠깐 쉬었다가 공연장 등 청소하고 점심 먹고 오후에 다시 청결 상태 점검하고 일을 한다.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3시에 퇴근했는데, 오후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점이 좋아 이일을 선택한거다.”

- 일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

“청소는 일상생활에서 늘 하는 일이라 낯선 일이라는 생각이 안들었다. 게다가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역할을 맡아서 그런지 멀티플레이가 잘된다. 배우일 때도 무대도 같이 만들고 연출에도 참여하는 게 몸에 배 있는듯하다.”

- 처음 한 일이라 어려움이 있었을 줄 알았는데, 원래 적응을 잘하는 성격인가보다.

“어디든 그렇지만, 일 자체의 어려움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어려운 거 같다. 그 관계가 무조건 일에 적응했다고 해서 잘 풀리는 게 아니라서, 내 생각을 밀고 나가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해야 했다. 그런 완급 조절이 굉장히 어려웠다. 혼자 글 쓰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사회생활, 특히 조직 생활에 대한 요령이 부족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 책을 보다 보니 ‘산책을 했다고 왕따라니요’라는 소제목이 눈에 띄더라. 책에 적혀 있지만, 이 에피소드를 짧게 소개해 달라.

“미화원은 쉬는 시간에 ‘미화 사무실’이라 불리는 조그만 방에서 낮잠을 자거나 옹기종기 모여서 쉰다. 나도 몇 번 그렇게 쉬다 답답해 산책을 했다. 다른 분들 눈에는 미화원이 일하지 않는 시간에 나와서 산책을 한다는 게 이상하게 생각됐는지, 내가 왕따를 당하는 거 같다는 보고가 윗선에 들어갔다더라. 완전한 헤프닝이었다.”

- 미화원을 하며 바라본 세상은 어떤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할 때 제목이 ‘쓸고 닦으면 보이는 세상’이었다. 사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미화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선입견이 남아 있는듯하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가 보니 정작 그분들은 미화원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 나이에 몸을 움직여 일할 수 있다는 데 만족해하고, 감사하며 밝고 긍정적이더라. 그런 자세가 참 보기 좋았다.”

- 100세 시대다 보니, 미화원은 우리 부모님 혹은 나 자신이 인생 2막에 할 수도 있는 일이 됐다.

“그렇다. 미화원분들이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만들면 좋겠다. 지금 환경문제가 심각한데, 쓰레기를 수거하고 관리하는 게 이분들의 일이지 않나. 이분들에게 재활용 관련 교육을 정기적으로 해서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준다든지 해서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해주면 미화원 일에 대한 선입견도 줄어들고 이분들의 자부심도 더 커지지 않을까 싶다.”

- 미화원 일을 1년간 한 후 인생이 조금 달라졌나.

“일단 책을 쓰지 않았나(웃음). 책을 쓴 덕분에 지금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있고. 무엇보다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더불어 무슨 일이든 만만한 게 없다는 것도 배웠다.”

최성연 작가는 현재 요가 수련자로 요가를 가르치고 있으며, 앞으로 브런치에 중년의 성과 관련된 글을 쓸 예정이다./사진=정혜선


- 먼저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은퇴 후 인생 2막의 직업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미화원 일을 추천하겠나.

“미화원 일 자체는 추천하고 싶다. 나는 일을 하면서 깨끗해진 공간을 보고 보람도 많이 느꼈다. 다만 시설을 잘 선택해야 한다. 시설에 따라 복지나 처우 조건이 불합리한 곳도 있기 때문이다. 꼭 미화원이 아니더라도, 인생 2막에는 직업의 범위를 넓히는 게 좋다. 내 친구는 제주도에 사는데, ‘바다지킴이’에 지원했다가 너무 젊어서 떨어졌다(웃음). 60대 이상이어야 한다고 해서 60살이 되면 다시 지원한다고 하더라.”

- 이미 희곡으로 데뷔한 작가라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게 어렵진 않았을 거 같다.

“꼭 그렇지는 않다. 희곡과 에세이는 글 쓰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사실 내가 에세이를 쓸 날이 올지는 몰랐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이 경험을 에세이로 써야지하고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일하다 새롭게 느껴지는 일이나 사건이 있었을 땐 기록해둬야겠다는 생각에 적어뒀던 것들을 나중에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더니 된거다. 그렇게 책으로까지 나오게 됐다.”

- 지금은 또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더라. 요가 수련자로 요가를 가르치고 있다고.

“요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는 5~6년 정도 됐다. 요가를 시작하게 된 과정도 굉장히 복잡하다. 요가를 시작하기 전 소설을 써 공모전에 냈다. 계속 떨어지더라. 사실 희곡은 ‘써볼까’ 하고 썼다가 한 번에 돼서 소설도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소설은 평생 내 작품 하나 쓴다는 마음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소설을 쓰면서 생활도 하려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직업이 필요했다. 마침 그때 요가를 배우고 있었던 터라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한거다.”

- 요가 자격증을 따야지 결심하고 바로 실행해 옮겼다니 대단하다.

“요가를 할 당시 제가 믿고 있던 종교와 ‘왜 사는 지’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하고 있었는데, 그 고민의 해결 방법을 요가를 통해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침 그때 아는 선배가 태국에서 요가 과정을 밟고 있다고 해 알아보니 국내보다 가격이 저렴해 나도 그쪽으로 넘어가 요가 수련을 받게 됐다.”

- 참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다양한 일을 찾아서 하는 듯하다. 작가님 생각에 우리는 왜 일을 찾아다닌다고 생각하나.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이 너무 지나치게 과대평가 돼 있지 않나 싶다. 음...‘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나 ‘근면성실’처럼 일이 너무 신성시된 느낌이다. 나이 들어보니까 일이란 필요한 만큼만 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 노후 준비하면 모아놓은 돈을 이야기하는데, 돈 버는 일이 아니라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살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돈 벌기 위한 일만 하다가 죽으면 너무 슬프지 않나.”

- 나이 들수록 일에 대한 편견부터 버려야 할 듯하다.

“맞다. 사회 혹은 타인이 요구하는 기준보다 나에게 집중해야 편견을 버릴 수 있는 힘이 나올 것 같다.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거다. 내 모습이 부족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인정하고 긍정하고 충분히 현존할 때 거기서부터 또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 혹시 또 다른 도전을 준비 중인가.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일단 남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고, 조만간 중년의 성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다.”

- ‘중년의 성’은 노년 모두의 관심사 아닌가. 재미있을 거 같다.

“다음번에는 내 글을 위한 인터뷰이로 만나 달라(웃음).”

/정혜선 기자 doer0125@lifejump.co.kr
정혜선 기자
doer01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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