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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안동·청송 빙박] '-20도' 얼음의 온도, 나를 달구다

경북 잇는 930번 지방도 얼음여행 맛집

해 지면 '영하 20도' 대사리 빙벽서 빙박

별빛·달빛에 기대 가슴 따뜻한 하룻밤

길안천 설경 따라가다보면 청송 얼음골

빙박 못하지만 만개한 얼음꽃 보며 차박

오미크론 피해서 오롯이 혼자되는 시간

안동 대사리 빙벽 앞은 빙판 위에서 하룻밤을 묵는 ‘빙박 성지’다. 빙박은 ‘차박’ ‘드라이브 스루’처럼 코로나19 발생 이후 생겨난 대안 여행의 일종이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맞은 두 번째 겨울,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여행의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해외 여행길이 막히자 여행객들은 국내 유명 관광지에 이어 사람이 덜 몰리는 지방 소도시를 찾기 시작했고 숙박 방식에서도 ‘차박(차량+숙박)’이나 ‘드라이브 스루’ 같은 이색 여행에 매료되고 있다. 최근에는 겨울철을 맞아 ‘빙박’이라는 신개념 여행이 대세로 떠올랐다. 빙박은 얼음판 위에서 즐기는 캠핑으로, 얼음 왕국에서 하룻밤을 묵는 것 같은 낭만적인 극한 체험을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추운 날일수록 더 많은 사람이 몰린다는 빙박 명소, 경북 안동·청송을 다녀왔다.

꽁꽁 얼어붙은 길안천은 빙벽을 기어 오르는 아이스 클라이밍과 빙박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겨울철 인기 여행지다.

설경 보러 겨울산 등반은 옛말…빙벽 아래서 하룻밤, 빙박이 대세



입춘이 지났지만 강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겨울 산행을 압도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겨울 스포츠의 꽃’이라는 아이스 클라이밍 현장인 빙벽이다. 아이스 클라이밍 선수들이나 동호인들이 훈련을 위해 찾던 빙벽장이 올겨울에는 순백의 얼음꽃을 감상할 수 있는 인기 여행지로 떠올랐다.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거대한 물줄기는 마치 누군가 정교하게 조각해놓은 예술 작품을 연상시킨다. 경북 청송부터 안동까지 이어지는 낙동강 지류인 길안천을 따라가다 보면 얼음 왕국의 담벼락 같은 빙벽 네 곳이 겨울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가장 먼저 만나볼 곳은 길안천 하류인 안동 대사리 빙벽장이다. 이곳은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매년 1월 ‘한절골 얼음축제’가 열렸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축제가 취소되면서 빙벽은 얼음 위를 기어오르는 아이스 클라이밍 명소로 떠올랐고, 주변으로는 빙벽을 감상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높이 70m의 대사리 빙벽은 좌우로 2개의 빙벽이 나란히 있는데 얼음으로 뒤덮인 곳이 하천의 물을 끌어올려 만든 인공 빙벽이고 얼음이 듬성듬성 달린 곳은 자연 빙벽이다.

아이스 클라이밍 동호인들이 대사리 빙벽 등반을 위해 아이스 바일로 얼음을 확인하고 있다.


아이스 클라이밍은 선뜻 도전하기 힘들지만 빙벽을 배경으로 즐기는 빙박은 올겨울 대세 여행으로 자리 잡았다. 빙박은 빙판 위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 묵어가는 백패킹의 일종으로, 코로나19 초기 열풍을 몰고 온 ‘차박’에 이은 신개념 노지 캠핑이다. 빙박지는 밤새 바닥이 녹지 않고 꽁꽁 얼어붙은 채로 유지돼야 하기 때문에 한낮에도 영하 5도 이하의 기온을 유지하는 빙벽 아래가 최적의 빙박지다. 해가 지면 체감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대사리 빙벽 앞은 ‘빙박 성지’로 꼽힌다. 아이스 클라이밍 동호인들이 빙벽을 오르는 동안 주변에서는 빙박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텐트가 설치되는 곳은 빙벽에서 10m가량 떨어진 길안천 한가운데다. 밤새 떨어지는 얼음 조각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빙벽과 거리를 둔 채 빙박족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는다.

얼음판 위에 자리를 깔고 누우면 바닥에서 쩍쩍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대사리 빙벽 앞은 얼음 두께가 30㎝ 이상이라 밤새 녹을 위험은 없다고 한다. 빙박족들이 꼽는 대사리 빙벽의 매력은 광막한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 별과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빙벽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빙박은 밤새 바닥이 녹을 위험이 전혀 없는 1월부터 2월 말까지만 가능하기 때문에 주말이면 이른 시간부터 자리 잡기 경쟁이 벌어진다. 특히 빙벽 바로 앞은 가장 경쟁이 치열한 빙박 최고의 명당이다. 빙박이 아니더라도 겨울에 피는 꽃 빙벽 감상은 놓치기 아까운 겨울 풍경이다.

청송 얼음골 빙벽은 쏟아져 내리던 물이 그대로 굳어버린 모양이다. 주말이면 얼음골은 빙벽을 구경하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길안천 따라 곳곳에 세워진 빙벽…드라이브 스루로 즐기다



길안천 주변은 기암절벽과 고목들이 어우러져 청송과 안동의 명소들이 줄지어 선 곳이다. 청송 구간에서는 백석탄 포트홀, 만안자암 단애 같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지질 명소를, 안동 구간에서는 만휴정·금소생태공원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이 길안천 물길을 따라 이어진 도로가 930번 지방도다. 경북 내륙을 통과하는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로 꼽히는 이 도로를 따라가면 대사리 빙벽부터 청송 얼음골까지 빙벽 명소를 모두 거쳐간다.

다양한 모양으로 얼어붙은 빙벽은 겨울철 최고의 인기 여행지다.


길안천을 따라 청송으로 넘어오면서 신성계곡으로 이름이 바뀐다. 두 번째 만나볼 빙벽은 신성계곡 상류인 청송 주왕산면 얼음골에 있다.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신비의 계곡 얼음골에는 높이 62m의 빙벽이 들어서 있는데 얼음골 빙벽 역시 자연이 아닌 인공 빙벽이다.

한 여행객이 빙벽을 기어오르는 듯한 포즈로 취하고 있다. 사진은 청송 아이스 클라이밍 경기장 빙벽.


얼음골은 몇 년 전부터 아이스 클라이밍과 빙박을 모두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빙벽을 감상하기에는 아이스 클라이밍으로 곳곳이 깨져버린 대사리보다 얼음골이 더 낫다. 마치 흘러내리던 물이 순간 굳어버린 듯한 이곳 빙벽은 곳곳에 만개한 꽃부터 브로콜리, 고드름 모양의 다양한 얼음 조각을 찾아볼 수 있다. 얼음골은 빙박족이 아니라 차박족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바로 앞 공터, 빙벽을 감상하기 좋은 자리에는 일찍부터 자리를 잡은 차량들이 늘어서 있다.

청송 아이스 클라이밍 경기장은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대회가 취소되면서 여행객들의 차지가 됐다.


얼음골 빙벽 옆 신성계곡이 꽁꽁 얼어붙었다. 사진은 얼음골을 찾은 한 가족이 썰매를 타고 있는 모습.

청송읍내 용비암은 밤에도 빙벽을 볼 수 있도록 조명을 비춘다.


얼음골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빙벽은 청송 아이스 클라이밍 월드컵 대회장이다. 올해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대회는 취소됐지만 이로 인해 여행객들은 온전한 빙벽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대회장 빙벽은 높이 60m, 폭 100m로 가장 큰 규모다. 다만 얼음골과 대회장 모두 주말이면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인다는 게 단점이다. 조금 한적한 곳을 찾는다면 청송읍내 용전천으로 가면 된다. 용전천 용비암 빙벽은 여행객들보다는 청송 시민들을 위한 빙벽으로, 다양한 색상의 조명을 비춰 밤에도 감상할 수 있다.

청송 지질 명소인 백석탄 포트홀. 안동에서 930번 지방도를 타고 대사리 빙벽을 지나면 만날 수 있다.

자연이 빚은 예술과 인간이 그린 예술의 조화



신성계곡은 청송 8경 중 주왕산을 제치고 제1경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겨울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을 꼽으라면 하류에 자리한 ‘백석탄 포트홀’이다. 백석탄은 흰 눈을 뒤집어쓴 것 같은 바위군으로, 계곡의 물 흐름에 따라 오랜 시간 풍화·침식돼 생겨난 흔적인 포트홀(돌개구멍)이 여기저기 나 있다. 겨울은 얼어붙은 계곡물과 주변에 가득한 백색의 퇴적암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널찍한 백석탄 위에 앉아 수만 년 동안 자연이 빚어낸 그림 같은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해보기를 권한다.

군립청송야송미술관에 걸린 이원좌 화백의 ‘청량대운도(淸凉大雲圖)’. 그림을 한눈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겨울 산행이 못내 아쉽다면 진보면 군립청송야송미술관에 들러보자. 한국화가 야송 이원좌(1939~2019) 화백의 그림을 전시한 곳으로, 초대형 진경산수화가 전시돼 있다. 작품명은 ‘청량대운도(淸凉大雲圖)’. 이 화백이 2년에 걸쳐 완성한 역작이다. 20폭의 전지 위에 경북 봉화의 청량산을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 가로 46m 세로 6.7m 크기의 이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별도의 전시관을 세웠을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다. 전시관 2층에 올라가 그림 속 청량산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청송군 안덕면에 자리한 방호정(方壺亭)은 조선시대 학자 조준도가 건립한 누정이다. 신성계곡 상류의 그림 같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실제 풍류를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모친을 그리워하며 묘소 아래 지었다고 전해진다.

글·사진(안동·청송)=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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