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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위한 도구 넘어···안경은 일상의 예술"

◆1세대 안경테 디자이너 김종필 디자인샤우어 대표

사업 실패로 13억 빚더미 경험 후

시장·소비자 소통 중요성 깨달아

나사 없앤 '클립형' 만들어 호응

양희은 독특한 안경도 그의 작품

"국내서도 디자인 투자 늘어나길"

김종필 디자인샤우어 대표가 안경다리를 끼었다 뺐다 할 수 있는 클립형 안경테를 소개하고 있다.


“내가 만든 안경테가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들게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되려면 예술을 일상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예술가와 같이 자기 취향이 분명한 사람들은 독창적인 것을 테마로 하되 일반인들은 편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디자인하는 이유입니다.”

1세대 디자이너이자 수제 안경으로 최근 입소문을 타고 있는 김종필(50) 디자인샤우어 대표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일상의 예술화”로 표현한다. 실제로 서울 망원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특이한 안경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렌즈를 감싸는 테가 마치 나비처럼 생긴 것, 알록달록한 색깔에 마치 로봇을 연상시키는 제품, 너무 가벼워 착용한 건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인 안경테 등등…. 한쪽 기둥에는 안경 부품을 만드는 설계 도면까지 붙어 있다. 얼핏 봐도 일반 안경점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김종필 대표가 운영하는 디자인샤우어 사무실 기둥에 붙어 있는 안경 구조도.


안경의 목적은 우선 ‘잘 보는 것’이지만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안경은 얼굴에 쓰는 것이다. 그만큼 남의 시선에 잘 뜨인다. 어떤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 보이기도 한다. 김 대표가 디자인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이유다. 그는 “의상과 마찬가지로 안경 역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며 “잘 보는 것 못지않게 사람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 쓰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디자이너도 예술가인 만큼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김 대표도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히려 시장과의 소통을 중요시한다. 그는 “지금까지 디자이너들은 소비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만을 중요시했다”며 “디자이너도 소비자와 소통을 통해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나눠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디자이너도 시장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필 대표가 안경다리 부러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든 베타티타늄 소재 안경테를 선보이고 있다.


그가 이렇게 생각을 바꾼 데는 과거의 뼈아픈 경험이 큰 몫을 했다. 1996년 당대 최고의 안경테 업체인 서전안경 디자인 공모전에 당선돼 디자이너로 첫발을 뗀 김 대표는 2003년 창업을 했다. 이후 특이한 디자인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유명세를 탔다. 제동이 걸린 것은 약 10년 전. 경영을 모르고 무작정 사업을 확장하면서 13억 원이 넘는 빚더미에 올라섰다. 사업은 망했고 신용불량자라는 딱지까지 붙었다. “삼각김밥 2개, 맥주 2캔을 사 들고 한강공원에서 앉아 왜 망했는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경영에 대해 무지했고 자금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도 몰랐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시장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은 것도 이때였죠.”

그렇다고 김 대표가 디자이너의 생명인 창조성까지 버린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안경테가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안경다리를 나사로 고정하는 대신 끼었다 뺐다 할 수 있는 클립 형태로 대체한 것이다. 제품을 만들다 남은 자투리 조각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붙여 만든 것도 있다. 가수 양희은이 끼고 있는 독특한 모양의 안경 역시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이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도 없는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며 “나사를 없앤 안경은 올해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본상을 받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김종필 대표가 나비 모양의 예술가용 안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의 열정에 가장 먼저 답한 곳은 해외였다. 중국의 한 업체가 그의 이름을 내건 안경을 조만간 출시하기 위해 준비 중이고 이탈리아 대형 업체도 계약 직전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는 “해외 박람회에 참가했을 때 이탈리아 업체의 최고경영자(CEO)가 수차례 부스를 방문해 ‘이런 것은 처음 본다’며 깊은 관심을 표했다”며 “조만간 이뤄질 계약에 대비해 개발품을 더 많이 준비해야 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안타까운 점도 있다. 특히 중국에 밀리고 있는 한국 업계의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 가면 가격이 싼 데도 좋은 제품들이 너무 많다는 데 놀라지만 한국에 돌아오면 너무 정체돼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며 “국내 안경 업계도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투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사진=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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