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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고기 기준은 마블링보다 '육질'이죠"

◆31년 경력 발골 전문가 최영일 가양식품 이사

스테이크 2등급·육회는 3등급 적당

조리법·요리종류 따라 기준 달라

살코기 한점도 귀해…세심한 작업

"한국도 전문가 길러낼 시스템 필요"

최영일 가양식품 이사가 발골을 앞두고 돼지고기 부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최영일


“스테이크는 2등급, 육회용 고기는 3등급이 가장 적당합니다. 지방이 많으면 안 되기 때문이죠. 육사시미를 만들 때는 안심이나 등심 대신 마블링이 가장 적은 우둔을 사용합니다. 육사시미의 재료도 지역마다 다릅니다. 대구는 황소를 선호하지만 전라도는 12시간 이내에 도축된 암소를 주로 선택합니다. 그래야 찰지기 때문이죠. 마블링이 모든 쇠고기의 절대 기준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마장동 최박사’로 불리는 31년 경력의 발골 전문가 최영일(53·사진) 가양식품 이사는 17일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고기는 마블링이 아니라 육질로 판단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최 이사는 원래 가죽옷을 전문으로 만들었던 봉제사였다. 관련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1991년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여놓게 된 발골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1995년 제1회 식육처리기능사 시험에 합격하면서 공인 발골 기술자로 인정받았고 이후 국내 대표 육가공 업체 중 한 곳의 창립 멤버로 3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지금의 회사는 그의 막내 동생이 대표로 있다.

최영일 가양식품 이사가 고기 등급제에 대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최 이사가 돼지 한 마리를 해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5~6분. 시간당 열 마리는 거뜬하게 해치운다는 뜻이다.

소는 시간이 훨씬 많이 든다. 시간당 한 마리 하기도 벅차다. 무게가 더 나가고 분할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소는 기본적으로 비싼 고기입니다. 안심·등심 같은 부위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뼈를 발라낼 때 살코기 한 점이라도 덜 붙어 있도록 세심하게 작업을 해야 합니다. ‘칼 끝에서 돈 나온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30년 넘게 발골 작업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행 중인 등급제는 농가 소득을 올리기 위한 것이지 결코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원래 7단계였던 등급 위에 상위 2개 등급을 더 만들어 9개로 늘린 것도 소비자에게 더 비싼 값을 받고 팔기 위함이라는 게 그의 평가다. 최 이사는 “국가에서는 고혈압과 같은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해 지방을 적게 먹으라고 말하면서 마블링이 좋은 것에는 높은 등급을 매긴다”며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최영일 이사가 도축된 돼지를 발골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사진 제공=최영일


육고기 공급의 가장 큰 목적은 ‘동물성 단백질의 공급’이다. 그렇다면 판단의 기준은 마블링이 아니라 ‘육질’에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등급제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최 이사는 “사실 순수하게 고기 조달만이 목적이라고 한다면 1등급이면 충분하다”며 “나머지는 개인의 취향에 맞추면 그만”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마블링이 고기 맛을 좋게 하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람들이 맛있어 하는 것은 부드럽고 고소한 고기다. 마블링이 이 중 고소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고소함도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서울의 한 유명 고깃집처럼 버터를 바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모든 고기에 마블링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스테이크는 2등급 고기가 오히려 낫고 육사시미는 찰기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오히려 마블링이 없는 부위를 쓴다. 결국 조리 방법과 개인의 선호가 가장 중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쇠고기에서 마블링이 지고지순의 진리는 아니라는 뜻이다. 단 냄새가 없고 부드러운 고기를 원한다면 선홍빛을 머금은 것을 고르라고 조언한다. 검붉은 색은 육질이 질기기 때문이다. 돼지고기의 경우 흰색이 어렴풋이 비치는 것은 수분이 빠져나간 상태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피하라고 지적했다.

그에게도 아쉬움은 있다. 우리나라는 3급 식육처리기능사만 있을 뿐 1·2급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1·2급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의 관련 학과를 나와 일정 시간 교육을 받은 후 시험을 쳐야 하지만 발골에는 이런 학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 이사는 “일본에서는 식육 처리 기술학교가 존재해 관련 교수도 배출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 있는 기반 자체가 없다”며 “우리나라도 학과를 만들어 전문가를 체계적으로 길러내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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