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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은 울림···보청기 빼고 손끝으로 듣죠"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 지정 예고 된 임선빈 씨

61년동안 북 제작 외길 걸어와

평창동계패럴림픽 대북 등 제작

"북소리는 심장의 맥박과 같아

혼 담은 '영신의 북' 만들고파"

임선빈 악기장이 천연 안료를 이용해 북에 단청을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임선빈 씨


“북의 음을 잡는 것은 귀가 아닙니다. 가슴입니다. 북을 치면 손끝을 타고 가슴으로 전해지는 울림을 느끼며 음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혼을 달랠 수 있는 소리가 나오지요.”

최근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 북 제작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임선빈(72) 씨는 31일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작업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북의 소리는 손끝으로 듣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악기장 보유자이기도 한 그는 61년 동안 북 하나만 붙잡고 산 ‘북쟁이’다.

열정도 대단하다. ‘눈뜨면 공장, 해 져도 공장’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다. ‘북 만드는 사람은 가죽과 살아야 한다’는 신념 탓이다. 전통 방식만 사용해 만든 300여 개의 대북은 임 악기장의 인생 그 자체다. 청와대 춘추관과 파주 통일전망대에 설치된 대북 작업에 참여하고 국내 최대인 직경 240㎝짜리 울림판을 가진 북을 만들어 안양시에 기증한 것은 이 중 일부에 불과하다. 201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회식에 사용된 후 기증한 대북도 그의 작품이다.

임 악기장은 보통 때는 보청기를 끼고 산다. 어렸을 때 동네 불량배들에게 맞아서 왼쪽 귀 청력을 잃었고 오른쪽 귀도 밀폐된 공간에서 북소리를 계속 듣다가 망가졌다. 그럼에도 소리가 제대로 나는지 검사를 할 때는 보청기를 뺀다. 북소리를 판단하는 것은 귀가 아니라 심장이라는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대신 북을 잡은 손끝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북소리는 심장의 맥박과 같은 울림으로 나옵니다. 그것이 북을 잡고 있는 손끝을 통해 심장으로 전해지는 것이지요. 제가 어디를 가더라도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 것도 소리를 전달하는 소중한 것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죠.” 그의 명함에는 ‘나는 소리를 귀가 아닌 손끝으로 듣는다’라는 문구가 써 있다.

임선빈 악기장이 북을 두드리며 울림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사진=송영규 선임기자


북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울림판이다. 재료로 쓰이는 소가죽은 공장에서 만든 것을 쓰지 않고 직접 고른다. 세포가 살아 있는 가죽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소가죽은 부위마다 특성이 다르다. 목 가죽은 두껍기 때문에 판소리용으로 쓰이고 무속인이 쓰는 북은 얇은 배 가죽을 사용한다. 농악을 할 때는 등 가죽을 사용하고 엉덩이 가죽은 사물놀이용 북에 제격이다. 반면 대북은 소 한 마리 가죽이 통째로 들어간다. 그만큼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 그는 “대북은 얇고 굵기가 제각각인 부위를 사용하기에 울림판을 만들 때 목 가죽에 해당하는 부분은 더 당기고 얇은 배 가죽 부위는 덜 당기는 등 부위별 특성에 따라 달리 다룰 줄 알아야 한다”며 “옛날에 북 만드는 사람들이 소를 직접 밀도살한 후 가죽을 벗겨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선빈 악기장이 자신이 제작한 북의 용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송영규 선임기자


좋은 북소리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사찰에서 쓰는 법고(法鼓)를 예로 들었다. 법당에는 쇠붙이가 많다. 불상이 그렇고, 촛대와 향로·풍경 등 쇠로 만든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북소리가 이런 쇠붙이와 부딪히면 ‘짱’ 하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이런 소리는 사람의 신경을 곤두서게 할 뿐 마음의 평안을 찾는 사찰과는 맞지 않는다. 임 악기장은 “법고는 쳤을 때 휘몰아치는 소리로 사람의 가슴에 닿아야 한다”며 “그래야 혼을 달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게는 잊지 못하는 소리가 있다. 11세 때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서울에서 동네 깡패들의 시달림을 피해 대구로 내려와 우연히 북 만드는 공방에 들어갔던 때였다. 하루는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 한밤중에 스승이 만든 북을 두들겼다. 북에서 나오는 울림이 마치 자신을 위한 소리인 듯했다. 임 악기장은 “그때 북에서 나는 소리가 부모 품에 안겨 재롱을 피우던 시절의 따뜻함처럼 느껴져 하염없이 울었다”며 “지금도 그때 들은 북소리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사람의 혼을 담은 ‘영신(靈神)의 북’을 만드는 것이다. 종은 국보가 있는데 북은 그런 문화재가 없다는 안타까움도 여기에 한몫했다. 때마침 시흥시에서 새 문화원을 짓는데 대북을 놓을 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임 악기장은 “제야의 종소리로 유명한 ‘보신각종’이나 ‘에밀레종’과 같은 국보급 문화재가 있는데 북은 그런 것이 없다”며 “앞으로 모든 힘을 다해 혼을 담은 북을 만든 후 문화원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목표를 밝혔다.
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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