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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노래로 제2 인생"···세상 바꾸는 '歌장'들

◆내달 7일 정기공연 앞둔 국내 1호 '우리아버지합창단'

IMF때 가장들에 용기 주려 창단

기업 임원서 일용직까지 직업 다양

성악 배운 적 없는 아마추어지만

실력 인정받아 해외공연도 수차례

"연습장에 오면 모든 피로 사라져"

우리아버지합창단원들이 김신일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다음 달 7일 열리는 정기 공연에서 선보일 노래를 연습하고 있다.


오후 7시 서울 방배동 지하 사무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기업 임원부터 일용직 근로자까지 직업은 천차만별이다. 나이도 40대부터 70세까지 다양했다. 얼핏 공통점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단 하나. 노래를 부르기 위함이다. 이들의 이름은 ‘우리아버지합창단’.

다음 달 7일 제23회 정기 공연을 앞둔 우리아버지합창단은 1997년 처음 만들어졌다. 현재 20여 개에 달하는 국내 아버지합창단의 모태인 셈이다. 1997년 5월 16일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성악가 김신일 지휘자가 서울 부암아트홀에서 15명의 아버지들과 함께 ‘서로 도우며 아름답게 노래로 세상을 바꾸자’며 의기투합한 것이 시작이었다. 합창단의 모토 ‘세상을 바꾸는 노래의 힘’은 여기서 나왔다.

합창단이 탄생하게 된 배경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비극이 담겨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대규모 구조 조정으로 수많은 가장들이 차가운 길거리로 내몰렸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아버지들에게는 위로와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일이 필요했다. 사무실에서 만난 김 지휘자는 “외환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우리 아버지를 다시 볼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며 “합창단 이름에 ‘아버지’를 넣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원들은 지휘자를 제외하면 모두 성악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아마추어다. 그렇다고 얕잡아 봐서는 안 된다. 이들이 서는 무대는 예술의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 같은 대형 공연장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2018년에는 한반도 평화와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신년 음악회에도 참가했다. 해외 공연 역시 수차례 다녀왔다. 최승민 단원은 “지금까지 서너 차례 공연을 위해 해외에 나간 적이 있다”며 “2000년에는 미국에서 간첩 혐의로 수감된 로버트 킴의 구명 활동을 위한 행사를 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우리아버지합창단 김신일 지휘자


보통 연습은 매주 월요일 오후 7시부터 3시간가량 진행하지만 공연을 앞두고는 자정 넘어 오전 1시까지 강도 높게 이뤄지기도 한다. 실제로 이날 ‘꿈꾸는 섬’을 부르는 도중 지휘자의 질책이 쏟아졌다. “목으로 하지 말고 머리로 하세요” “경합할 때 그렇게 부르면 예선 탈락감이에요.” 결국 똑같은 노래를 수십 번 부른 뒤에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창단 멤버면서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는 손치중 씨는 “한때는 너무 힘들어서 ‘이번 공연만 끝나면 그만두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그래도 결과가 좋게 나오는 것을 보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꾸고는 했다”고 말했다.

합창은 단원들이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에 찌들었던 삶 대신 자신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새로운 삶을 얻은 것이다. 73세의 최고령 단원인 이영태 씨는 “노래하면서 건강과 활기를 찾았다. 항상 음악과 함께하니 외롭지도 않다”며 “지금까지는 어려운 생활을 해왔지만 이제는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만족해했다. 남기은 씨도 “일주일에 두세 번 육체노동을 하게 돼 힘이 많이 들지만 연습장에만 나오면 피로가 모두 사라진다”며 “단원들이 함께 같이하면서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악과 함께하면서 건강과 부부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송한근 씨는 “노래를 하면서 자세가 교정돼 건강도 좋아지고 표정도 밝아졌다”며 “사는 게 즐겁다 보니 부부 사이에 싸울 일도 사라졌다”고 변화한 모습을 소개했다.

명시적인 합의는 없지만 합창단이 불문율처럼 지키는 것이 하나 있다. 기쁨과 슬픔은 모두 함께한다는 것이다. 단원들의 자녀가 결혼할 때 축가로 축하하고 장례가 있을 때 조가로 위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손 씨는 “단원들의 경조사가 있으면 다들 턱시도를 입고 찾아간다”며 “한 번은 동료 장례식에도 간 적이 있다. 함께했던 사람과 마지막까지 같이 있다는 것이 정말 멋있지 않은가”라고 자평했다.
글·사진=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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