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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견딘 나에게 '잘 살았다' 말하고 싶어"

■'자서전 낸 늦깍이 학생' 장영순·김정자

고된 시집살이 등 치부 드러냈지만

스스로 삶 평가했을 때 자랑스러워

지금 가장 큰 행복은 '배우는 것'

자서전 ‘그래서 나는 학생입니다’를 공동 집필한 장영순(왼쪽) 씨와 김정자(가운데) 씨가 김경희 안양시민학교 교장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3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참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래도 남 손가락질 안 받고 자식들은 잘 키웠습니다. 즐거웠던 인생은 아니지만 글로 써서 기록으로 남기면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글을 배운 할머니 학생으로 최근 자서전 ‘그래서 나는 학생입니다’를 펴낸 장영순(87), 김정자(67) 씨는 5일 경기도 안양시 안양시민학교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운 삶을 잘 견뎌낸 나 자신에게 ‘참 잘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며 출간 이유를 밝혔다. 10명의 할머니 학생들과 함께 집필에 참여한 장 씨와 김 씨는 안양나눔여성회에서 운영하는 문해교육기관 ‘안양시민학교’의 첫 입학생으로 내년 2월 중학교 졸업장을 받는다.

자서전은 김 씨가 18년간 일기를 써온 사실을 김경희 교장이 알면서부터 시작하게 됐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하지만 가정과 자식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헌신적인 우리나라 여성들의 삶을 남들에게 기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김 교장은 “우리 중 어머니들의 인생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무도 모르는 어머니들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이를 통해 이렇게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출간 이유를 설명했다.

장 씨와 김 씨가 자서전을 낸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우선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야 했다. 자신이 학교에 다닌다는 것이 알려질까 봐 자서전 쓰는 대상에서 빼달라고 하기도 했다. 김 씨는 “내가 글을 몰랐다는 것은 며느리도, 주변 누구도 모른다”며 “자서전을 썼다는 것을 알면 그것이 다 드러날 텐데 싫었다”고 설명했다.

장영순(왼쪽) 씨와 김정자 씨가 자서전 ‘그래서 나는 학생입니다’를 보며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삶의 기억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이들에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고 한다. 5세 때 어머니를 여읜 아픔, 시집 와서 죽도록 일만 했던 일, 아무 도움도 못 받고 아이들을 키워야 했던 시절이 아팠고(장 씨), 치매 할머니, 계모 밑에서 학교도 못 갔던 서글픈 기억, 15년간의 남편 병간호 등 어려웠던 경험(김 씨) 등 아픈 과거를 다시 들춰내는 일이 쉬울 리 없다.

많은 어려움에도 자서전을 쓰게 된 것은 스스로 삶을 평가했을 때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지 않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잘 살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장 씨는 “글을 쓰면서 내가 힘들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은 때도 있었다”면서도 "그래도 아들딸이 잘사는 것을 보면 내가 못 살았던 것만은 아닌 듯하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다. 지금까지 나만 힘들게 산 줄 알았는데 함께 책을 만들다 보니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할머니들끼리 더 끈끈한 정이 생기게 된 셈이다.

글을 배우며 여기까지 왔다는 것에 대해 느끼는 만족감도 컸다고 한다. 이들에게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아픔이 글을 알고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기쁨으로 바뀐 것만큼 더 큰 행복은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여기 오는 게 싫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배우는 것만큼 기쁘고 행복한 것이 없습니다. 집에 있으면 아픈 몸이 여기 오면 싹 낫는 걸요. 심청전의 심 봉사처럼 눈을 뜨고도 세상을 못 봤는데 이제 세상을 볼 수 있게 됐으니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두 할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생기는 이유다.

할머니들의 도전이 이번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 교장은 내친 김에 더 나가고 싶다고 한다. 문해교육을 알리고 세상이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을 다시 보는 계기로 만들고 싶어서다. 그는 “자서전을 한 번 내고 나니 다른 반 학생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더라”며 “기회가 된다면 계속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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