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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자리 개기·5000보 걷기···'백수'가 일하는 회사는

◆무직 청년 위한 가상회사 '니트생활자' 박은미·전성신 공동대표

취업난에 '노력 부족했나' 자괴감

소속감 결여·사회안전망서 배제

가상직장서 10시~18시까지 근무

100일간 활동으로 삶 동력 얻어

"청년 잠재력 발휘할 기회 제공을"

전성신(왼쪽)·박은미 니트생활자 공동대표가 가상의 회사 ‘니트컴퍼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요즘 청년 백수들은 너무 잘났어요. 외국어 2개는 기본으로 하고 자격증도 여러 개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취직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어쩌다 회사에 들어가도 적응을 못 하고 나오기 일쑤죠. 그래서 생각합니다. 내 노력이 너무 부족했나, 이렇게 쓸모없는 존재였나. 좌절에 빠진 청년들은 결국 사회에서 배제된 채 ‘유령’ 같은 삶을 지내게 되죠.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청년 백수들을 대상으로 가상의 회사 놀이 공간을 마련한 박은미·전성신 니트생활자 공동대표는 6일 서울 무교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젊은이들이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고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며 살았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박은미 니트생활자 공동대표


이들이 니트생활자를 만든 것은 ‘무업 기간에 겪는 청년들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우리 사회에서 직장이 없다는 것은 사회로부터 완전히 단절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강보험·고용보험 등 각종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됨은 물론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박 대표는 “학교나 일터 위주로 사회생활이 이뤄지는 한 청년들은 직장을 갖지 못하는 기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가 된다”며 “이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하고 일상의 삶을 제공함으로써 삶의 활력을 제공한다는 게 우리의 기본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청년들이 백수로 지내게 된 원인이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사회로 나오기 전까지 안정적인 직장, 돈 잘 버는 대기업에 가야 한다고 교육받았던 젊은이들이었다. 이른바 ‘스펙 쌓기’를 통해 다양한 능력도 보유했다. 객관적으로만 보면 취업하는 데 이상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원하는 직장으로 가는 길은 너무 좁고 경쟁은 격렬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탈락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전 대표는 “취업 전선에서 탈락하게 되면 다른 진로를 찾아야 하는데 그 길을 알려주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청년들은 ‘내 노력이 부족했나’ 하며 좌절하게 된다”며 “문제는 청년 스스로가 아니라 그들을 백수로 내몰고 격리시키는 사회”라고 일갈했다.

전성신 니트생활자 공동대표


취업 또는 직장 생활에서의 좌절은 청년들을 깊은 수렁으로 몰고간다. 두 대표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다. 박 대표는 취직을 했지만 직장을 여섯 번이나 옮겼고 결국 무직자가 됐다. 전 대표 역시 조직에 동화하지 못하고 세 번의 전직을 끝으로 직장 생활을 접었다. 이후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박 대표는 “백수가 됐을 때 오늘 당장 뭘 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고 괴로웠다”며 “할 수 있는 것은 이력서를 쓰는 것뿐이기에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더라”고 회상했다.

전성신(왼쪽)·박은미 니트생활자 공동대표


청년들을 자기 비하의 늪에서 구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가상의 직장을 마련해 일상을 회복하고 관계를 만들어주는 니트생활자다. 가상의 회사인 니트컴퍼니에 입사한 청년들은 온라인으로 오전 10시까지 출근하고 오후 6시에 일을 마친다. 업무는 이부자리 개기, 하루 5000보 걷기, 취업 사이트 알아보기 등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 동아리 활동을 하고 100일간의 활동이 끝나면 평가도 받는다. 기성세대가 보면 ‘이게 무슨 일이냐’며 비웃을 수도 있지만 사회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자각할 수 있는 공간이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전 대표는 “니트컴퍼니에 들어오고 100일이 지나 퇴사할 때 청년들의 상태를 분석하면 구직 활력도가 많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난다”며 “단순한 구직을 넘어 자기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창업 등에 나서는 비율도 10~15%나 된다”고 설명했다.

두 대표가 사회에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청년을 사회적 약자로 취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청년 백수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단순히 돈 몇 푼 쥐여주는 지원이 아니라 발전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박 대표는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잠재력과 기여도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이것이야말로 사회가 바라보는 청년과 청년이 사회에 바라는 것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글·사진=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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