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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 팔아 4000만원 기부한 80대 "돈도 몸도 다 주고 가야죠"

평생 모은 4000만원 기부한 최동복 어르신

오전 3시부터 파지 모으기 나서

'늦기 전에 힘든 사람 돕자' 결심

동네 7~8명에 월 30만 원 지원

대학 병원 찾아 장기 기증 서약도

남은 건 중고 전동휠체어가 전부

최동복 할아버지가 살아온 인생 역정과 4000만 원을 기부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순 대한노인회의정부시지부에 80대 어르신이 찾아왔다. 이전까지 지부를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할아버지는 대뜸 자신이 가진 재산을 1월 11일 기부할 테니 알아서 잘 처리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상황. 약속한 날짜에 할아버지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4000만 원의 현금 다발이 들려 있었다.

기부의 주인공은 올해 85세인 최동복 할아버지. 수억·수십억 원을 내놓는 고액 기부자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큰돈이 아닐지 모르지만 그가 들고 온 돈뭉치는 평생 동안 모은 전 재산이었다. 평범한 일을 해서 번 것이 아니다. 꼭두새벽부터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모은 파지를 팔아 어렵게 마련한 돈이다. 피땀 어린 전 재산을 선뜻 내놓은 것은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어서다. “이제는 힘이 없어요. 하루하루가 다르게 힘들더군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이라도 주변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이라는 게 어차피 죽으면 싸 들고 갈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최동복 할아버지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기부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 할아버지는 8평 남짓한 공간에서 혼자 산다. 파지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 혼자가 되면서 먹고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새벽 3시에 손수레를 끌고 나와 오후 5시까지 파지를 주웠다. 하루에 서너 차례 손수레를 채우고 나면 4만~5만 원가량을 손에 쥔다. 그는 “남들이 100원어치를 하면 나는 200원을 번다는 각오로 정말 열심히 일했다”며 “많을 때는 10만 원 정도를 손에 쥔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된 노동으로 번 돈은 하나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집 안에 있는 종이 박스 속으로 들어갔다. 눈 뜨고 일어나 손수레를 끌고 저녁에나 돌아왔으니 돈 쓸 일이 없었다. 현금이 차곡차곡 쌓이는 건 당연했다. 그는 “술·담배도 끊었고 주변에서 반찬을 주는 등 도와주는 것도 있어 돈을 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며 “석 달에 한 번씩 어느 정도 모은 돈을 들고 은행에 가 입금하고는 한다”고 덧붙였다.

힘들게 살았지만 남을 위해서는 아낌이 없다. 수입은 파지 외에 기초연금 30만 원이 고작이다. 보통 사람이면 자신이 먹고살기에도 급급했을 수준이다. 할아버지는 달랐다. 1년 전부터 아무도 몰래 노인들과 혼자 사는 여성 7~8명을 스스로 선정해 월 30만 원씩 도움을 줬다. 살고 있는 집의 보증금 500만 원도 사실상 그의 것이 아니다. 그는 “내가 죽고 나서 집을 정리해준다는 조건으로 이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고물상 주인에게 보증금을 넘겨주기로 했다”며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이동할 때 사용하는 중고 전동 휠체어가 전부”라고 덧붙였다.

재산만 기부한 게 아니다. 2006년 서울대병원을 찾아가 장기 기증 서약을 했다. 세상을 떠난 후에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주겠다는 의사표시다. 최 할아버지는 “지금 내 몸 안에 있는 장기지만 어차피 세상과 작별을 하고 나면 나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것들”이라며 “다른 사람이 이를 통해 새 생명을 살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닌가”라고 조용히 말했다.

최동복 할아버지가 어머니(왼쪽 사진)와 자신이 젊었을 때 사진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그의 집에 가족사진은 이 두 장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제 그가 가진 것은 거의 없다. 통장은 텅 비었고 살림살이도 매트리스와 전기장판, 식기와 밥솥, TV 정도가 고작이다. 몸이 좋지 않아 파지 줍는 일도 그만뒀다. 하나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그가 매달 금전적 지원을 했던 사람들에게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최 할아버지는 “남을 위해 돈 쓰는 것을 아깝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이제는 그만 접을 때”라며 “지난달 말 그들에게 ‘이제 줄 돈이 없어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없게 됐다. 죄송하게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남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살아온 그이지만 가족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다.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연락을 끊고 산 지 15년이나 됐다. 그 흔한 가족·자식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있는 것은 어머니의 단독 사진과 젊었을 때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 단 두 장뿐이다. 기부를 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세상을 떠난 후 재산을 가족에게 넘겨주기 싫다는 생각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모든 것을 다 줬으니 이제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남긴 최 할아버지의 독백이다.
글·사진=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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