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검색창 닫기

빠름만 좇는 시대··· "느림의 악(樂)으로 조화 이뤄야죠“

전통 가곡 63년 외길 조순자 가곡전수관장

훈민정음 발성법 그대로 재연

3글자 부르는 데 3~4분이나 걸려

어학자들과 20년째 함께 공부방

세상에 나 혼자 완전한 사람 없어

공생·상생으로 함께 같이 살아야

조순자 가곡전수관장. 사진 제공=가곡전수관


“요즘 사람들은 빠른 것만 좇습니다. 급변하는 세상을 따라가기 위해 새로운 것을 자꾸 받아들이면서 벌어진 현상입니다. 전통 가곡은 굉장히 느린 음악입니다.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빠름과 느림은 반대가 아닌 상대적 개념입니다. 둘이 서로 바르게 정립해야 세상이 똑바로 갈 수 있습니다.”

60년 넘게 전통 가곡의 길을 걸어온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조순자(79) 가곡전수관장은 서울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가곡의 철학은 모두가 함께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가곡 예능 보유자인 조 관장은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키운 인물이다. 14세 때인 1958년 KBS의 전신인 서울중앙방송 국악연구생 2기생으로 선발돼 국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주환 선생으로부터 가곡·가사·시조 등을 전수받았고 박동진 명창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1970년에는 후학 양성과 가곡 확산을 위해 마산에 국내 최초의 가곡전수관을 세워 2010년 가곡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에 큰 기여를 했다.

그의 가곡 발음법은 훈민정음에 기초한 발음을 그대로 따라간다. 우리가 쓰는 명사와 동사·형용사 등 모든 품사도 가곡 한 곡에 다 들어 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담긴 철학. 조 관장은 “가곡 속에는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우리나라의 건국이념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이 새겨져 있다”며 “이는 곧 공생하고 상생하며 모두가 같이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순자 가곡전수관장. 사진 제공=가곡전수관


하나가 되는 것은 전통 국악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악(樂)을 성악이나 기악·작곡 등으로 나누지 않는다. 오히려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한 몸으로 이뤄져야 올바른 것이 된다고 여긴다. 이른바 ‘가무악(歌舞樂) 삼위일체론’이다. 조 관장은 “가곡자들은 세 가지를 한 몸에 익히면서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며 “가곡의 교육법은 주입식이 아닌 스스로 깨치는 교육”이라고 덧붙였다.

가곡의 특징은 ‘아주 느리다’는 것이다. 서양음악에서 가장 느린 템포보다도 2배 이상 더디게 이뤄진다. ‘아마도’라는 세 글자를 노래하는 데 3~4분이나 걸리기도 한다. 속도를 중시하는 현대인들에게 ‘지루하다’ ‘졸린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가곡이 대중의 외면을 받는 중요한 이유다. 조 관장도 이러한 현실을 모를 리 없다.

송강 정철의 권주가로 알려진 ‘장진주사(將進酒辭)’를 공연할 때의 일이다. 너무 길고 같은 것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관객들이 지루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관객들이 너무 지루해하는 모습을 보여 원래 속도보다 2배로 빠르게 불렀더니 약간 재미있다는 반응이 나오더라”며 “이제는 가곡도 새로운 형태를 모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가곡전수관에는 20년째 이어지고 있는 공부방이 있다. ‘곳고리(꾀꼬리의 옛말)회’다. 어학자와 가곡자들의 만남인 이 모임에서는 상부상조가 이뤄진다. 어학자들이 가곡을 하는 사람들에게 옛말을 알려주고 가곡자들은 어학자들에게 발음법과 발성법을 전해준다. “세상에 자기 혼자 완전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모임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조 관장이 얻은 깨달음이다.

그에게는 제자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 마산이라는 지역적 제약도 있지만 최근 국악을 하는 젊은이들이 트로트 가요로 많이 몰리는 데 더 큰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트로트를 얕잡아 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가요를 비롯한 모든 예술 분야가 중요하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그저 아름다운 가곡이 자꾸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조 관장의 대안은 제자 양성이다. 공연 기회를 주기 위해 제자들에게 출연료를 주면서까지 ‘목요풍류마당’이라는 상설 무대를 제공하고 10년째 초등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토요청소년풍류학교’를 여는 것도 제자들을 통해 가곡이 이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는 “내 소망은 훌륭한 가곡자를 만드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가르치고 또 가르칠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글·사진=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 저작권자 ⓒ 라이프점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메일보내기

팝업창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