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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노노케어가 만드는 약수 안전망

경증 치매 수혜자, 무사히 혼주석 모시기도

노노케어 활동중 취약·거동불편 시니어 발굴

지난달 12일 약수 노인복지관 인근에서 만난 '노노케어' 참가자 김대홍 씨. / 신지민 기자


“치매 환자가 계셨는데, 나이가 드셔서 부인이 씻기질 못했어요. 도와드린다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가서 목욕 시켜드린 게 시작이었죠. 이제 햇수로 15년이네요.”

지난달 12일 서울 중구 약수 노인종합복지관 앞에서 김대홍 씨(83세)를 만났다. 20년 전 은퇴한 김 씨는 2007년부터 공익형 어르신 일자리 사업 ‘노노케어’에 참여 중이다. 김 씨는 복지관에서 반장·회장을 역임한 만큼 평소 기관과의 연락이 잦았다. 이 때문에 사업이 제도화 되기도 전부터 주변 이웃을 돕고 있던 그는, 자연스레 현재 복지관의 노노케어 최장 참가자가 됐다.

김 씨는 지난해 약수동에서 도시락 배달을 맡았다. 일주일에 2~3번, 한 달에 열 번(월 30시간) 정도 홀로 지내는 독거노인 가정에 방문해 점심 도시락을 전달하는 일이다. 노노케어는 말벗, 안부 확인 등 다양한 활동으로 이뤄져 있어 복지관마다 프로그램 구성이 조금씩 다르다. 옆 동네 신당동의 경우, 2명의 노인이 한 팀이 돼 수혜자 1명을 대상으로 말벗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약수 복지관은 오전 10시 30분부터 도시락을 나눠준다. 김 씨는 매번 이보다 한 시간 이른 9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보통 시니어 한 명이 세 명의 수혜자를 담당하므로 그는 항상 도시락을 세 개씩 챙겨 나와 이웃 시니어의 집으로 향한다. 김 씨는 “이웃들이 대부분 혼자 살고 있어 도착해 벨을 누르면 버선발로 뛰어나오시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독거노인은 외출하지 않는 이상 온종일 대화할 일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 씨는 그런 이들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존재다.

지역사회 안전 울타리, 시니어가 구축한다


일 자체는 가볍고 부담이 적었지만 책임감은 무겁다. “벨을 눌렀는데 조용하거나 대답이 없으면 식겁해요. ‘무슨 일이 생겼나?’, 인기척이 들리기까지 몇 초간 정적이 흐를 때는 식은땀도 나요. 만약에 뭔 일이 났는데 내가 없었다고 생각해 봐요, 아찔하죠. 그러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면, 아유 얼마나 반가운지.” 도시락을 전하고 안부를 주고받던 김 씨는 “건강 상태도 묻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비상 연락처도 수시로 확인하다 보면 이웃도 챙기고 오가며 운동도 돼 보람이 넘친다”고 답했다.

김 씨는 15년 전쯤 경증 치매 환자를 돌본 경험이 있다. 노노케어로 만난 인연은 아니었지만, 복지관에서 도움을 요청해 일주일에 한두 번씩 고령의 배우자를 대신해 목욕을 시켜드리곤 했다. 그러다 한 번은 수혜자의 자녀 결혼식을 맞아 서울에서 인천의 예식장까지 그를 모셔다드리게 됐다. “서울에서 목욕 다 시키고 양복 입혀서 모시고 갔어요. 가는 데, 차에서 대변 냄새가 나더라고. 기저귀를 채우긴 했지만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결혼식장 화장실에 도착해서 다시 씻기고 기저귀 치우고 갈아서 겨우 혼주 자리에 앉혀드렸어요. 그렇게 앉은 모습을 보는데 가슴이 먹먹합디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지만, 김 씨는 지금까지도 그 때의 일을 기억하며 책임감을 품에 꼭 안은 채 노노케어에 참여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돕는 게 즐겁다는 김 씨. 특히 건강한 상태에서 뜻대로 타인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는 “우리가 주변을 무관심하게 지나치면 안 돼요.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돌아보면 서로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아요. 서로 돕고 사는 사회가 돼야 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 씨의 바람처럼, 약수 복지관은 수혜자를 선발할 때 지자체에 신청한 취약 노인 외에도 노노케어 참가자들의 정보를 십분 활용한다. 예를 들어 노노케어 참가자가 지역에서 취약·조손·거동불편 시니어의 소식을 접하고 요양사를 연결해 주는 경우가 많다. 무심코 지나칠 뻔한 곳까지, 함께 지긋이 나이 들어가는 시니어가 안전 울타리를 둘러주고 있는 셈이다.

고령화 지표 첩첩산중이지만, 하나의 대안 ‘노노(老老)케어’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서울시 전체 인구 966만 7669명 중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는 166만 7411명에 달했다. 서울시 고령화 비율만 17.2%(전국 18%)다. 20%가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지난해 고령인구 비중이 20%를 넘은 지역은 전남(25.5%), 경북(23.9%), 전북(23.4%), 강원(23.3%). 부산(22.2%), 충남(20.4%) 등 6곳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전국 대부분 지역이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상태나 다름없다.

반면 노인을 부양할 젊은 세대는 갈수록 줄어가는 상황(합계출산율 추정치 0.68명·2023년 기준)에서, 지난해 9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3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취업자와 미취업자 모두 “노인 부양을 위해 가족·정부·사회가 함께 힘써야 한다”고 답했다. 연령대로 보면 만 65~74세 취업자 54.4%·미취업자 58.4%, 만 75세 이상 취업자 50.3%·미취업자 52.4%가 이같이 답변했다. 시니어 세대의 과반 이상이 고령화 문제를 사회 공동의 문제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노인(老人)이 노인(老人)에게 돌봄을 제공한다’는 의미의 노노케어는 이러한 인식에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서울뿐만 아니라 고령인구 비중이 높고 젊은층이 적은 비수도권에서도 노인복지 및 시니어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노노케어가 진행되고 있다. 김 씨는 “나이 들고 움직임이 적을수록 병원 방문이 잦아지고 잔병치레가 많아지는데, 오랫동안 참여하며 활동적으로 지내니까 병원도 덜 가고 보험료도 덜 나간다”며 미소 지었다.
신지민 기자
jmgody@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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