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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권리는 안녕한가요?

[가지가지로 세상읽기]<12>

■김관숙 선거연수원 초빙교수

선거 참여는 공동체 역량을 키우는 진짜 공부

유권자의 한 표, 우리 운명을 가르는 힘



지난달 고양시 장애인 자립센터에서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알기 쉬운 민주주의와 선거’라는 제목의 선거 교육을 진행했다. 최대한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고 애썼는데, 다행히 조력자들도 함께 해주셔서 모의 선거 체험까지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지금의 복잡한 선거 제도와 방식을 오롯이 전달하기는 어려웠으나 선거의 필요성과 주권을 행사하는 방법, 거소투표부터 특수기표용구 등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편리한 제도까지 소개해드렸다.

모의 투표를 마치고 개표 작업을 진행했다. 주의 사항을 귀담아들으셨는지 다행히도 다들 잘 기표하셨는데, 아쉽게도 딱 한 분이 자신의 이름을 써서 무효투표가 되고 말았다. 하기야 평범한 사람도 기표소에 들어가면 긴장되고는 하는데, 눈이 잘 보이지 않거나 손이 떨린다거나 지체가 부자연스러운 분들은 얼마나 힘들고 당황이 될까 싶었다. 기표지를 투표함에 넣는 분들께 일부러 ‘어디 찍으셨어요?’라고 짓궂게 묻자, “말하면 안 되지, 비밀투표!”라고 대답하셔서 얼마나 흐뭇했던지. 선거일에도 다들 즐거운 한 표를 행사하셨으리라. 권리를 행사한 아름다운 손에 응원을 보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을 들으면 얼마나 가슴이 뜨거워지는지.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시스템이다. 옛날에는 왕이나 소수의 권력자가 국가를 지배하고 결정권자가 되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정치를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으며, 옛날 아테네의 광장에서처럼 시민 모두가 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다. 나라의 일을 할 대표자를 우리 손으로 결정하는 것이 선거일 터. 그래서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의 뜻과 생각이 같은 사람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 말 그대로 국민의 의사를 대표해 정치를 담당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이다. 그렇게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부터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 교육감까지 선출한다. 현대사회에 선거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존립 자체가 힘들다.

정치란 무엇일까?

정치란 절대로 거창한 것이 아니다. 바로 생활의 문제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세심히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불편하고 부조리한 점을 그저 참거나 단순히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입법 기관이나 관련 행정 부서에 건의하고 지속해서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것을 가장 잘 해결해 줄 수 있는 후보를 투표로 선출해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라면 18세가 되면 누구나 선거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지닌다. 1948년 5월 10일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21세 이상에게 선거권이 있었지만 이제는 선거일 기준 18세 이상이면 투표할 수 있다. 그뿐인가. 16세부터는 정당에 가입해 당원도 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그저 수능 공부만 할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 보려는 시도와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미래인재에게 꼭 필요한 공동체 역량을 키우는 진짜 공부가 아닐지.

과연 어떤 후보자를 뽑을 것인가.

선호 정당, 소양과 능력, 가치관, 인품, 이력까지 꼼꼼히 봐야겠지만 무엇보다 정책과 공약이 중요하다. 선거 벽보나 연설, 공약집을 세심히 살펴보는 것은 물론 집으로 오는 선거공보를 꼼꼼히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뜯지도 않은 채 재활용함에 버릴 게 아니다. 이게 다 돈이기 때문이다. 선거 비용은 얼마나 들까. 21대 총선의 경우 선거 물품과 시설 인력, 선거 보조금과 선거비용 보전 등으로 총 4102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비용일진데, 투표율이 떨어진다면 아깝게도 가치 없이 버려진 돈이 되는 셈이다.

‘까짓거 나 한 표쯤이야’ 하고 생각하면 큰 일 난다. 역사적으로도 한 표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기까지 했다. 1875년 왕당파와 공화파가 동수로 갈린 프랑스는 왕당파 의원 한 명이 복통으로 투표에 불참하면서 한 표차이로 공화국이 되었고, 1945년 올리버 크롬웰은 딱 한 표차로 대영제국의 권력자로 군림하면서 무시무시한 공포정치가 시작되었다. 1649년 청교도혁명 당시 찰스 1세도 단 한 표 때문에 사형이 집행됐으며, 우리나라도 2008년 강원도 고성군수 보궐선거에서 한 표가 당락을 가른 적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그때 낙선한 후보는 두고두고 ‘누가 투표하지 않았지?’ 하며 공연히 원망스레 곱씹진 않았을까. 영화 ‘Swing Vote’에서도 한 사람의 투표가 미국 대통령을 결정하게 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렇다! 당신의 한 표는 누군가의 운명, 아니 우리의 운명을 가르는 힘이 충분히 있다.

선거운동,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는 행위

거짓 사실 유포나 비방만 아니라면 낙선운동도 가능하다. 요즘처럼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딥 페이크류의 조작과 선동이 가능한 시대에 우리의 눈과 귀는 더욱 분주해져야 한다. 히틀러의 선전부장 괴벨스는 거짓말도 계속하면 진실이 된다고 했다지. 거짓말에 진실을 교묘하게 섞으면 더 그럴싸해지는 법이다. 그러니 잘 살피고 또 따져볼 일이다. 거짓과 비방으로부터 사실과 진실을 들추어내야 한다.

뜨거웠던 선거 열기, 그러나 선거는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다. 이제부터는 눈 부릅뜨고 당신이 선택한 후보자가 약속한 공약을 지키는지 어떤 실천을 하는지, 매니페스토 선거 정신으로 감시해야 한다. 유권자의 의무는 감시까지이며 이것이 선거보다 더 중요하다. 시험도 오답 풀이가 중요하듯 유권자는 나의 선택을 점검하고 분석해 봐야 한다. 그래서 다음 선거에서는 제대로 된 후보자라면 다시 뽑고 그렇지 않으면 낙선시키는 힘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4년은 그리 길지 않으니…. 선거는 최선을 뽑는 게 아니라 최악을 막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우리의 집단지성을 믿는다. 그러니 당선자도 낙선자, 투표자 모두 결과에 승복하고 부디 공동체 정신으로 상생하길. 우리의 현실은 함께 거두고 헤쳐 나가야 할 무게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당신이 평생 맞이할 모든 선거일에 투표장으로 가시라. 날이 좋아도 좋지 않아도, 그날은 분명 눈부신 가슴 벅찬 민주주의의 꽃이 만발한 날일 것이므로. 부디 당신의 권리가 안녕하시길. 투표한 당신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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