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울을 넘나들며 탁한 물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수영,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허벅지로 페달을 밟아나가는 자전거,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지친 두 다리를 이끌고 결승점을 향해 뛰는 마라톤. 이 모든 코스를 쉬지 않고 이어가야 하는 것이 ‘철인 3종 경기’다. 67세의 나이에 극한의 체력과 강인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철인 3종 경기를 ‘취미’로 한다는 이가 있다길래 그가 있는 인천을 찾았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 그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기자에게 물었다.
“철인 3종 경기, 그거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건데 얘기가 될까요.”
“아무나요? 철인 3종 경기를요?”
결승선을 통과할 때의 짜릿함에 매료돼 이제껏 30번 넘게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했다는 오승진(67)씨로부터 그가 생각하는 철인 3종 경기의 매력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 자신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인천 토박이 1957년생 오승진이라고 합니다. 올해 2월 은퇴했습니다. 지난 2001년에 취미로 마라톤을 시작했는데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정확하게 세어본 적은 없지만 2006년부터 지금까지 출전한 철인 3종 경기만 서른 번이 넘네요. 마라톤 대회까지 합치면 100번은 됩니다.
- 철인 3종 경기는 어떤 종목인가요.
◇철인 3종은 수영과 사이클, 달리기를 이어 하는 경기입니다. 코스마다 조건이 다른데 올림픽 코스는 수영 1.5㎞, 사이클 40㎞, 마라톤 10㎞를 3시간 30분 안에 통과해야 합니다. 아이언맨 코스는 수영 3.9㎞, 사이클 180.2㎞, 마라톤 42.195㎞를 17시간 안에 들어오는 경기입니다. 저는 기록보다는 완주에 초점을 두고 경기에 나가고 있고, 아이언맨 코스는 13시간 50분을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 철인 3종 경기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취미는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2001년 마라토너이던 지인이 제게 함께 운동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사업하며 힘든 일도 많았는데 뛰다 보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길래 마라톤에 푹 빠지게 됐습니다. 친구 따라 뛰다 보니 폐활량도 부족하고 해서 30년 동안 피던 담배도 끊고 건강이 좋아졌죠.
당시 풀코스(42.195㎞) 경기에도 여러 번 참가했어요. 100㎞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도 나갈 정도로 열심히 했지요. 그런데 뛰기만 하니 단조롭기도 하고, 허리와 다리도 아프고 저랑은 안 맞았어요. 다른 운동을 찾다 철인 3종 경기를 발견했습니다. 1년 정도 수영을 배운 적 있었고. 자전거나 달리기는 평소 취미로 삼았던 운동이라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2005년 말부터 준비하기 시작해, 2006년 통영에서 열린 철인 3종 경기에 처음으로 참가했어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게 납니다. 통영 바다에 뛰어드니 앞이 하나도 안 보이더라고요. 선수들끼리 서로 부딪히고, 엉키고 완전 ‘전투 수영’이었어요. 포기하려다가 간신히 완주했는데,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더라고요. 힘든 만큼 값어치가 엄청나게 컸습니다. 성취감 하나로 계속하게 된 거죠.
- 지금껏 참가한 경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 첫 경기가 제일 강렬하게 기억에 남지만 이달 2일 전북 군산에서 열린 ‘2024 챌린지 군산-새만금’ 경기도 의미 있었어요. 암 완치 5주년 기념으로 참가한 경기였거든요.
- 암투병을 하셨다니. 경기 참석이 어렵지 않은가.
◇2019년 3월 건강검진에서 담낭암 2기를 진단받았습니다. 항암을 시작하니 먹지도 못하고, 근육량도 감소하고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더군요. 당시 코로나19 때문에 경기가 안 열리기도 했고, 장기적으로 체력 회복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하루 8㎞, 1시간 40분씩 산책했어요. 그리고선 2022년 경남 고성에서 열린 경기에 참가했지만 중도 포기했어요. 빈혈로 어지럽고, 숨도 너무 차더라고요. 작년부터는 짧은 올림픽 코스에 나갔는데 그것도 제한 시간을 넘겨 컷오프 당했지요.
- 이런 상황이면 그만 둘 법도 하지 않나. 가족들도 만류할 테고.
◇최근에 군산에서 열린 경기는 가족들이 참가를 말리더라고요. 나이도 있는데 무리할 필요가 있느냐면서요. 허나 안 하면 후회가 될 것 같아서 일단 가족 몰래 참가비를 냈어요. 이 사실을 안 가족들이 펄쩍 뛰자 ‘취소하면 참가비의 50%밖에 못 돌려받는다’고 우겨서 참가했어요. 군산 경기는 제가 그동안 참가했던 경기 가운데 제일 힘들기도 했어요. 바다에서 수영하는데 물살이 너무 강하게 흐르다보니 많은 참가자들이 컷오프를 당했어요. 저는 결국 16시간 30분 만에 완주했습니다. 암을 진단 받고 회복해서 다시 경기를 완주하기까지 5년이 걸렸네요.
- 연습량이 상당하실 것 같다. 평소에 어떻게 운동하는지 루틴이 궁금하다
◇월, 수, 금요일에는 오전 5시 30분에 자전거를 탑니다. 하루에 40㎞ 정도 타요. 그리고 낮이나 저녁에 한 시간 정도 수영을 합니다. 자전거와 수영을 하지 않는 화, 목요일에는 마라톤을 뛰어요. 대단하거나 어려운 게 아니에요. 계속하면 습관이 됩니다. 중독되는 거죠. 오히려 안 하면 조바심이 나요.
- 입문할 때 필요한 장비에는 뭐가 있나. 필요한 예산도 궁금하다.
◇수영복, 러닝화, 자전거 정도가 필요합니다. 굳이 1000만 원짜리 비싼 자전거를 갖출 필요는 없어요. 자전거는 도구일 뿐 엔진은 나니까 나를 키워야죠. 저는 100만~150만 원짜리 자전거를 쓰고 있어요. 수영복도 30만 원짜리입니다. 자주 바꿀 필요도 없어요. 오히려 새 걸로 바꾸면 거기에 나를 다시 맞추고 적응해야 하니 좋지 않아요.
-체력과 멘탈 관리·식사 조절·대회전후 몸관리 등 경기 출전 팁이 있을까
◇가끔은 토요일에 자전거 타고 멀리까지 갑니다. 인천 송도에서 강화도(90㎞), 교동도(120㎞)까지 가지요. 속도계를 보면서 상태를 진단해 보는 거죠.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해요. 이렇게 멀리도 가봐야 경기에서 체력 분배를 할 수 있습니다. 수영에서는 다른 영법 대신 자유형을 배워두면 좋습니다. 마라톤은 ‘외로운 싸움’입니다. 체력을 다 소진한 상태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뛰어야 하지요. ‘포기란 없다’ 되뇌며 뛰어요.
실력자들은 폭발적인 힘을 내기 위해 시합 전에 고탄수화물 식사를 해요. 저는 나이도 있고, 기록을 세우기보다는 끝까지 완주하는 게 목표라 지구력을 기르기 위해 고기를 많이 먹어요. 젊은 사람들은 경기 끝나고 하루 쉬면 회복하던데, 저는 나이가 있어서인지 이틀 푹 쉬고 나면 몸은 금방 또 돌아옵니다.
- 고되지만 계속 도전할 수밖에 없는 철인 3종 경기만이 가진 매력은 뭔가
◇첫 대회에 나갈 땐 ‘과연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많았어요. 근데 그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의 그 기분은 뭐라고 해야 할 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솔직히 재밌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오직 건강만 바라보고 시작했으니까요.
또 자신감이 든달까요. 은퇴하고 노인회관에 앉아 있으면 ‘내가 왜 여기에 있지’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반면 운동할 때만큼은 나이가 장벽이 되지 않아요. 젊으면 10㎞ 뛰고, 나이가 많으면 9㎞ 뛴다거나 그런 거 없어요. 다 같은 선수로 있을 수 있죠. 젊은 사람들과 공통 분모를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다는 느낌도 좋고요.
체력도 좋아지죠. 담낭암 수술하고 열흘 정도 입원해 있었는데,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에 병원 복도를 계속 걸었어요. 사람들이 암 수술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잘 걷냐고 놀랄 정도로 체력이 받쳐주더라고요. 철인 3종 경기를 해서 그런 것 같아요.
- 40~50대도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인지 궁금하다
◇그렇죠. 저도 49살에 시작했습니다. 제가 속한 인천 미추홀철인클럽에 회원이 30명 정도가 있는데 50대 초반이 가장 많아요. 경기 현장에 가도 제일 많이 보이는 나이대가 40~50대입니다. 이번 군산 경기에서도 65~69세가 24명 있었지요. 70대 참여자도 3~4명씩은 꼭 보입니다. 오히려 젊은 친구들을 찾기가 어려워요.
주변에 보면 ‘회사생활만 했지, 취미가 없어’라고 말하는 지인들이 많습니다. 몇 번 같이 운동을 해보자고 제안해 봤지만 ‘난 소질이 없어’라고들 말해요. 그때 시작했으면 지금쯤이면 운동 동반자가 됐을 것 같은데 아쉽지요.
나이가 들면 사실 갈 곳이 많지 않아요. 그나마 체력이 있어야 등산도 다니죠. 경기 참가나 연습 때문에 이곳저곳에 다니는 걸 보면 주변에서 부러워합니다. 젊은 친구들에게 늦지 않았다고, 미래를 내다보고 미리 운동을 시작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철인3종 경기는 제 일부이자 인생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완주했을 때의 쾌감은 아마 하늘을 나는 것보다 좋을 거예요. 9월에 강원 삼척에서 경기가 열리는 데 참여할 생각입니다. 올림픽 코스를 3시간 30분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체력이 있는 한은 계속 경기를 이어 나가려고 합니다.
- 정예지 기자
- yeji@rni.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