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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뽑아요” 두 팔 벌린 기업들, 그 이유는?···중장년 일자리 박람회 가보니

■ ‘2024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 성료

궂은 날씨에도 3400여명 발길…일자리 정보·면접 기회 ‘만족’

기업들 “중장년, 다년 경험 기반 전문성, 책임감·간절함 강점”

50플러스재단 “설명회 상시 개최, 중장년 채용 분위기 확산 목표”


“지금 하는 일도 정말 즐겁고 좋지만, 올해 11월까지만 할 수 있어서요.”

지난 22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4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에서 만난 장연수(58)씨는 “미리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재 치매 노인을 위한 돌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가정 방문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씨는 올해 ‘시니어 디지털 교육 강사’로 재취업 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오늘 디지털 교육 일자리도 찾고, 다른 가능성도 알아보고 싶다”며 채용 부스 사이로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DDP는 일자리는 구하려는 4060 중장년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행사를 주관한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 따르면 참가 기업은 지난해 61곳에서 올해 71곳으로 증가했고, 참가자도 지난해(2235명)보다 1179명 증가한 3414명으로 집계됐다. 현장을 찾은 참가자들은 저마다 관심 있는 기업의 채용 부스에 들러 ‘몇 살까지 일할 수 있느냐’, ‘관련 경험이 없어도 괜찮으냐’ 등을 물었다. 현장에서 직접 면접을 보려는 구직자들은 한 손에 이력서를 든 채 긴장한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이날 박람회에는 중장년을 채용하려는 비영리단체, 호텔숙박업, 교육업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 및 기관 71곳이 부스를 열었다. 이들이 두 팔 벌려 중장년을 맞이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22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개최된 ‘2024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에서 중장년 구직자들이 채용 공고 게시대를 살펴보고 있다. 정예지 기자


채용 담당자들은 중장년이 지닌 ‘높은 업무 전문성’과 ‘일자리에 대한 간절함’을 높게 평가했다.

기업 재무상담 전문가를 모집 중인 삼성생명 GFC의 이건수 기업정책자금 전문가는 “중장년은 20~30년 쌓인 업무 경력 덕분에 퍼포먼스가 우수하다”며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간절함이 있는 분들이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하는데 의도치 않게 경력 단절 등을 겪은 중장년은 이러한 간절함도 큰 편”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생명 GFC는 기업을 방문해 경제적 리스크 분석, 가업승계 등을 컨설팅하는 전문가로 중장년 5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이 전문가는 “재무 분야 경력이 있으면 적응이 빠르긴 하겠지만, 별도 교육 체계를 갖췄기 때문에 이전의 경력을 깐깐하게 따지지 않는 편”이라며 “클라이언트와 신뢰가 생기면 장기근속할 수 있고, 정년이 없어 70대 후반부터 80대까지 활동하시는 분들도 꽤 있다”고 설명했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도 중장년들이 보유한 직무 전문성을 높게 평가했다. 이곳 인사 담당자는 “해외로 파견돼 현지 인력을 교육하는 등의 매니저 역할을 맡는 경우도 많은데, 중장년들은 관리 경험이 있어서인지 청년들보다 해당 업무에 쉽게 적응하는 편”이라며 “지난해 열린 박람회를 통해 입사한 분도 첫 해외 파견지에서 바로 적응하는 등 성공적인 채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합 홍보·광고 대행사 씨앤컴은 웹디자이너와 시각디자이너를 채용하기 위해 박람회에 참가했다. 디자인 분야는 트렌드에 민감한 청년층을 선호하기 마련인데 이곳이 중장년층으로 눈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정일 씨앤컴 전략기획팀 팀장은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미’와 ‘청년의 아이디어를 명확한 결과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능력’을 중장년이 가진 강점으로 들었다. 이 팀장은 “손이 빠르고 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 디자이너도 회사의 핵심 인력이지만 우리 회사가 필요로 하는 디자이너는 일을 바로 이해하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디자이너”라며 “업무 경력이 많은 중장년은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임기응변 능력이 빠르고 결단력도 있어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22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개최된 ‘2024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에서 한 중장년 구직자가 이력서를 인쇄하고 있다. 정예지 기자


현장에서 만난 중장년들은 박람회에서 다양한 일자리 정보를 접하고, 인생 2막의 목표를 세울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고 평가했다.

건설회사에서 시공관리자로 일하다 지난해 10월 퇴직한 임동률(57)씨는 이번 박람회에서 총 4번의 면접을 봤다. 박람회를 통해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그는 “국경없는의사회의 기술직 활동가에 관심이 생겼는데 영어를 못해서 아쉬웠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어떤 직업이든 영어를 할 줄 알면 기회의 문이 훨씬 많이 열리는 것 같다”고 전했다.

퇴직 1개월 차인 이미영(45)씨는 “적성을 찾는 건 평생의 과업인 것 같다. 아직 인생 2막에 어떤 일을 할지 정하지 못했지만 오늘 이 박람회로 이제까지 해왔던 일을 돌아보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해 볼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길어진 수명으로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중장년은 늘고 있지만 아직 중장년 채용 정보를 구하기 쉽지 않은 만큼 박람회에서 더 다양한 직무와 기업이 소개되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올해 12월 퇴직을 앞둔 우단희(56)씨는 “장애인 돌보미로 일했던 경력을 살리기 위해 올해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이 자격증을 활용할 만한 일은 아직 찾지 못해서 아쉽다. 그래도 오늘 박람회에서 내일배움카드를 신청해 뿌듯하다”고 말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이날 박람회에서 취업 컨설팅에 참석한 중장년들에게 경력설계와 컨설팅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방침이다. 재단 관계자는 “앞으로도 좀 더 다양한 직무와 직군에서 중장년을 채용하도록 유도해, 중장년 채용 분위기를 확산하는 게 목표”라며 “중장년을 채용하려는 기업과 협력해 채용설명회도 연중 상시로 개최하고, 참여 기업도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예지, 기자
yeji@rn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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