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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어려워하는 어르신들, 주황 조끼 입은 이들을 찾아주세요”

2022년 7월 시작, 현재 5기 145명 활동

지하철 키오스크, 스마트폰 앱 설치 등 도와

“디지털기기 활용법 모르면 일상생활 힘들 것”

디지털 안내사 최화영 씨가 신도림역에서 키오스크 이용을 도와주고 있다. 양진하 기자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안. 한 어르신이 무인단말기(키오스크) 앞에 서 있다. 손가락을 화면에 대고는 어느 곳을 찍어야 할지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데 주황 조끼를 입은 여성이 그 옆으로 다가간다. “어르신, 우대권 구매하시려는 거 맞지요?”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여성은 손주연(64) 씨다. 서울시 디지털 안내사로 활동하는 손 씨의 주요 활동 지역은 구로구 신도림역과 테크노근린공원 등이다. 그는 지하철 키오스크 이용법이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설치방법, 음성으로 메시지 보내는 방법, 서울시의 건강관리 서비스인 ‘손목닥터9988’ 사용법 등을 어르신들에게 안내한다. 손 씨는 “처음에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도움을 거절하는 분이 많았는데 이제는 주황 조끼를 입은 저희를 보고 먼저 다가와 물어보기도 한다”며 웃었다.

코로나19로 비대면(언택트) 소비가 확산되면서 키오스크 역시 일상에 널리 퍼지고 있다. 식당에서 음식을 고를 때는 물론이고 극장, 공연장에서 표를 사거나 주민센터에서 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도 키오스크를 이용해야 할 때가 적지 않다. 하지만 고령층 대다수는 이러한 상황이 부담스럽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3년 진행한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스마트폰, 키오스크 등 디지털기기를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뜻하는 디지털정보화 역량 수준은 고령층이 55.3%로 저소득층(93.0%), 장애인(75.6%)보다 낮게 나타났다. 실제 스마트폰을 쓰면서도 간단한 문자를 보내거나 카카오톡 앱 설치도 어려워하는 어르신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 보니 이들에게는 바깥에서 마주하는 키오스크 역시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어르신에게 음성으로 메시지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사 손주연 씨. 양진하 기자


이런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서울시는 지난 2022년 7월부터 디지털 안내사 사업을 시작했다. 안내사는 2명이 짝을 이뤄 지하철역이나 주민센터, 공원 등 어르신들이 많이 다니는 300여 곳을 이동하면서 스마트폰, 무인단말기, 길 찾기 앱 활용법 등을 안내한다. 올 상반기(1~6월)까지 4기에 걸쳐 총 545명이 활동했고, 지난 7월부터는 5기 145명이 새롭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손 씨는 이번이 두 번째 디지털 안내사 활동이다. 한창 직장을 다닐 때만 해도 잘 몰랐는데 정년퇴직을 한 뒤에야 식당이나 카페 곳곳에 설치된 키오스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그. ‘이대로 있다가는 홀로 밖에서는 밥 한 끼 사먹기도 힘들겠다’는 위기감을 느낀 손 씨는 50플러스센터 등에서 디지털기기 사용방법을 알려주는 강의들을 챙겨 들었다.

손 씨는 “강의로 배운 지식을 어딘가에서 써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디지털 안내사 모집 공고를 접했다”며 “운 좋게 선발돼 활동하는데 이 일이 정말 재밌다. 특히 어르신께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하고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화영(69) 씨도 이번이 두 번째 활동이다. 최 씨는 고령층에게 가장 중요한 게 ‘반복’이라고 강조했다. “어르신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두려워하세요. 처음에는 노인 우대권을 쓸 줄 모르는 분이 많았지만 반복해서 배우시면 다들 잘 하시지요.”

실제 이날 구로구 테크노근린공원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디지털기기 사용법을 알려드리겠다는 안내사의 말에 “배울 게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럼에도 안내사가 스마트폰의 키패드를 쓰지 않고 음성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을 시연하자 이를 보고 “더 알려줄 건 없느냐”고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디지털 안내사 최화영 씨가 서울 구로구 신도림 테크노근린공원에서 스마트폰 앱 설치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양진하 기자


이튿날 서울 동대문구 지하철 청량리역에서 만난 조덕행(72) 씨는 1, 2기에 이어 5기로도 선발돼 활동 중인 ‘베테랑’ 안내사다. 청량리역과 제기역, 경동시장, 인근 주민센터 등이 그의 주된 활동지역이다. 특히 조 씨는 KTX, ITX, 무궁화호, 수도권 전철 등 여러 종류의 열차가 다니는 청량리역 안의 복잡한 구조를 꿰뚫고 있다. 이날도 조 씨는 청량리역사 안을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열차표 예매나 탑승구 위치, 출구 등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줬다. 그는 “요즘은 자식들이 부모의 열차표를 대신 끊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탑승구를 못 찾아 열차를 놓치기도 하는 만큼 정확하고 빠르게 안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 씨는 디지털 안내사 활동을 하면서 디지털 교육의 중요성을 더욱 체감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디지털기기 활용법을 모른다면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무리 우리나라가 디지털 강국이라고 한들 디지털기기 사용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는 의미 없는 먼 나라 얘기지요.”

승차권 예매를 도와주는 디지털 안내사 조덕행 씨. 양진하 기자

양진하 기자
jjing@rn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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