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된다면 평생에 걸쳐 일할 수 있는 사회 구조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일본 정부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2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5회 리워크 컨퍼런스’에서 발표에 나선 이영민 숙명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일본 정부가 쓰는 표현 가운데 ‘평생 현역 사회’라는 말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평생 현역 사회에는 국가가 나이를 먹어도 여력이 된다면 언제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저출산·고령화로 마주한 노동력 부족 현상을 극복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지도 엿볼 수 있다.
실제 일본은 수년간 평생 현역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펼쳐왔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일본 후생노동성은 2021년 4월부터 고령자들이 70세까지 일할 기회를 제공받도록 하는 ‘취업 확보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일할 의욕이 있는 고령자에게 나이와 상관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3가지의 ‘기둥’을 설정,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3가지 중 첫째는 ‘기업이 고령자의 안정적 고용 또는 취업을 확보하는 것’이다. 65세까지의 기업에 부과하는 65세까지의 ‘고용 확보 의무’와 70세까지의 ‘취업 확보 노력 의무’가 이에 해당한다. 둘째는 ‘해직 또는 이직한 고령자의 재취업 지원’이다. 회사를 떠난 고령 근로자들은 회사로부터 구직활동에 필요한 지원서를 받거나 전국 300여 곳의 ‘헬로워크(일본 내 구인구직 지원센터)’에 설치된 ‘평생현역지원창구’에서 직업 상담 및 소개 등을 받을 수 있다. 셋째는 ‘지역 차원의 다양한 고용 및 취업 기회 확보’다. 일본에서는 지자체나 지역사회단체, 기관 등이 협업해 퇴직한 고령자들이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 고령·장애·구직자 고용지원기구(JEED)는 ‘70세 고용 추진 플래너’와 ‘고연령자 고용 어드바이저’를 활용한다. 이들은 각 기업을 방문해 고령자 고용에 필요한 환경 정비에 관한 상담·조언 등을 하고 있다. 인력 부족 등으로 제도를 갖추기 어려운 중소기업의 경우 이들의 활동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교수는 “우리는 고령자 고용 대책을 세울 때 구직하는 당사자의 관점을 강조하는데 사실은 고령자를 고용하는 주체는 기업”이라며 “기업이 변화에 대응하도록 지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급격하게 제도를 도입·추진한다면 오히려 부작용이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에 고용 연장 조치만 지속적으로 확대해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일률적인 정년 연장이 외려 기업의 부담을 증가시켜 청년 고용이 위축되고 세대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평생 현역 사회’를 목표로 고령자 고용에 힘 쏟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60세 정년’을 법제화했음에도 그 전에 주된 일자리에서 이탈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 교수는 “우리는 재취업과 전직 등 ‘인생 2모작’ 지원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정년인 60세까지 안정적으로 회사에 다닐 수 있는 일종의 ‘인생 1모작’을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일환으로 이 교수는 ‘셀프커리어독’을 소개했다. 이는 근로자가 스스로 역량을 개발하거나 커리어 플랜을 짤 수 있도록 세미나 및 컨설팅을 통해 지원하는 일종의 ‘구조’다. 이 구조를 설계하고 근로자들과 상담하는 역할을 맡은 이들이 바로 ‘커리어컨설턴트’다. 이 교수는 “커리어컨설턴트는 직업 알선이나 취업 상담을 하는 우리나라의 직업상담사와는 다르다”며 “사람이 일을 시작하는 입직 단계부터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퇴장할 때까지 경력을 개발하고 어떤 커리어패스를 밟을 지를 상담하고 관리해주는 역할을 하는 이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는 국가 자격시험을 통과한 7만여 명의 커리어컨설턴트가 기업, 기관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기업의 요구나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성급한 법제화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근로자는 평생에 걸쳐 스스로 역량을 개발하고 경력을 관리해야 한다”며 “아울러 기업은 근로자들이 경력을 잘 관리하도록 지원하며 정부는 각종 제도와 법령을 정비한다면 우리 사회는 ‘평생 현역 사회’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 정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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