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그러나 한창 일할 나이인 중장년의 경우 예기치 않은 퇴직으로 길을 잃고 방황하기 십상이다. 물론 수 없는 시행착오 끝에 더 나은 방향을 발견해 밝은 ‘인생 2막’을 열어가는 이들도 우리 주위에는 적지 않다. 40대 후반 방송사를 관둔 뒤 현재는 헤드헌터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편정현(57) 씨의 사연도 그 가운데 하나다. 라이프점프는 편 씨를 만나 길 잃은 은퇴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40대 후반에 찾은 ‘터닝 포인트’
편 씨는 한 지역방송사 PD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케이블TV 개국과 지역 민영방송사 설립 등으로 방송이 인기를 누리던 시절 이 업계에 힘차게 첫발을 내디뎠지만 앞날이 순탄치는 않았다. 1990년대 말 닥친 외환위기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여러 번 옮기다 보니 안정적인 경력을 쌓기가 어려웠다. “제 30대는 부침이 많았던 시기에요.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안 풀리냐’며 한탄도 많이 했지요.”
2017년. 어느덧 40대 후반이 된 편 씨는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계속 PD를 하느니 다른 일을 찾기로 한 것이다. 그즈음 편 씨는 지인으로부터 건물 관리 일을 소개받았다. 한 달을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200만 원 남짓. 그 돈만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웠던 그는 밤이면 대리운전까지 뛰었다. “잘 풀리지 않는 인생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됐어요.”
이런 시간은 그에게 ‘터닝 포인트’가 됐다. 순탄치 않았던 20~30대의 자신을 떨쳐내는 동시에 오로지 자신만의 전문성을 갖추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길로 편 씨는 다시 일을 찾아 나섰다. 전문적인 역량을 쌓을 수 있으면서, 그 전문성을 바탕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업이어야 했다. 그러던 중 헤드헌터라는 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찾고, 채용을 중개하는 사람. 편 씨는 어쩌면 그 일이 자신에게 잘 맞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 한 온라인 구인·구직 업체에서 헤드헌터를 뽑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편 씨는 바로 이곳에 지원했고, 일을 시작했다. 성과에 따라 수당을 지급하는 체계다 보니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새 일에 몇 달을 파묻혀 지내다 보니 편 씨는 이 일이 자신에게 참 잘 맞는다고 느꼈다. 지천명을 눈앞에 두고서야 천직을 만난 것 같았다.
편 씨는 2018년 헤드헌팅 전문 업체를 설립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한 뒤 매출이 매년 15%가량 증가하는 등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긿 잃은 은퇴자에 뼈 아픈 조언하는 ‘앵그리 편쌤’
편 씨는 2년 전 새로운 직업을 하나 추가했다. 바로 유튜버다. “헤드헌터를 하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직업 상담을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중장년이나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자리잡(Job)자’는 중장년 이상 세대에 다양한 이·전직 정보를 제공한다. 2023년 시작한 채널의 구독자 수는 현재 1만 8000여 명까지 늘었다. 동영상은 550여 개를 업로드했다. 채널 개설 후 처음 공개한 ‘퇴직 후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현재까지 조회 수 10만 회를 넘겼다.
편 씨의 유튜브 채널에서 그는 ‘앵그리 편쌤’으로 통한다. 한 편으로는 뼈 아프지만, 진심으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저도 실패와 재도전의 경험이 있었기에 중장년에게 더 좋은 조언을 할 수 있었다”며 “뿌리내리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중장년들에게 ‘제발 그러지 말고 홀로 서서 이겨내고 커리어를 만들어야 한다’고 소리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중장년이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인생 후반을 준비하는데 서툰 이유로 편 씨는 일에 관한 고민 부족을 꼽았다. “50대의 상당수는 현재의 청년들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사회 초년생 시기를 보냈다고 봐요. 어렵지 않게 취업하니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관한 고민은 적었던 거지요. 그러다 보니 인생 후반기에 다른 직업을 선택하기가 어려울 수밖에요.”
편 씨는 ‘현역의 마인드’도 걸림돌로 봤다. 그는 “차장, 부장을 거쳐 임원까지 하면서 회사에서 누려온 것을 그대로 보장하면서 재취업할 수 있는 회사가 얼마나 될까요. 과거의 영화를 지키려고 들면 재취업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베이비부머 세대가 인생 후반전을 잘 설계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편 씨는 “투자하지 말고, 쉽게 가려 하지 않으며, 주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라”고 조언했다. 은퇴 후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꾀임에 속아 덜컥 퇴직금을 투자했다가 돈을 잃은 중장년이 적지 않기 때문. 게다가 자신을 환영하는 편안한 일자리나 쉬운 창업 아이템이란 많지 않으며, 남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고 홀로 고민에 빠져있다 보면 무리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주위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어서다.
편 씨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퇴직 후 성공적으로 인생을 설계한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다양한 채용 공고도 보면서 향후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며 “특히 이전 직장의 경험과 인맥에 기대지 말고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새 기술 배워 인생 후반 개척” 도움
편 씨는 올해부터 인생 2막을 열어가려는 이들을 위해 새로운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이곳은 일종의 직업전문학교로, 배워서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을 전수하는 곳이다. 집수리나 도배, 붕어빵 제조, 수선집 창업 과정 등을 배울 수 있다. “청소 기술을 배워 오전에만 일하면서 월 400만 원가량을 버는 70대 부부 등 새로운 손기술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해 가는 시니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동안 PC 앞에서 일했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공간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것도 고려하세요. 이 일이 의외로 자신에게 잘 맞는 천직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이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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