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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광고쟁이에서 동화작가로…“내 나이 54세,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아요”

[창간 인터뷰(2)] 동화작가 스티븐 프라이어

  • 박해욱 기자
  • 2020-01-28 11:11:44
광고쟁이에서 동화작가로…“내 나이 54세,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아요”

해외거주 경험이 없는 자로서 외국인은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멈춤이 없고 자기표현을 잘(Well) 할 줄 알았다. 드라마나 영화 속 외국인의 모습이 그랬으니까. 이 분은 예외였다. 직설적이지 않고 에둘러 말하는 화법이 꼭 수줍음을 많이 타는 어린 소년 같았다. 인터뷰가 끝난 후 마지막 인사말을 촬영할 때는 ‘무대 울렁증(?)’이 심한 지 수차례 다시 찍어야 했다. “카메라 뒤에는 많이 있었어도 카메라 앞은 어색하다”고 애써 설명하는 대목에선 더 정감이 갔다.

대형 광고기획사 임원에서 얼마 전 동화작가로 전업한 스티븐 프라이어를 라이프점프가 만났다. 창간 기념 2호 인터뷰이로 그를 점찍은 이유는 그가 액티브 시니어의 전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몰두했고 뒤늦은 나이에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인터뷰는 라이프점프의 파트너사인 루트임팩트와 신촌극장이 운영하는 성수동 ‘신촌살롱’에서 진행됐다. 스티븐은 이 곳에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지하공간에는 아직 수거 하지 않은 그의 작품이 남아 있었다.

- 이 공간에 남아 있는 작품들은 스티븐 당신 것인가.

“맞다. 작년 11월 ‘아웃 오브 더 박스’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었다. 지금은 일산에서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에 있는 것들은 옮기지 않은 작품들이다.”

- 제목이 재밌다. 어떤 의미를 담았나.

“‘아직 보여지지 않은 또 다른 나 자신을 상자 밖으로 꺼내볼까’라는 의미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 수 없었던 신비로운 것들이 가득 차 있다. 그 신비로운 것들이 가득 담긴 박스는 열리기를 바라지만 그 문을 열 수 있는 자는 우리 자신 뿐이다. ‘한번 열어볼까?’라고 권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광고쟁이에서 동화작가로…“내 나이 54세,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아요”
‘아웃 오브 더 박스(OUT OF THE BOX)’전(展) (사진=본인제공)

- 그 박스는 다른 사람이 열어줄 수는 없는 건가.

“자기 박스는 자신이 열어야겠지. 다만, 박스에서 꺼낸 것들을 서로 펼쳐보면서 작은 아이디어를 더 큰 아이디어로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주저하지 말자, 함께 생각해보자, 란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 결국 사람들이 자기내면에 더 가깝게 가게끔 북돋고 싶었던 전시회라고 생각된다. 이런 전시회를 연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어릴 때부터 여행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 취미와 특기를 살려 20년 넘게 광고일을 해온 스티븐 프라이어다. 올해 한국 나이로 54세(1967년생)다. 얼마 전 회사(HS애드)에서 나와 동화작가 일을 하고 있다. 전시회를 여는 작가이기도 하다. 비록 광고회사는 나왔지만 광고일을 끊은 것은 아니다. 프리랜서로 광고일도 한다.”

- 현대판 노마드처럼 보인다. 그렇게 살 수 있었던 배경은 뭔가.

“호주에서는 대학 졸업 후 세계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흔하다. 나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마음 가는 대로 세계 각지를 다녔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만난 사람이 부다페스트가 멋진 도시라 해서 가봤더니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현지 광고에이전시 회사에 취업해 일하고 그랬다. 물론 부모님이 내 선택을 무작정 찬성한 건 아니었다. (웃음) 취리히, 암스테르담에서 일하다 한국으로 왔다.”

- 유럽의 살고 싶은 도시들을 옮겨 다니면서 일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꿈 같은 이야기처럼 들린다.

“운(lucky)이 좋았던 거다. 게다가 광고일이라는 것이 국가나 지역에 속박되는 게 아니어서 그 덕택도 있다.”

이날 인터뷰는 스티븐의 아내인 김선민씨가 통역을 도와줬다. 둘은 깐느 광고제에서 만나 지인으로 지내다 결혼했다.

광고쟁이에서 동화작가로…“내 나이 54세,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아요”
아내 김선민씨와 스티븐 프라이어가 영상을 함께 보고 있다 (사진=조민교기자)

-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됐는가.

“암스테르담에서 일할 때 한국 대기업 광고를 맡았다. 당시 상사가 한국인이었는데 마침 한국에 갈 생각이 있는지 물었고 아내와 상의 끝에 한국행을 정했다. ”

- 아내가 한국사람인데 그 영향이 있나.

“아, 그건 절대 아니다. (옆에 있던 아내 김선민씨 ”우린 평생 해외에서 살 줄 알았어요.(하하)“)

- 직장을 나와 동화작가로 변신했는데. 계기가 있나.

“암스테르담에서 일할 때였는데 일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그때 무작정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존재의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써보자”란 생각이 들어서 웜(지렁이)에 대한 글을 써봤다. 배우가 꿈인 지렁이가 사과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실려 미국으로 가고 결국 할리우드에서 카우보이 역할을 하는 그런 이야기였는데 쓰면서 무한한 자유를 느꼈다. 지인 아이들에게 글을 보여줬더니 너무 좋아하더라. 이후 7개 이야기를 더 썼고 언젠가는 동화작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스티븐 프라이어는 현재 12편의 동화책을 출판했다. 2월엔 13번째 책이 나온다. 책 제목은 ‘이상한 나의 집’이다.

광고쟁이에서 동화작가로…“내 나이 54세,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아요”

- 자유를 느꼈다.. 자유라는 것이 글을 쓰는 유일의 목적은 아닐텐데 돈벌이는 좀 되나.

“풀타임 작가가 된다는 것은 당연히 밥벌이 문제와 연결돼 있다. 동화작가로 소득을 높이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 다만 소득을 얻기 위해서는 한 가지 일만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전시회도 열고 프리랜서 광고일도 병행하고 있다.”

- 직업으로서 동화작가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에겐 ‘빅스토리(Big Story)’란 평생의 화두가 있다. 동화는 32페이지 안에 빅 스토리를 담는 일이다.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즐거워서 광고일도 했던 건데 따지고 보면 광고란 것도 빅 스토리를 공간에 담아내는 일이다. 스토리를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내는 건 즐거운 일이다.”

- 동화 쓰는 일을 잘 몰라서 묻는 건데, 동화는 꼭 32페이지 안에 끝내야 하는 건가.

“아, 분량 평균이 대략 그 정도라는 거다. 꼭 32페이지는 아니다.”

- 알겠다. 논의를 좀 바꿔보자. 9년 간 한국에서 살았는데 한국, 한국인에 대한 자신만의 관찰이 있을 것 같다. 특히 일하는 한국인의 모습이 어떻게 비쳤는지 궁금하다.

“광고일이라는 게 밤낮이 없고 매순간이 일하는 과정이어서 바쁘게 살아왔다. 주변에 광고일 하는 한국사람듣도 그랬다. 한국사람들의 일 에너지는 엄청나다. 취미조차 즐기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일 하느라 여유가 없는 사람들? 이런 이미지를 받았다.”

- 너무 일에만 몰입돼 있다는 의미?

-많이 들은 이야기겠지만 나도 한국 와서 가장 먼저 배운 단어가 ‘빨리빨리’다. 한국은 매우 편리(convenient)하면서도 그 과정을 거치면서 소모(spoiled)되는 문화인 것 같다. 모든 게 너무 빨리 돌아가다 보니 가끔은 숨 막힌다는 느낌을 받는다. 근무시간단축 제도가 시행됐는데 일 하지 않는 시간만큼은 자신의 박스를 열어보는(unbox) 것에 쓰면 좋겠다.

- 근로시간단축 이야기가 나왔으니 물어보면 유럽에서 오래 일했는데 그들의 근로시간은 어떤가.

“광고일만 해서 다른 직업은 어떤지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유럽에서는 일의 효율성을 따진다. 효율성이라는 게 결국 시간 대비 개념 아닌가. 유럽에서는 똑같은 일을 짧은 시간 안에 마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광고쟁이에서 동화작가로…“내 나이 54세,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아요”
한국의 전통꿀을 선물받고 미소짓고 있다 (사진=조민교기자)

- 계속해서 박스에서 나오라고 주문하는데, 그러면 당신의 박스는 얼마나 열린 상태인가.

“절반(half)쯤? (하하)

- 나머지 절반은 언제 열어볼 생각인가.

“늘 드는 생각인데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동화책도 더 쓰고 싶고 또 다른 전시회도 열어보고 싶다. 물론 내 안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꿈도 있겠지.”

- 한국에서는 일자리 문제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특히 당신이 속한 4050 세대가 더 큰 문제인데 이들 10명 중 4명은 70세 넘어서도 일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와우(wow), 놀랍다. 70살이 넘어서도 일을 한다? 호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호주 사람들은 은퇴 후 좋은 날씨를 쫓아 여행하는 것을 낙으로 여긴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일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호주에서는 떠밀려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회복지시스템이 앞서 있어서 은퇴 이후에 돈 벌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생각해보니깐 나도 평생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긴 하다.”

- 당신 인생에는 은퇴란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 나의 인생에 은퇴란 없다. 대신 떠밀려서 일하지는 않을 거다.”



- 한국의 4050 세대는 그 누구보다도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을 몸소 겪기도 하고. 그래서 이들의 일자리 욕구가 높다는 것이 어떤 면에선 존재의미를 일에서 찾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인에게 직업은 일종의 사회적 지위를 의미하는 것 같다. 체면을 중요시한다고 해야 할까. 체면 차리려면 아무래도 직업이 있으면 도움이 되니까.”

- 라이프점프 창간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마지막으로 우리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기만의 프로젝트 하나쯤은 가졌으면 좋겠다. 매우 열정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자신이 좋아할 만한 그런 프로젝트. 그리고 그걸 미리 해보는 게 중요하다. 한 분야에서 잘하고 그것을 통해서 돈을 벌려면 오랜 시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니까 말이다.

아! 하나 더 덧붙이면, 자신의 박스를 열어서 그 안에 어떤 신비한 것들이 있는지 찾아보시길!“

박해욱 기자
spook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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