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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2곳 중 1곳, 전직지원 서비스 잘 몰라”...3~4월이 제도 안착의 ‘골든타임’

[라이프점프] 5월부터 전직지원서비스 의무화(2)

전직지원서비스 실태조사, 17.5%만 서비스 제공

미실시 기업 중 42.9% ‘서비스 내용 잘 모른다'

법위반 시 처벌조항 없어, 기업 자발적 참여 한계

적극적인 제도 홍보, 실무가이드라인 제정 서둘러야


“시행령만 갖고선 전직지원서비스 운영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기 어렵습니다. 정부가 내놓을 추가적인 가이드라인을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지난달 31일 1,000명 이상 대기업에 전직지원서비스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고령자고용법 개정안 시행령이 공개되자 금융 대기업의 한 인사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삼성·포스코·KT 등 이전부터 전직지원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해온 일부 기업들을 제외하면 대다수 기업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이번 시행령엔 전직지원 서비스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기업의 범위, 서비스 제공의 범위, 서비스 내용 등 그동안 시장에서 꾸준히 예상해왔던 수준의 내용 들만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 방식과 교육 시간 등 구체적인 전직지원 서비스 운영 기준은 빠졌다.

하지만 법 시행까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기업들의 이같은 수동적인 반응이 제도 안착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기업 부담을 의식해 법 위반에 따른 처벌조항을 이번 시행령에 담지 않았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는 전직지원서비스 의무화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앞으로 남은 두 달 남짓한 기간을 전직지원서비스가 기업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는지를 판가름할 ‘골든 타임’으로 보는 이유다.

◇ 대기업 2곳 중 1곳, “전직지원서비스 모른다”=전직지원서비스 의무화를 골자로 한 고령자고용법 개정안은 지난 2018년 4월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건 그보다 앞선 2016년부터다. 법안 통과 전까지 국회에서 유사 입법안이 5건 이상 발의되는 등 활발한 논의가 진행돼왔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전직지원 서비스 의무화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가 의무이행 대상 기업인 1,000명 이상 (고용보험 피포함자 수) 사업장 945곳의 전직지원서비스 제공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직지원 서비스를 제공 중인 곳은 전체의 19.5%에 그쳤다. 지난해 1,000명 이상 기업 793개소를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에서도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17%에 불과했다. 흥미로운 점은 전직지원서비스를 실시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42.9%가 ‘서비스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라는 답한 점이다. 5월부터 전직지원 서비스가 의무화되지만 국내 기업 두 곳 중 한 곳은 법안 내용을 잘 모른다는 얘기다. 전직지원서비스업계의 한 관계자는 “성공적으로 전직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타사의 벤치마킹 모델이 되는 대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은 희망 퇴직에 앞서 복리후생차원에서 시행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더 큰 문제는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전직지원 서비스 의무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재취업지원서비스 의무화 주요 내용

◇ 기업들 “처벌조항 없고, 가이드라인 나올텐데...” =기업들이 전직지원서비스에 소극적으로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다. 대기업은 업종 특성에 따라 50세 이상 근로자의 수의 분포나 정년·명예 퇴직 수요 등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1,000명 이상인 사업장에서 1년 이상 재직한 50세 이상 근로자가 비자발적 사유로 이직할 시 진로설계, 취업알선, 재취업 또는 창업교육 등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했다. 재계 관계자는 “회사에 따라서 젊은 층이 많은 곳이 있는 반면 한 해에 수 천명의 인력이 빠져나는 곳이 있을 수 있다”며 “법으로 강제하기보단 기업의 인력 운영에 맞춰 유연하게 전직지원 서비스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처벌 조항이 없다는 점도 기업들의 참여 유인을 떨어뜨린다. 사업주 입장에서 전직지원서비스는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부담만 될 뿐 특별한 동기 부여가 없어서다. 정부가 고심 끝에 이번 시행령에서 처벌조항을 넣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대기업 중에 전직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비율이 20%가 되질 않는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에만 기대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실제 시행령이 공개된 뒤에도 전직지원 담당 부서에서 관련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전직지원서비스 의무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보단 정부의 대책을 기다리거나 경쟁사의 준비 상황을 체크하는 등 수세적인 모습을 보이는 곳들이 대다수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처벌조항은 없지만 대기업들이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평판 악화 등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법 시행 후 1년 간 이행실태를 점검하고 그 결과에 따라 후속조치 등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3~4월이 골든 타임=전직지원서비스가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선 법 시행 전까지 의무이행 대상 기업을 상대로 한 적극적인 정책 홍보가 필수다. 아울러 전직지원 서비스를 처음 도입하는 기업들을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 3~4월이 제도 안착 여부를 결정할 중요한 시기인 셈이다.

실제 전직지원 서비스는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기업과 근로자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다. 기업 입장에선 퇴직을 앞둔 근로자들의 사기 저하를 막고 효율적인 인력관리와 협력적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근로자 입장에선 실직에 따른 정신적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체계적인 전직지원 시스템 아래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새 직업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지원받을 수 있다. 적어도 아무런 준비 없이 회사 밖을 나오는 상황만은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고용노동부가 시행령 마련을 위해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할 때 노동자 단체에서 전직지원 서비스 대상자를 확대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정부는 오는 2월 말을 목표로 전직지원서비스 위탁기관의 요건, 서비스 운영기준 등을 담은 고시를 내놓을 계획”이라며 “전직지원 서비스를 처음 도입하는 기업을 위한 매뉴얼 배포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서민우기자 ingaghi@lifejump.co.kr

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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