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배우지 않은 그 누구라도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심플하게 보여줄 수 있는 로고 디자인 앱이 있다면 어떨까요? “Design for everyone”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스타트업 픽소는 이 질문에서 시작해 어플리케이션 ‘로고메이커샵’을 런칭했습니다. 수차례 앱스토어에도 피쳐드 되면서, 최소 250만 명이 이 앱으로 로고를 만들었죠.
이렇게 강력한 어플리케이션을 만든 스타트업 픽소의 최한솔 대표님은 말 그대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분이었습니다. 창업하기 전에는 디지털노마드로 일하던 디자이너였고, 대학을 전공은 디자인과 전혀 무관한 세무 회계학이었답니다.
틀을 깨며 길을 걷는 그녀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또 어떻게 픽소를 운영하며 팀원들과 앱을 만들어내고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을까요?
일자리 전문 매체 '라이프점프'와 여성 스타트업 커뮤니티 '스여일삶'은 2020년 첫 공동 기획 인터뷰로 최 대표를 만나 궁금한 것들을 직접 물어봤습니다.
- 디지털 노마드부터 창업까지 시도하신 게 정말 많으셨어요. 지금의 대표님이 되기 까지 가장 중요한 징검다리는 디자이너 업무의 시작인 것 같은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당시 전공에 흥미가 없어서 의류 쇼핑몰을 만들었던 게 웹디자인의 문을 두드리게 된 계기였죠. 그때 쇼핑몰 운영을 위해 포토샵을 접했고 전문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 뒤에 국내 에이전시에서 일하다가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죠. 외국의 클라이언트들과 드리블이라는 플랫폼으로 연이 닿아서 즐겁게 일했어요. 일하던 중 기회가 닿아 2년간 창업에 뛰어들어 초기 스타트업에서 시행착오도 경험했고요. 실패를 겪고 난 뒤에는 싱가폴, 발리, 방콕 등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일했고 지금의 동업자인 김상원 대표님을 만났죠."
- 디지털 노마드의 삶, 그것도 너무 좋았을 것 같은데 창업에 도전하신 이유가 있었을까요?
"처음 스타트업에 뛰어들 때, 그때도 동업하는 대표님이 계셨어요. 같이 스타트업을 해보자고 제안해 주셨을 때 제가 만든 제품을 다른 사람이 쓴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드는 일을 한다니 정말 가슴 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의 공동창업자분과 함께 하게 된 것도 비슷해요. 내 제품을 마켓에 올리고, 그걸 누군가 다운을 받고,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처음엔 그저 피드백을 바라셔서 저한테 도움을 구하셨던 건데, 제가 적극적으로 도와드리며 좀 더 많은 디자인 리소스를 추가하자고 말씀드렸죠. 그때 나온 게 커버(Cover)였어요.
커버 런칭을 하고 한국에 오니까 앱스토어에 피쳐드가 되어서 엄청 놀랐어요. 실제로 많은 분이 앱을 다운받아 주셨더라고요. 수익이 나는 상태니까 자연스럽게 그저 협업에 그치기보다는 회사를 꾸리게 됐죠. "
픽소는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데 ‘필요한’ 제품을 만듭니다. 누구나 디자이너처럼 로고를 제작할 수 있는 앱 로고메이커샵(Logo Maker Shop)부터 육아 기록을 남기고 공유할 수 있는 베이비그램(Baby Story), 집중력을 높여주는 생산성 앱 포커스키퍼(Focus Keeper), 그리고 아기의 수면을 도와주는 사운드 큐레이션 앱 슬립튠(Sleep Tune)을 서비스하고 있죠. 전체 앱의 누적 다운로드 수는 1000만을 달성했습니다.
- 픽소는 어떤 스타트업인가요?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함께 창업한 스타트업이에요. 해외 타겟으로 생산성 앱과 그래픽 앱을 제작하고 있어요. 창업자들을 포함해 개발자 4명, 디자이너 3명, 마케터 1명, 피플매니저 1명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작지만 단단한 팀 문화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 투자를 전혀 받고 있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엑싯이나 투자자의 의견으로 방향성을 결정짓지 않고, 팀의 생각과 결정에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픽소 이전에도 스타트업 창업팀에 합류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는 정부 지원사업과 투자를 중요하게 생각했죠. 그래서인지 제품 개발이나 사용자에 대한 경험보다는 자금 조달을 위한 계획에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썼어요. 정작 중요한 제품 출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창업팀이 해산하게 되었죠.
그래서 다음 창업에는 여러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험해보고 수익모델에 대한 검증을 하면서 제품을 만들어 나가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도적인 팀의 방향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픽소에서는 자체매출을 통한 독립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 투자를 받을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지점에 서려면 그만큼 내부 수익 모델이 튼튼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앱만으로 수익을 내시는 건가요?
"저희는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만 수익을 얻어요. 특히 여러 개의 앱을 서비스하고 있어서 얻는 이점이 있어요. 지금 네 개의 앱을 서비스하고 있는데, 카테고리부터 디테일한 기능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수익적으로 보완이 되더라고요. 어느 시기에는 사진 관련 앱보다 생산성 앱을 찾는 경우가 있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니까요."
- 그럼 요즘 같은 때는 어떠세요? 코로나19에도 영향을 받고 있나요?
"요즘에는 생산성 앱에 주목하고 있어요. 집에서 업무를 보시는 분들이 많아서겠죠.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포커스키퍼가 특히 많이 다운로드되고 있어요."
- 투자는 받지 않더라도 다른 광고 전략,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진 않으셨나요?
"작년까지는 광고 비용을 하나도 들이지 않았어요. 지금은 페이스북과 구글에는 타겟 광고를 내보내고 있고요. 그런데 광고에 돈을 지불한 것 대비 효과를 얻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저희는 그보다 더 좋은 마케팅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요. 입소문이죠. ‘최고의 제품은 내 친구가 입소문을 내는 제품’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친구에게 공유하게끔 많이 유도했어요. 그렇게 해보니까 데이터가 꾸물꾸물하다가 확실히 올라가는 걸 두 눈으로 볼 수 있었죠. 덕분에 앱스토어에 피쳐드도 되었고요"
- 지금은 서비스를 종료하셨지만 사실 픽소가 만든 최초의 앱은 사진 편집 앱인 커버(Cover)입니다. 서비스를 종료하게 된 배경이나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커버의 서비스를 종료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었어요. 앱 출시보다 업데이트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죠. 그게 팀을 꾸리게 된 이유이기도 했어요. 그때는 얼마 안 되어 베이비그램(Baby Story)을 런칭했고, 거기에 신경 쓰느라 업데이트를 소홀히 했어요. 사실 앱을 만들었더니 앱스토어에 피쳐드 된 게 너무 신기하고 신났거든요."
- 그래서 새로운 앱을 개발하고 싶었던 거군요.
"그때는 업데이트가 중요한 건지 잘 몰랐어요. 신규 앱 개발이 너무 즐거웠고, 그것에 집중하면서 커버 작업은 좀 미뤄지게 됐어요. 새로운 기기들은 생기는데,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으니 다운로드도 저조해졌죠. 고민 끝에 결국 커버의 서비스를 종료하게 됐어요."
- 그럼 반대로 어플리케이션을 업데이트할 때는 어떤 점이 주력 포인트가 되나요?
"버그를 잡아내는 것도 중요하고, 새로운 기기나 업데이트된 OS에 맞게 업데이트를 해야 해요. 사용성을 개선하는 건 당연하고요. 사용하는 분들께는 그냥 느낌으로만 오는 거지만, 우리는 데이터로 ‘이 부분을 사용하기가 어렵구나’, ‘이건 반응이 좋구나’ 알 수 있어요. 가령 결제율이 높아지는 점이나 사람들이 어느 페이지에 더 머무른다는 점을 통해서요."
- 1,000만 번 이상 사람들이 픽소의 제품을 집었다면, 이제는 어떤 요소가 사람들에게 어필되는지 아실 것 같아요.
"많이 관찰하고 있어요. 나름의 스터디랄까, 앱에 관련된 스몰토크를 많이 해요. 평소 앱 메인에 피쳐드 된 것들, 앱의 리뷰가 많고 평이 좋은 것들을 다 써보죠. 거기서 사람들이 주목할만한 요소를 뽑아내고, 우리가 서비스하는 앱에도 적용해 보고 있어요.
특히 신규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시장성을 보고 있긴 하지만, 저희는 대중에게 다가갈 서비스를 고민하는 중이니까요 다른 앱을 사용해 보면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꼭 사진 앱이 아니라도 엣지있는 포인트, 매력에 주목합니다."
- 지금 대표로서 가장 신경 쓰시는 지점이 있을까요?
"대표는 전체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전체가 안녕한지, 방향성을 잘 가지고 가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죠. 그걸 위해서 팀 문화를 잘 만들어나가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
‘대표의 역량은 전체를 보는 넓은 시각, 대표의 역할은 팀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팀원들에게 어떤 대표이길 바라는지. 그녀는 ‘팀원들에게 의지할 수 있는 동료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즐겁게 일하고자 하는 대표님의 생각과 딱 맞는 답변이었죠.
마지막으로 픽소에서 이루고 싶은 개인적인 목표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원할 때 원하는 곳에서 재미있게 일하고 싶어요.”
지금도 픽소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최한솔 대표님은 언젠가 일 년에 한 두 달 정도는 다 같이 다른 나라에 가거나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는 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도 했죠. 처음 발리의 우붓에서 자유롭게 일하던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면서요. 스스로도 그렇지만 팀원들도 평생 일에 매몰되기보다는 일과 행복의 밸런스를 지키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최 대표의 이야기는 <下>편에서 이어집니다 ☞ "스타트업 CEO는 직원들이 함께 일을 한다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하죠"
/신민주 스여일삶 에디터
- 서민우 기자
- ingagh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