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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함께 성장해가는 내 일

[라이프점프-루트임팩트 공동기획] 내일의 내:일(5)

이혜진 학생독립만세 오퍼레이터


Intro.

통계청에 따르면 임신과 출산, 육아 및 가족 돌봄 등을 이유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의 수는 2019년 기준 169만명에 달한다. 놀랍게도 이 중 구직 의사가 전혀 없는 경우는 0.6%에 그친다. 99%가 넘는 대다수의 여성들은 다시 일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모 제약회사의 광고 카피처럼, ‘엄마라는 경력이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현실 속에 이들의 다양한 전문성과 잠재력은 사회와 무관하거나 동떨어져있다고 치부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단녀’라는 세 글자에 갇힌 편견을 깨고 작지만 커다란 성장을 일궈내는 이들이 있다.

‘내일의 내:일’은 일터 밖에서 보낸 시간을 경력단절이 아닌 ‘경력보유’라는 이름으로 재정의하고, 스스로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다시 누군가의 동료로 돌아온 여성들의 성장 이야기이다. 그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것으로 간절히 내 일을 꿈꾸는 이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건네고자 한다.

“합격입니다. 그 한 마디가 내겐 다시 세상에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 같았다. 오랜시간 팔 아프게 뻗고 있던 손을 누군가 탁, 하고 잡아준 기분이었다.”

‘경력단절’ 여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7년만에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주인공은 이렇게 읊조린다. ‘명문대 출신, 졸업도 하기 전에 유명 광고회사에 입사해 카피라이터로 이름을 날렸다’고 소개되는 그는 ‘경단녀’의 시간을 거쳐 잡일 전담 계약직 사원의 모습을 하고서야 비로소 세상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세상의 문턱 앞에서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을 지 모른다.

라이프점프와 루트임팩트가 공동 기획한 ‘내일의 내:일’ 은 다섯번 째 인터뷰 주인공으로 후불제 취업교육 플랫폼 ‘학생독립만세’ 의 이혜진님을 만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경력단절로 정의된 시간을 거쳐 다시 한 조직의 구성원이 되어 일을 시작하기까지 혜진님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했는지 들어본다.

-혜진님은 결혼했지만, 일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셨던 것은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력단절 문제에 공감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요?

“저희 부부에게는 ‘결혼을 했으니, 다음은 아이를 낳아야지’라는 선택지가 애초에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결심이 섰을 때 다시 남편과 이야기하기로 했는데 아직 그런 순간이 오지 않았을 뿐이죠. 7~8년 정도 평범하게 회사 생활을 하던 중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번아웃이 왔던 것 같아요. 일에 대한 회의감도 들고, 스스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생겼고요. 잠시 일을 멈추고, 이것저것 배우고 경험하는 탐색의 시간을 가졌죠. 개인적으로는 꾸준히 글도 쓰고, 제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경험을 하고, 창업도 시도하며 부지런히 보냈던 시간인데, 그게 바로 사회의 문법으로는 ‘경력단절’ 이더라고요. 다시 조직에 속해 일하기로 결심했을 때, 면접장에 앉아 있는 저는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줌마, 누군가의 관대한 배려가 필요한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대학 졸업 후, 구직을 하던 때와 달라진 것은 단지 기혼 여성이라는 사실 하나뿐이었는데 말이죠. 경력단절 상황에 대한 사전 인식이나 마음의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실상 그 당시의 저는 외려 다양한 경험을 가진, 한 단계 성장한 단단한 상태였는데 말이죠.”

이혜진 학생독립만세 오퍼레이터


-예상 밖의 강력한 경험을 하셨던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데 저를 대하는 시선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런 무언의 분위기에 화내지 않고, 다소 무례한 질문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다른 여성분들의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저와는 다르게 경력단절 문제에 대해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 해보셨기 때문이었을까요? 분명, 저마다 훌륭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분들이고, 생애 주기에서 돌봄이라는 중요한 선택을 했을 뿐인데, 그 잠시의 경력 공백으로 인해 일터에서 여성들이 감내해야하는 것들에 대해 별안간 눈뜨게 된 거죠.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에 대한 교육에 참여한 적도 있었는데, 여성들이 어떻게 일터에서 타협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던 기억이에요. 우리끼리 각자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수준이었죠. 사실 저는 아이가 없으니까, 그 때도 한발짝 물러난 입장에서 마음껏 감정 이입하며 화를 낼 수 있었어요. 세상의 조력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인데, 왜 우리끼리만 해결책을 고민해야 하냐며 화를 냈죠. 그런데 그분들은 그게 매일의 현실이잖아요. 화를 내기보다 적응이 우선일 수 있는 거잖아요. 참는 방법부터 모색하고 있는 현실이 슬펐어요.”

-하지만 그 경험이 혜진님에게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준거죠?

“네, 그 때부터에요. 주변의 여성들을 더욱 관심있게 지켜봤죠. 그리고 깨달았어요. 경력보유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네트워크라는 사실을요. 저 또한 일터로 돌아갈 계획을 세울 때 가장 먼저 교육이나 자격증을 탐색했는데, 결국 제일 도움이 된 건 비슷한 상황을 헤쳐나가고 있는 동료 여성들과의 만남이었거든요. 어느 나이대가 되면, 일터 밖에서는 여성분들이 엄마로서의 페르소나를 우선해서 관계를 맺으시는 것 같아요. 엄마와 엄마가 만나 엄마로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죠.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다시 예전처럼 나의 이야기 - 나의 관심사, 나의 열망,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 - 이런 것들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봤어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장점이나 역량을 발견해주고, 서로를 응원하고, 또 기회가 된다면 마음 맞는 분들끼리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일 감각을 찾을 수도 있겠죠. 그렇게 ‘아트 오브 존버’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여성의 롤모델이 대단한 업적을 가진 사람에만 한정되는 게 오히려 우리를 위축시키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일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은 여성들이 가장 평범한 서로의 모습을 통해 답을 찾는 장을 만들어본 거죠. 이미 우리 모두는 충분히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앞으로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그 생각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게 언어화하고 확장시키는 일을 하고 싶어요.”

-‘아트 오브 존버’ 프로젝트를 잠시 접고, ‘학생독립만세’라는 소셜벤처에 합류하셨는데 요즘 하시는 일은 어떤가요?

“‘소득공유 후불제’ 교육이라는 한국에서는 아주 생소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죠. 간단하게 다시 말씀드리자면, 취업 준비를 위해 청년에게 필요한 교육이 있다면 먼저 배우게끔 하고, 취업 후에 실제 소득이 발생했을 때 해당 교육비를 지불할 수 있도록 배움의 영역에 혁신을 만드는 일이에요. 처음 합류할 때는 교육 기획을 담당했었지만, 교육비 ‘지불방식’에 혁신을 도모하는 서비스 특성상 핀테크 성격이 강한 회사라는 것을 입사 후에 알게 되었어요. 최근에는 금융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홍보 전략을 짜고 있습니다. 솔직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다 하자!’라는 자세로 일하고 있어요. 돌이켜보면, 제 안에 많은 레고 블럭이 쌓여 있었던 것 같아요. 교육학을 전공했고, 이후 회사에서는 진학이나 취업 컨설팅의 일을 계속 해왔어요, ‘아트 오브 존버’를 통해서는 커뮤니티 서비스를 기획하고 고객을 관리하는 일을 경험했고, 소셜섹터에 대해서도 이 곳을 규정하는 말들이 생겨나기 전부터 막연히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언제부터인가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사회문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거든요. 끝없는 경쟁과 그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불공정함에 의문을 갖게 되었죠. 기왕이면 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조금씩 나아지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이 모든 생각과 경험의 블록들이 ‘학생독립만세’에서 새로운 색과 모양으로 재조립되는 경험을 하고 있네요. 역시 어떤 경험이든 의미있게 연결해나간다면, 허투루 버려지는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요즘 혜진님이 꿈꾸는 커리어 목표는 어떤 것인지 궁금해요.

“새로운 도전보다는 지금 제가 속해 있는 학생독립만세라는 이 조직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스타트업이기에 수많은 변곡점을 지날텐데 그럴 때, 제가 가진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이 조직이,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 모두의 생김새가 각기 다른 것처럼, 일에 대한 관점이나 속도 등 여러 면에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고 때로는 부딪히는 경우도 있죠. 게다가 오랜만에 일터로, 그것도 젊은 스타트업으로 합류했기 때문에 제가 잘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자문하게 되는 불안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조직은 이번이 처음이라 저 스스로도 신기한 마음이에요. 함께 일하는 동료들 모두가 하나같이 배울 점이 많은 똑똑한 분들이에요. 매일 감탄한 일이 생겨요. 더 놀라운 점은 동료들의 스마트함에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선함이 전제되어 있다는 거에요. 자연스럽게 이 회사를 지키고 키워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났어요. 비단 커리어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제 개인의 목표와도 연결되는 지점인데요,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다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자원을 제공하고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자신과 남을 함께 아낄 수 있는 포용력을 지닌, 튼튼한 존재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그래서 당분간은 학생독립만세에서 동료들을 도와, 사회에 가치를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여성들의 일을 향한 욕망을 끌어내고 서로를 연결하는 일, 청년들에게 공정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며 가능성에 투자하는 일. 혜진님은 언제나 타인의 성장에 따뜻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 기쁨이 오래 지속되어, 비단 타인 뿐만이 아니라 혜진님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길 바란다.

루트임팩트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를 일과 삶, 배움의 분야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경력보유여성이 일터로 돌아와 그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연한 일자리를 설계하는 ‘임팩트커리어W’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여러 체인지메이커 조직들과 함께 여성의 지속가능한 일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송예리 루트임팩트 매니저
박해욱 기자
spook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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