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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솟구치듯···남쪽 끝 섬에선 쪽빛이 솟구치네[休]

◆힐링과 단절을 품은 '흑산도'

'홍어 금어기' 6~7월 외부와 격리된 곳

12굽이길·칠형제바위 비경에 젖어들고

대봉산 원시림 지나면 비밀의 '용굴' 싹

에메랄드 바다 앞 싱크홀 '신비함'에 푹

정약전·최익현 등 곳곳 유배 생활 흔적

'흑산도 아가씨 동상'서 3시간 일주 마쳐

13일 전남 신안군 흑산면 용굴./흑산도=성형주기자


전남 신안군 흑산도를 상공에서 바라본 모습. 왼쪽이 예리이고 바로 그 옆에 가장 번화한 곳이 진리로 관공서부터 숙박 시설, 주유소, 식당 등 모든 편의 시설이 모여 있다.


지난 1960년대 흑산도 아이들의 소원은 언젠가 서울에 한 번 가보는 것이었다. 거센 풍랑과 먼 거리 때문에 서울 구경은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다. 당시 흑산도에서 서울에 가려면 꼬박 하루가 걸렸다. 사연을 들은 청와대는 1965년 섬마을 아이들을 해군 함정에 태워와 서울 구경을 시켜줬다. 이 일을 계기로 탄생한 노래가 가수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1966)’다. 노래의 실제 주인공은 아가씨가 아니라 서울로 수학여행을 다녀간 흑산도 심리초등학교(폐교) 학생들이었다.

‘흑산도 아가씨’ 노래가 나온 지 반세기가 흘렀지만 여전히 흑산도 가는 길은 노랫말처럼 쉽지 않다. 서울에서 목포항까지 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4시간(350㎞), 목포 여객선터미널에서 다시 쾌속선을 타고 2시간(94㎞)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그나마 흑산도까지 차를 가져가려면 신안군 압해도 송공항에서 카페리를 타야 해 배 시간은 두 배로 늘어난다. 하루 딱 한 차례인 운항 시간에 잘 맞춰가도 총 10시간은 잡아야 다다를 수 있는 곳이 흑산도다. 평소 같으면 이 정도 시간과 노력을 들일 바에야 해외여행을 택하겠지만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한반도의 최서남단인 흑산도로 향했다.

우선 섬으로의 이동 시간은 더 걸려도 흑산도를 제대로 둘러보려면 차량이 필수다. 섬 안의 대중교통 수단이라고는 하루에 몇 대 없는 공영버스가 전부인데 택시는 물론 렌터카나 스쿠터·자전거를 대여하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온통 산으로 이뤄진 섬을 걸어서 다니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관광객들을 위한 투어버스가 운행되지만 차 안에서 운전기사의 설명을 들으며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게 전부다. 이 때문에 흑산도에 다녀왔다는 이들 대부분은 홍도로 갔다가 육지로 나오는 길에 잠깐 흑산도를 들러본 정도다.

흑산도는 홍도·만재도·가거도 등 유·무인도 총 100여 개로 이뤄진 군도다. 그중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본섬은 대흑산도로 불리는데 크기가 서울 여의도의 7배에 달한다. 총 25.4㎞의 일주도로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만 넉넉히 3시간은 필요하다.

흑산항 인근에 세워진 ‘흑산도 아가씨’ 동상. 바닥에는 흑산도 특산물인 홍어가 놓여 있다.


배를 타고 처음 도착하는 곳은 예리다. 기자와 함께 흑산항에서 내린 승선객은 총 30여 명. 우체국 택배 차량과 수산물 배송 트럭 운전자 등 업무차 육지를 오가는 이들이거나 육지로 잠시 일을 보러 나갔다 돌아온 섬 주민이 대부분이다. 2,103톤에 달하는 페리선 여객실에서 여행객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홍어 금어기인 6월부터 7월 중순은 기껏 해봐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뭍으로 나가는 섬 주민들이 자의 반 타의 반 외부와 격리에 들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섬 일주는 좌우로 길게 펼쳐진 섬의 동쪽부터 시작한다. 해안선을 따라가다 맨 처음 만나는 것은 배낭기미해변이다. 배낭기미는 예리항이 개발되기 전 흑산도 어업의 전초기지였는데 지금은 흑산도 유일의 해수욕장으로 관광객들의 차지가 됐다. 오후가 되면 몽돌해변 아래로 물이 빠지면서 은빛 백사장이 드러난다. 그 옆으로는 캠핑 공간과 데크 길이 조성돼 있다. 코로나19 전에는 한식을 전후해 바닷가로 몰려드는 자연산 숭어 떼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찾던 곳이다.

배낭기미에서 바다 쪽으로 눈을 돌리면 작은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섬이라기보다 작은 돌 무더기에 가까운 이곳은 고려시대 해적들을 가두기 위한 수중 감옥으로 쓰여 옥(獄)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본섬과 연결된 연도교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섬 입구에는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여기에 사람을 묶어뒀다고 한다. 정상에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작은 정자가 있고 그 주위로 해당화가 만개했다.

상라산 정상의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와 이미자 핸드프린팅 조형물은 지난 2012년 가수 이미자의 방문을 기념해 세워졌다.


마을을 지나 일주도로를 따라가면 상라산(229m)으로 오르는 12굽이길로 접어든다. 12굽이길은 속리산 말티재, 지리산 오도재보다 굴곡이 심한 데다 중간에 멈춰 설 곳도 없어 출발했다 하면 쉬지 않고 끝까지 올라야 하는 험난한 고갯길이다. 뱀처럼 휘어진 굽이길을 10여 분 가다 보면 상라산 정상이다. 전망대는 정상에서 다시 계단으로 10분을 더 올라야 한다. 전망대는 통일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가 해적을 막기 위해 축조했다는 상라산성의 봉수대 자리다. 맑은 날에는 예리항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돌아서면 대장도와 소장도 등 다도해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12굽이길의 끝이 바다로 이어지는 듯한 풍경이 압권이다.

상라산 정상에는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와 가수 이미자의 핸드프린팅 조형물도 있다. 지금으로 치면 ‘흑산도 홍보대사’였을 이미자가 흑산도를 찾은 것은 노래가 발표된 지 46년 만인 2012년이다. 상라산 정산에는 ‘흑산도 아가씨’를 비롯해 같은 앨범에 수록된 ‘섬마을 선생님’ ‘동백아가씨’ 3곡이 번갈아 울려 퍼진다.

흑산도 사리는 정약전이 유배 생활을 했던 곳이다.


흑산도라 하면 과거 유배지로의 역사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개봉한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1758∼1816)의 흑산도 유배 생활을 다뤘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한적하다 못해 무료한 섬마을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조선시대 유배형은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이었고 그중 섬은 중죄인들을 가둬두는 유배지로 척박한 삶을 견뎌내야 하는 절망의 땅이었다. 사학죄인 정약전에게 내려진 절도안치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서 가족과 떨어져 죽을 때까지 혼자 살도록 하는 종신 형벌이다.

사촌서당은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시절 성리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유배문화공원이 조성되면서 복원됐다.

흑산도 사리 유배문화공원에는 고려시대부터 유배된 이들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지난 2015년에 폐교된 흑산국민학교 서분교 운동장에 이승복 동상이 남아 있다.


정약전이 머물던 곳은 섬의 남동쪽 사리다. 정약전은 우이도로 넘어가기 전까지 흑산도에서 만 8년을 지내면서 최초의 어류 생태 보고서인 ‘자산어보(1814)’를 집필했다. 몇 해 전 마을에 유배문화공원이 조성되면서 정약전이 마을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사촌서당(복성재)과 돌담길을 복원했다. 고려시대부터 흑산도로 유배를 왔던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비석과 유배인 도표도 세워졌다. 대표적인 인물이 최초의 흑산도 유배인으로 기록된 나인 정숙과 좌의정 김재로, 구례 화엄사의 윤장 스님, 조선 말기 유학자 최익현 등이다. 죄명은 해괴한 짓부터 간언, 당론, 불경죄인, 탐욕, 모살죄, 뇌물 수수까지 다양하다.

흑산도 사리 앞바다는 칠형제바위가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한다.


영화 속 정약전이 창대(장덕순)와 향하던 사리 앞바다는 아담한 포구다. 일주도로를 따라 마을을 조금 지나 칠형제바위 전망대에 올라가면 주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칠형제바위는 풍랑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자연 방파제로 태풍이 불어 어머니가 물질을 못하자 일곱 형제가 바다로 뛰어들어 7개의 작은 섬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12굽이길과 함께 흑산도 제1·2경을 다툴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흑산도 예리 용굴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 용굴은 지표면에 싱크홀처럼 난 구멍이다.


섬을 한 바퀴 돌아 마지막으로 들러야 할 곳은 섬의 북동쪽 끝부분 대봉산(125m) 자락이다. 흑산공항 예정 부지인 이곳은 깎아 자른 듯한 해안 절벽과 울창한 원시림으로 사람의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섬마을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원시림을 지나 바다로 향하면 용굴을 만나볼 수 있다.

용굴은 섬의 끝 용머리라고 불리는 바위 인근에 자리한다. 숲 한가운데 싱크홀처럼 뚫린 거대한 구멍인데 특이한 점은 수십m 깊이의 구멍 안쪽이 터널처럼 막혀 있다는 점이다. 바닥은 해식동굴과 연결돼 파도가 칠 때마다 용굴을 통해 천둥 번개 같은 소리가 전달된다. 흑산도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꼭꼭 숨겨진 곳으로 용이 산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섬 일주는 섬을 한 바퀴 돌아 ‘흑산도 아가씨 동상’ 앞에서 끝이 난다. 총 3시간 코스이지만 중간에 철새전시관과 통일신라시대 사찰 터인 무심사지, 민간신앙을 엿볼 수 있는 흑산도 진리당, 조선시대 민권운동가 김이수의 묘, 한반도 지도바위, 자산문화도서관까지 들렀다 오려면 1박 2일 일정을 짜야 할 정도로 다양한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흑산도에는 하나뿐인 주유소부터 식당, 숙박 시설 등 모든 편의 시설이 흑산항 인근 예리와 진리에 모여 있어 출발 전에 식사·주유 등 모든 준비를 마치지 않으면 여행 중간에 일정을 포기하고 출발지로 돌아 나와야 한다.
/흑산도=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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