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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속 혐오 그린 호러···이번엔 희망 메시지 담았죠"

■ 두번째 장편 '대불호텔의 유령' 펴낸 소설가 강화길

한국전쟁 후 '귀신 들린 호텔' 배경

약자들끼리 혐오…파국 치닫지만

전작 달리 자기긍정으로 상처 극복

"소설 속 인물들 숨통 터주고 싶었죠"



“제가 고딕 호러를 시도하는 게 혐오의 폐해를 공포란 감정으로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하는데,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서스펜스 장르를 좋아해서 그런 강도가 높은 소설들을 쓰고 있어요. 제겐 공포물이 가장 매력적이거든요”

가부장제의 실상을 스릴러 기법으로 풀어낸 ‘음복’으로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았던 소설가 강화길이 두 번째 장편 ‘대불호텔의 유령’(문학동네 펴냄)을 냈다. 이번 작품 역시 강화길의 장기라 할 수 있는 고딕 호러 스타일로, 장르 소설의 외피를 쓰고 인간관계와 혐오의 문제를 이야기했던 전작들의 노선을 이어갔다.

공포물을 향한 강화길의 애정은 진심이다. 이번 신간의 출간일을 일부러 ‘13일의 금요일’에 맞춘 데서도 나타난다. 강화길은 책이 춡간 된 지난 13일 서울경제와 인터뷰에서 “당초 에 연재한 걸로만 책을 내려니 아쉬워서 중편 분량에서 더 늘렸다”고 말했다.

‘대불호텔의 유령’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 인천의 대불호텔에서 벌어진 일을 그린다. 고연주, 지영현, 뢰이한, 그리고 호텔에 투숙한 미국인 소설가 셜리 잭슨 네 사람이 ‘귀신 들린 집’이라고 불린 호텔에서 겪는 기이한 경험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또한 이 소설은 액자식 구조로, 강화길 본인을 연상케 하는 소설가 ‘나’가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화자로 등장한다. 이번 소설이 겨냥하는 주요 지점 역시 ‘혐오’다. 대불호텔을 운영하는 고연주는 ‘귀신 들린 여자’라서, 중식당에서 일하는 뢰이한은 화교라는 이유로 혐오를 받는다. 고연주의 일을 돕는 지영현은 좌우 대립 속에서 혐오의 대상이 돼 가족을 잃었다. 하지만 같은 약자인 주인공들은 그 안에서 일종의 층위를 형성하고, 그에 따라 혐오를 주고받으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강화길은 이번 소설에선 혐오의 구조와 피해자들의 정서를 드러내는 지점에서 서사를 멈추며 ‘열린 결말’을 지향했던 ‘다른 사람’, ‘화이트 호스’ 등 전작들과 달리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로까지 한 발 더 나아간다. 화자인 ‘나’가 모든 뒷이야기를 듣고 재구성한 스토리는 ‘원한과 악의가 뿜어내는 혐오로 받은 상처를 사랑으로 이겨내고 자기긍정에 도달한 남녀의 이야기’다. 강화길은 “소설 속 인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그런 꿈이 있었던 것 같다”고 운을 뗐다. 등단 후 10년 동안 항상 어두운 이야기만 썼고, 인물들을 너무 힘들게 해 왔던 것 같다는 그는 “이번엔 숨통을 트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소설은 고딕 호러 장르의 선구자로 불리는 셜리 잭슨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하다. 제목부터 잭슨의 대표작 ‘힐 하우스의 유령’의 오마주다. 비록 허구의 설정이지만 잭슨이 소설 속 인물로 등장하며, 각 장의 시작마다 잭슨의 작품에 등장하는 구절을 넣어뒀다. 강화길은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그가 쓴 여러 작품이 신인 시절 많은 위로가 됐다”며 “여러 면에서 문학적으로 특별한 선배를 만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장 좋아하는 고전 소설인 ‘장화홍련전’의 설정도 들어가 있다.

소설은 셜리 잭슨의 작품 속 ‘나는 내 배의 선장이다. 웃을 수 있다’는 구절로 끝난다. 작가 스스로 “이야기가 무조건 이 문장으로 끝나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이 구절은 각종 혐오를 이겨내고 내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강화길은 “평소 자기 자신과 작품 사이 거리를 두는 편”이라고 말하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등단 이후 겪었던 악의와 억압을 떨치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처럼 들렸다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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