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검색창 닫기

“시니어와 주니어의 협업”···‘삼고초려’로 명장 모셔 함께 수제양복 제작에 나서다

김주현바이각의 김주현 대표, 스물다섯 살에 양복점 열어

수제 맞춤 양복의 매력에 빠져 대학교 그만두고 바느질 공부 시작

배우 최민수 씨 드라마 의상 제작하며 이름 알려

현재는 후학 양성위해 아카데미도 운영, 해외 진출도 고려 중

김주현 대표(오른쪽)와 최민수 씨(왼쪽)/사진=김주현바이각


작은 경험이 삶 전체를 바꿔놓는 순간이 있다. 김주현 대표에겐 수제양복이 그런 경험이었다. 옷을 좋아하는 평범한 공대생이었던 그는 우연한 계기로 수제양복을 맞춰 입게 됐다. 처음 수제양복을 몸에 걸쳤을 때 몸을 감싸는 느낌이 다른 옷과 달랐다고 한다. 그렇게 김 대표는 수제양복에 빠져들었다.

단순히 빠져들기만 한 게 아니었다. 대학교를 그만두고 수제양복 제작을 배우기 위해 낮에는 서울 동대문 원단 시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서울패션전문학교에서 양장기능사를 취득하기 위해 공부했다. 이후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와 자신의 이름을 건 수제 맞춤 양복점을 열었다. 그게 바로 김주현바이각이다.

여기까지는 김주현바이각이 여느 수제 맞춤 양복점과 다른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기업 CEO뿐 아니라 옷을 잘 입는다는 연예인까지 찾아와 양복을 맞출 정도로 유명해진 이 테일러샵의 특별함은 7명의 장인에 있다. 김주현 대표는 양복점을 열고 나서 인천의 수제양복 장인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이철호 수제양복 명장을 알게 됐고, 이분에게 양복을 맞춰 입으며 매일 박카스를 들고 찾아갔다고 한다. 아직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청년이 찾아와 함께 양복점을 하자고 하니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지만, 반복되는 설득과 비전 제시에 이철호 명장과 김주현 대표는 함께 하게 된다. 이후 6명의 수제양복 명장이 더 합류해 현재는 7명의 수제양복 명장이 김주현바이각에서 양복을 제작 중이다. 이들의 평균 경력은 50년. 김주현바이각의 슈트는 현재와 정통의 만남, 주니어와 시니어의 협업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 만나서 반갑다.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린다.

“나는 김주현바이각테일러샵을 운영하고 있는 김주현이라고 한다.”

- 찾아보니 현재 운영 중인 김주현바이각테일러샵의 인기가 높더라. ‘김주현바이각’에 대한 소개도 해달라.

“인천의 경동은 서울의 명동, 소공동과 더불어 양복의 메카였다. 그런 인천에서 수제양복의 멋을 알리고자 수제맞춤양복점인 김주현바이각테일러샵을 열어 운영하고 있다. 양복점을 운영하면서 전문적인 분들과 함께하고 싶어 지금은 지역 수제양복 명장들과 함께 양복을 만든다.”

김주현 대표와 명장의 모습/사진=김주현바이각


- 꽤 어린 나이에 수제양복의 매력에 빠졌더라. 힙한 스타일이 아닌 수제양복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원래 옷을 좋아해 관심이 많았다. 우연히 서울 동대문에서 수제양복을 맞추게 됐는데, 그때 느낀 편안함을 잊을 수가 없었다. 양복이라고 하면 불편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몸에 꼭 맞는 느낌에 불편함이 없었다. 그 편안함을 잊지 못해 수제양복을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그럼 대학에서 의류 관련 공부를 한건가.

“아니다. 대학에선 기계공학과를 다녔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공부를 곧잘 해 괜찮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좋아하는 학과를 갔던 것은 아니었다. 학생 대부분이 그렇듯이 막연하게 공부했고, 이과니까 공과대학을 갔다. 사실 대학교에 갈 때도 모두가 대학에 가니까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중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됐고 주저 없이 학교를 그만뒀다.”

- 학교를 그만두고 뛰어들 만큼 수제양복시장에서 가능성을 본 건가.

“맞춤 양복에 대한 시장의 니즈는 분명히 있다고 봤다. 김주현바이각은 100% 맞춤제작이다. 수제양복점 중에서는 기성복을 수선하는 방식으로 맞춤제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아니다. 양복을 핸드메이드방식으로 제작하려면 봉제 기술이 너무 중요하다. 그래서 바느질 명장들을 모신 거다. 나는 앞으로 이 핸드메이드 슈트에 대한 가치가 엄청나게 올라 갈거라고 본다.”

- 수제양복 명장과 수제양복점을 운영한다는 아이디어가 너무 좋다.

“감사하다(웃음). 스물다섯 살에 처음 양복점을 열었을 땐 혼자 제작을 다 했다. 그러다 보니 원하는 만큼의 퀄리티가 안나오더라. 제품의 질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을 때 인천의 양복점 거리인 경동에 갔다. 거기에 아직도 오래된 맞춤양복점들이 있다. 그곳을 걷다 아이디어가 떠올라 명장을 찾아다녔다. 처음 함께 하게 된 이철호 명장의 경우 그분에게만 옷을 10벌 이상 맞췄다(웃음). 그러면서 천천히 다가갔고 함께 하고 싶다는 제안을 할 수 있었다.”

- 직접 제작해서 입어 본 명장의 옷은 어땠나.

“봉제는 정말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다만, 옷의 패턴이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올드한 경향이 있었다. 이 부분은 내가 충분히 잡아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 경력이 50년 이상인 명장들을 모시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맞다(웃음). 명장들의 특징은 한 곳에서 오래 하다 보니 서로 연결고리가 있더라. 그래서 한 분만 제대로 모시면 다른 분들도 섭외가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이철호 선생님을 모실 때 고생 많이 했다. 유비가 제갈량을 모시기 위해 ‘삼고초려’한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설득했다. 다행히 함께 하기로 결정해줘서 시작하게 됐고, 다른 분들은 일사천리로 섭외가 됐다.”

- 처음 창업했을 때 어려움은 없었나.

“2014년도에 지금의 이 자리(인천 제물포점)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엄청 잘될 거란 기대감에 문을 열었는데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웃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렸다고 생각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즈니스적 마인드가 생겼다. 아무리 좋은 옷을 만들어도 홍보가 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면에서 명장들과 함께 옷을 만드는 것도 홍보가 많이 됐다.”

- 과도기를 겪으면서 깨달은게 많은 듯한데.

“맞다. 우선 내가 왜 이일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확신이 섰다. 그러면서 손님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창업하고 고등학교나 대학교로 진로 강의를 나가고 있다. 그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 있다.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라고 강조한다.”

- 유명 연예인이 입는 옷으로 유명해졌는데, 그러기까지 어떤 노력을 했나.

“일단 좋은 옷을 만들려고 노력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입소문이 난듯하다. 김주현바이각테일러샵이 가파르게 성장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최민수 씨가 MBC드라마를 찍으면서 우리 옷을 입으면서다. 우리 옷이 입소문이 났다고 말한 이유는 최민수 씨 스타일리스트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덕분에 당시 1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최민수 씨 의상을 우리가 다 제작했다. 마지막 회때 입은 의상에는 바이각테일러샵 로고가 들어간 레터링슈트를 만들었다. 엔딩크레딧에 우리 로고가 올라가니까 그걸 보고 전국에서 연락이 왔다.”

테일러아카데미 수업 장면/사진=김주현바이각


- 7명의 명장이 일하는 방식이 궁금하다. 이분들이 협업하는 구조인가.

“아니다. 이분들의 역할은 나눠져 있다. 기본적으로 한 분이 한 옷을 만든다. 기성복처럼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오롯이 손바느질로 만든다. 그러다 보니 옷 한 벌이 만들어지는데 만 번 이상의 손바느질이 들어간다. 손바느질로 옷을 만들면 옷의 흐트러짐이 없어 좋다.”

- 명장이 만든 수제양복이라고 하면 ‘비싸겠다’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가.

“금액대는 60만원대부터 있다. 가장 많이 맞추는 옷은 100만원대다. 최근엔 중국 손님이 많은데 300만원대를 맞추면서도 옷이 저렴하다고 하더라. 옷을 대하는 문화가 다른 거 같다. 이태리 등 유럽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수제 맞춤 슈트 가격이 굉장히 저렴하다. 이런 부분에 경쟁력에 있다고 판단해 수출도 고려하고 있다.”

- 그럼 해외에도 진출하는 건가.

“그렇다. 관련 IT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준비가 되는대로 진출하려 한다.”

- 수제 맞춤 양복 기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분들을 위해 아카데미도 운영 중이라고.

“아카데미는 숙원사업이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맞춤 양복제작을 배우고 싶다는 연락이 많이 오더라. 나 역시 그렇게 시작해서 너무 힘들게 일을 배웠고, 또 배우고 싶어도 가르쳐주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실무까지 가르쳐주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돼 시작하게 됐다. 현재 1기가 운영 중이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현재 한국의류제조업이 굉장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그런 의류업에 도움이 되는 기업이 되고 싶다. 현재 운영 중인 아카데미를 활용해 교육콘텐츠를 꾸준히 준비할 거고, 옷 수선과 관련된 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정혜선 기자
doer0125@sedaily.com
< 저작권자 ⓒ 라이프점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메일보내기

팝업창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