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임원 인사 시즌이 돌아왔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는 해도 여전히 대기업 임원은 많은 직장인의 관심사이자 동경의 대상이다. 삼성전자 젊은 임원들의 승진 소식이 연일 실시간 포털 뉴스를 장식했고, 한 기업을 넘어 전 산업에 걸친 세대교체와 새로운 전략 방향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그러나 축하와 부러움으로 가득한 이 장면 뒤에는 어김없이 후임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준 전직 임원들이 있었고 오늘 승진한 그들도 언젠가는 퇴직을 현실로 받아들일 순간을 맞이한다.
임원 퇴직 지원 전략 …무엇으로 운영 성과를 측정할 것인가?
임원들의 승진 및 퇴직 의사결정에는 한 회사의 인사정책과 조직문화가 모두 담겨있다. 핵심인력에 대한 최고경영진의 경영철학이자 인사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일이기도 하기에 구성원 전체의 동기 유발과 조직 몰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많은 구성원이 떠나는 상사의 뒷모습에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게 될 것이다.
훌륭한 인재의 채용만큼이나 최고 인력의 마지막 모습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이 퇴직자, 특히 경영진의 퇴직 관리는 임금, 차량 및 사무 공간 등 추가적인 물질적 보상을 우선으로 고려하거나, 그마저도 아니면 ‘높은 연봉과 퇴직금을 받은 성공한 직장인으로서 감내해야 할 개인적인 일’ 정도로 여겨왔다. 다행히 최근에는 퇴직 임원을 위한 지원 방향성을 고민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 회사에 적합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기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기업들이 많다.
재취업률 …인사 담당자의 발목을 쥐는 통제 불가능한 관리지표
“우리 회사 퇴직 임원들의 재취업률을 보장해 줄 수 있습니까?”
여전히 많은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전직지원 서비스 업체 선정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표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지만, 시대가 변했다. 어떤 서비스 업체도 퇴직자의 재취업률을 ‘보장’해 줄 수 없고 아무리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성공적인 경력을 이루어 온 후보자라고 해도 고용 구조가 변한 상황에서 상황이 녹록지 않다. 게다가 경영진의 경우에는 퇴직 후 재취업을 유일한 목표로 생각하는 퇴직자 비율도 높지 않다.
“그렇다면 이력서 작성에 인터뷰 기회라도……”
인사담당자 본인의 KPI라고 하니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퇴직 후 재취업은 서치펌이나 전직지원서비스 업체의 역량보다 퇴직 당사자의 의지와 경쟁력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 경영진 포지션은 정보의 접근성이 제한적이므로 훌륭한 역량을 가진 서비스 업체들의 지원이 필요할 수 있지만, 결국 재취업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퇴직 당사자이다. 본 칼럼 3호에서도 설명했듯 퇴직 후 재취업률 10%, 임원의 경우 더 낮아 퇴임 후 재취업을 목표로 하더라도 다양한 가능성을 함께 구상해야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퇴직자 스스로 다양한 대안들을 찾도록 지원하는 것이 퇴직 지원 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성이다. 예산의 효율적 활용 측면에서도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은 재취업률에 매달리기보다 퇴직 임원 지원 정책의 거시적 변화를 함께 모색할 업체를 찾아야 한다. 인사담당자가 원하는 ‘인터뷰 기회 한번’은 퇴직 당사자들이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의 경쟁력을 끌어낼 지속적인 과정을 거쳐야만 재취업으로 현실화된다.
어떤 핵심성과지표를 적용할 것인가? … A그룹의 사례
필자가 속한 회사의 기업 고객을 예시로 적용 가능한 KPI들을 대안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조직에서 운영해야 할 핵심성과지표, 즉 KPI의 조건은 다음의 다섯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 측정할 수 있고 조직 내에서 통제 가능해야 한다. ▲외부적 시장 환경 및 타사의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지표의 정의가 명확하고, ▲과정이 모니터링돼야 하며, ▲신속한 피드백을 통해 개선의 포인트가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 달성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가 있다. (출처: KPI의 조건 <전략 BSC 성과 혁신>, 성은숙 P. 242)
퇴직자가 원하는 방향을 먼저 살펴라.
모든 KPI는 전략의 실행 여부를 점검할 수 있어야 하며 퇴직자 지원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재취업에 집중된 퇴직 인사 지원 정책은 퇴직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방향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또한, 인사담당자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어느 날 인사담당 임원이 ‘이번에 퇴임한 임원들 몇 분이나 재취업에 성공하셨나’라고 물으며 책임을 추궁한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 모든 결과를 전직지원서비스 업체에게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가지 예로 A사에서 퇴임한 약 15인의 최고경영진들과 첫 면담 시 재취업 희망 의사를 파악하니 인사담당자로부터 전해 들었던 수치와 크게 차이가 있었다. 모든 퇴직자가 재취업을 원한다고 전달받았으나, 실제로는 약 30%는 재취업을 원하지만, 약 30%는 ‘더 이상 현직에서 겪었던 극도의 긴장감과 경쟁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40%는 ‘다른 일을 하면서 좋은 옵션이 생겼을 경우 판단해 보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목표가 모호하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따라서 퇴직 이후의 목표 가치를 개인별로 질문하는 것에서 퇴직 지원 정책의 방향이 세워져야 한다. 모두가 재취업을 원할 것이라는 잘못된 추측 대신, 환경과 고용구조의 변화를 인식하고 보다 개인적인 솔루션을 함께 구상해야 할 때다.
퇴임한 대기업 임원을 자회사나 계열사로 모셔가는 시대는 끝났다. 누구보다 퇴직 당사자 스스로 이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커리어 방향과 삶에 대한 목표 가치를 세워가야 한다. 인사담당자들도 전직지원 과정에서 지난 20년간 변함없는 재취업에 대한 질문 대신, ‘어떤 목표와 계획을 구상하는지, 이를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선행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에 따라 지원의 방향을 구체화하고 단계별 액션 플랜을 실행한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훨씬 개선된 참여율과 만족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화담,하다의 리서치&스터디에서 분석한 퇴직자의 성향 분석 보고에 따르면, 퇴직 후 적응 과정과 새로운 목표 방향은 퇴직 당시의 직급, 연령, 임원 근속 기간, 개인의 성향, 심리 상태, 이직 경험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퇴직 임원들의 특성에 기반하여 다양한 목표를 스스로 달성해 나갈 수 있는 지원 정책을 구상하기 바란다.
무엇이 진정한 어둠인가?
오랫동안 일상이라 믿고 의지했던 커다란 문이 닫혔다. 그 문 앞에 서 있는 퇴직자들의 심정은 누구도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최선의 소임을 다하고 퇴직한 그 순간이 어둠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이 아직은 떠오르지 않는 상태, 불안과 공포로 가득한 내면의 상태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느껴질 것이다.
다음 목표를 위한 용기 있는 한 발은 퇴직자 자신의 몫이겠으나, 회사도 이 여정을 살피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인사담당자 역시 퇴직자의 입장에 서서 퇴직 지원 정책을 구상할 수 있는 모멘텀을 찾길 바란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다르게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큰 변화가 시작된다.
- 성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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