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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사람이 중심 되는 건축 고민···고층아파트 대신 공유마을 만들죠"

■김태집 간삼건축 대표-은퇴자 위한 새 주거플랫폼 설계

주거·휴식·생산·소비 연계된 공동주택

사물인터넷 활용, 최적화된 인프라 구축

400~500가구 모인 코빌리지 내년 착공

건축도 '사회적 책임' 다할때 존중 받아

삶을 풍요롭게 만들자는 마음으로 설계

택지·정비사업지 공동주택은 수주 안해

[CEO&스토리]서울 중구 간삼건축 사옥에서 김태집 간삼건축 대표이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대표는 회사보다 본인이 부각되는 인터뷰는 피하고 싶다며 나이나 이력과 같은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권욱 기자


발코니가 ‘확장’의 대상이 아닌 공동주택(구기동 공동주택), 프런트 데스크가 1층이 아닌 2층에 있는 5성급 호텔(몬드리안서울 이태원), 비좁은 6인 병실 대신 전체 병상의 93%를 4인실로 조성한 병원(은평성모병원). 모두 설계라는 행위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건축물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건축물들이 가져온 변화가 사소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완고하게 굳어진 관습을 깨뜨리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특히 돈의 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부동산 개발에 있어 새로운 시도는 모험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모험의 시작과 끝을 이끈 김태집(사진) 간삼건축 대표이사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그래서 의외였다. 기자가 취재 현장에서 만나왔던 건축가는 자신이 바라는 극단의 목표에 따라 ‘예술가’ 또는 ‘디벨로퍼’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김 대표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양쪽의 입장 모두 이해하지만 자신만의 길을 걷는 ‘협상가’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리고 그 협상의 최우선에는 건축의 사회적 책임이 놓여 있었다.

“건축과 건축가가 우리나라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점이 항상 아쉽습니다. 존중을 받으려면 사회적으로 그만한 책임과 역할·의무를 다해야 하죠. 특히 부유한 사람이 아닌 대중과 시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렇듯 ‘건축의 책임’을 언급한 김 대표는 책상과 책장, 6인용 테이블이 빽빽하게 배치돼 다소 좁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나지막한 공동주택들을 그린 스케치 한 장을 보여줬다. 거기에는 간삼건축이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안흥리 일대를 무대로 조성하고자 하는 ‘코빌리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담겨 있었다. “도시를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마을을 구상했습니다. 도시와 시골이 지닌 여러 문제를 건축이 해결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죠.” 이 시대 중장년이라면 한 번쯤 마음속에 품는 ‘귀성’에 대한 갈망을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은 간삼건축은 어떻게 해석했을지 궁금해졌다.

스케치 속의 코빌리지는 통상 타운하우스라고 불리는 주택 단지와는 사뭇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주민들이 일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점이다. 주거와 휴식은 물론 생산과 소비가 가능했던 과거의 마을처럼 코빌리지에 거주하는 이들은 생산자이자 동시에 소비자가 될 수 있다. 설계를 통해 공유에 최적화된 인프라를 구축하고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면 구현하지 못할 공유 생활은 없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은퇴한 이들은 도시를 떠나고 싶으면서도 가서 할 일이 없다는 점에 공포를 느낍니다. 소득이 없는 노년에 대한 불안,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코빌리지 내에서 일거리를 공유하는 것이지요. 마을 밖 병원으로 가려는 이웃을 위해 운전을 해주고 그 대가를 받는 사람, 제빵사인 사람이 빵을 만들어 판매하는 식으로 공유 생활을 영위하는 사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간삼건축과 홈즈컴퍼니가 합작회사를 설립해 추진하고 있는 코빌리지 프로젝트는 현재 다소 위축된 부동산 경기를 고려해 연내 상품 기획과 설계 등을 충실히 거쳐 2024년 착공할 예정이다. 이곳은 4층 높이의 공동주택을 중심으로 마을의 주거 영역을 구성하고 지상층은 온실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시설과 근린생활시설, 최상층은 다양한 지붕 형태를 조합해 획일적이지 않은 경관을 선보이는 설계를 구상하고 있다. 400~500가구가 모여 사는 하나의 마을을 구축하는 코빌리지 사업은 시행부터 시공, 주택 매각과 임대, 공유 플랫폼 구축과 운영까지 간삼건축의 생각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일으키지 않고 코빌리지를 만들려다 보니 다소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간삼건축이 다른 회사와 어떻게 다른 회사인지 차별점을 보여주기 위해서 추진하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통상 건축설계 사무소는 건축물을 짓고 나면 해야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업계 분위기와는 달리 고객에 장기 AS를 제공하고 있는 것도 간삼건축의 남다른 점이다. 간삼건축의 설계를 거쳐 2021년 준공한 서울 강남역의 모 빌딩이 지난해 여름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었을 때 대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 대표는 “차수막을 설계했지만 현장에서 대처가 빠르게 되지 않아 해당 빌딩 일부 층이 물에 잠기는 피해가 있었다”며 “복구를 위해 감리 인력 수명을 넉 달 정도 파견했는데 그 비용을 따로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설계 도서를 납품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 완성된 건축물을 제대로 넘기는 것이 ‘우리 일’의 끝이라는 그의 확고한 철학 때문이었다.

연매출 기준 국내 상위 10위권 건축설계 사무소 가운데 유일하게 택지·정비사업지에 들어서는 대규모 공동주택 설계를 수주하지 않는 점도 돈의 논리 대신 건축의 책임을 중시한 데 따른 것이다. 한때 택지 개발 사업 수주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공기관 출신 고위 임직원을 모셔와 ‘전관’으로 활용하는 일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을 때도 간삼건축은 단 한 명의 전관도 채용하지 않았다. 그는 “화려하게 개발해 주택이나 상가를 분양하고 나서 훅 털어버리는 이른바 디벨로퍼의 논리로 건축을 대하고 싶지는 않다”며 “대신 간삼건축만이 제공할 수 있는 실력과 결과물로 고객사를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간삼건축을 찾는 고객들은 굵직한 기업이나 의료재단·호텔 등 법인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김 대표가 간삼건축 구성원들과 만들고자 하는 ‘실력’과 ‘남다른 결과물’은 무엇일까. ‘콘텐츠가 뒷받침되는 디자인, 사람을 중심으로 한 설계’가 그 답으로 제시됐다. 그는 앉았을 때 편안함을 주지 못하는 대중교통 좌석을 예로 들며 “몸이 불편한 좌석은 결국 디자인이 섬세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사회가 비록 완벽하고 철두철미한 수준의 디자인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간삼건축은 그것을 제공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간삼건축은 이 같은 사명을 바탕으로 올해도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나간다. 몬드리안서울 이태원과 라한호텔 전주, 라한셀렉트 경주 등을 통해 입증한 호텔 리모델링 실력을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대전 유성호텔을 무대로 선보일 예정이다. 서울에서는 용산역 앞 ‘용사의집’을 호텔 나인트리프리미어로 새롭게 선보이는 일 등을 맡았다. 지방으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그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먹거리와 특산품 찾기에 공을 들인다는 김 대표는 “지방 곳곳에 묵을 수 있고 살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 행위는 우리가 사는 이곳을 깊이 있게 만드는 일”이라며 “이미 좋은 먹거리는 많이 있기에 삶의 장소를 풍족하게 만들 수 있도록 마중물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설계에 임하려 한다”고 말했다.

[CEO&스토리] 서울 중구 간삼건축 사옥 내 집무실에서 김태집 간삼건축 대표이사가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욱 기자

[CEO&스토리] 서울 중구 간삼건축 사옥 내 집무실에서 김태집 간삼건축 대표이사가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그의 뒤로는 간삼건축이 올해 5월 문을 열 예정인 런던사무소 평면도가 붙여져 있다. 권욱 기자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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