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검색창 닫기

'대(大)전자책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인생2막 디지털 유목민으로 살아가기]<11>

■정남진 시니어 소셜미디어 마케터

‘보통 사람의 책 쓰기’ 시대를 연 전자책

출판 공식의 변화…시니어에게는 기회

특별한 노하우·경험이면 누구나 작가

/최정문 디자이너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됐다. “염영숙 여사가 가방 안에 파우치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기차는 평택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지난해 여름 베스트셀러 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읽었다. 그때의 독서 경험이 기억에 남는 것은 소설책 한 권을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으로 완독했기 때문이다.

퇴근 무렵 지하철 안에서 전자책 앱을 켰다. 종이책의 깨알 같은 폰트가 부담스러워지는 나이라서 폰트 사이즈를 맘껏 키울 수 있는 전자책이 참 편하고 좋았다.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전개됐다. 염 여사가 노숙인 ‘독고’씨를 만나는 장면부터 어쩐지 묘한 공감이 느껴져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걸 어쩌나. 이 많은 승객 앞에서 키득키득 웃을 수도 없고. 일단 스마트폰을 끄고 마음을 추슬렀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다음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다. 다시 스마트폰을 켜고 앱을 열었다.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가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니, ‘이건 분명 독서혁명이야’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을 붉혔다. 웃다 울다, 웃다 울다, 소설 한 권을 읽으면서 이렇게 짜릿한 경험을 해보긴 참 오랜만이다.

전자책 시대가 온 것 같다. 요즘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전자책을 읽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시장 규모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출판산업문화진흥원의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전자책 시장 규모는 4620억 원으로 5년 새 3.7배가 성장했고, 올해에는 그 규모가 1조 원을 돌파할 거라는 예상이다.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는 인쇄 출판시장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세다.

보통 사람들의 책 쓰기 시대가 열린다


하지만 전자책 트렌드가 예사롭지 않은 건 이 흐름이 ‘보통 사람들의 책 쓰기’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종이책 시대에는 유명인이나 전문가들이 주로 책을 썼다. 출판사의 문턱을 넘는 진입장벽도 무척이나 높았다. 그런데 전자책 시대가 오면서 출판의 공식이 바뀌고 있다. 책을 내고 싶으면 굳이 출판사를 통하지 않아도 된다. 디지털 기술을 조금 익히면 자신이 직접 만들어도 손색이 없다. 종이 대신 디지털 파일(PDF, EPUB 등)로 제작하면 된다. 책의 주제나 내용도 지극히 실용적인 분야로 ‘낮아’졌다. 최근 전자책 유통 플랫폼 중 하나인 크몽에 올라 온 목록 몇 개를 살펴보니 이런 제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22살에 과일 위탁판매로 1000만 원 달성한 노하우’, ‘떨지 않고 PPT 발표 술술하는 법’, ‘아토피 직접 겪은 완치자가 쓴 전자책’, ‘이혼 상담위원이 알려주는 건강하게 이혼하는 법’, ‘한 시간 만에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원리’, ‘30대를 통과하며 경험하고 느낀 이야기’, ‘3년차 치매가족의 생생한 이야기’, ‘다수의 면접 경험으로 얻은 합격 노하우’, ‘직접 경험한 간병 이야기’,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경제용어 풀이’ 등 실용 지식을 담은 전자책들이 끝없이 등장한다. 이쯤 되면 시쳇말로 ‘아무나’ 책을 내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의 유통은 더 놀랍게 변하고 있다. 종이책 판매는 서점이라는 전통적인 유통공간과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등장한 인터넷 서점, 이 두 곳 외에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거기에 비하면 전자책은 매우 단촐하고 민첩한 지식소매상에 가깝다. 디지털 파일로 직접 전자책을 만들어 자신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계정이나 블로그 같은 1인 미디어에 올려놓고 팔면 된다. 좀더 나아가면 앞서 거론했던 크몽같은 전자책 전문 판매 플랫폼이나 기존 인터넷서점의 전자책 코너 등에 입점해 판매해도 된다. 유통의 장벽도, 간섭도, 규제도 없다. 오로지 디지털 공간에서의 평판과 인정받은 가치로 가격이 형성되고 거래가 일어난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단돈 1000원에서부터 몇십만원대까지, 내가 가진 실용지식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가격도 재량껏 붙이면 된다. 구매하는 독자가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아무리 비싼 전자책도 팔리는 것이다. 분량도 별다른 기준이 없다. 달랑 몇페이지 짜리이거나 몇십페이지 짜리여도 거기에 특별한 노하우나 비법, 경험이 담겨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전자책, 시니어에게 새로운 기회


전자책은 특별히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시니어들에게 새로운 기회다. 시니어는 삶의 경험과 지혜, 전문지식, 다양한 실용지식까지 매장량이 풍부한 금광같은 존재들이다. 그런 경험과 지혜와 지식들을 한꾸러미씩 캐내 나만의 전자책으로 차근차근 엮어 낸다면 그것이 필요한 젊은 세대에겐 큰 기여가 될 것이고, 시니어로서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전자책은 한번 내놓으면 절판이라는 개념도 없다. 그래서 세월과 관계없이 인터넷이 작동하는 한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전자책으로 월세받기 프로젝트’라는 전자책을 쓴 김은주 저자는 “전자책의 등장으로 진정한 1인출판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노트북 하나 들고 현지에서 책을 출간하는 여행작가가 등장하고, 아이와 가족을 돌보면서 집에서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경력단절 여성들의 성공사례도 많다”고 말한다.

대(大)전자책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지난 2021년 5월 텍사스대 앤서니 클로츠 교수는 미국인들의 집단적인 퇴직 현상을 ‘대퇴사시대(The Great Resignation)’라는 신조어로 표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MZ세대의 집단적인 퇴사 트렌드를 놓고 이 용어를 쓰기도 했다.

디지털 혁명이 심화하면서 직업의 세계는 더욱 요동치고 있다. 디지털 지식산업도 크게 꿈틀거리고 있다. 트렌드는 소리없이 다가와 어느새 대세를 형성하게 된다. 특히, 전자책이 거대한 트렌드를 형성하게 될 ‘대(大)전자책시대’ 또한 멀지 않아 보인다.

인생에 늦은 시기란 없는 법. 전자책이라면 시니어에게도 늦은 시기란 없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빠른 시점이다. 주목해 보자.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시니어들에게 ‘대(大)전자책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정남진 기자
doer0125@sedaily.com
< 저작권자 ⓒ 라이프점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메일보내기

팝업창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