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피라미드가 거꾸로 뒤집히면서 청장년이 고령의 부모를 부양하던 시대가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는 시니어가 다른 시니어를 돕고 보살핀다. 2005년부터 정책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노노케어’ 사업이 바로 대표적이다.
지난달 11일 서울 중구 신당5동에 거주하는 손종환 씨(90세·1935년생)를 만났다. 손 씨는 10년째 중구 치매안심센터에서 공익형 어르신 일자리 사업 ‘노노케어’에 참여 중이다. 구순에도 워낙 건강 체질인 데다 나가서 움직여야 직성이 풀린다는 손 씨는 신당동팀 노노케어 참가자들을 이끄는 팀장이기도 하다. 방문일 아침마다 그는 신당동 광희문교회로 집합한 동료들과 간단히 체조부터 시작한다. 혹시라도 활동 중에 다치는 경우가 생길까봐서다. 체조를 마치고 나면 2인 1조로 나눠 이웃의 시니어들을 찾아 방문한다.
이들의 주된 업무는 대화다. 수혜자를 만나면 가장 먼저 건강부터 살피며 말을 건넨다. 약은 잘 복용 중인지, 몸에는 이상이 없는지, 간밤에 별 일은 없었는지 근황만 물어도 30분이 훌쩍 지난다. 단순한 잡담이 아니다. 수혜자들의 건강을 확인하는 절차이자 치매를 예방하고 외로움을 털어내는 과정이다. 다행히 한국 전쟁 당시의 이야기, 정신없이 살아온 지난날의 기억,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한 고민까지 화제가 끊일 틈이 없다. “다들 반가워해요, 외로우니까.” 손 씨가 만나는 이웃들 중에는 경증 치매 노인, 혹은 독거노인이 많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수혜자의 기억력이 저하됐다는 사실을 알아채기도 한다. 곧바로 센터에 보고해 기억력 검진을 의뢰한다. 물론 말벗이 되어주는 일 외에 조호 물품과 반찬 전달, 치매 예방을 위한 그림 그리기 활동 등도 중요한 업무다. 손 씨는 “이웃이 건강해지면 보람을 느끼고 최고로 기분이 좋다"고 전했다.
그러나 매일 즐거울 수는 없다. "반대로 아프다고 하면 집에 가면서도 근심 걱정이 떠나질 않아. 심하면 119 부르고 병원에 모시고 갈 때도 있는데, 그럴 때 제일 마음이 아파요. 한 번은 홀로 지내는 할머니를 맡은 적이 있어요. 방문해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기척이 없는 거야. 돌아가신 줄 알고 정신도 못 차리고 보건소, 동사무소, 경찰서에 다 연락했어요. 경찰이 열쇠집에 연락해 문을 따고 들어가니까, 누워서 기절해 계셨어요. 보건소에서 와서 보니까 못 드셔서 쓰러졌더라고. 혼자 살면 뭐라도 시켜 먹어야 하는데, (치매가 있다 보니까) 은행을 못 믿어서 돈 보따리는 허리춤에 그대로 찬 채로. 그래서 얼른 죽 사서 드리니까 금방 다 먹었어요. 정말 간신히 살아났어요.”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18%(초고령사회 20%)에 육박했다. 유소년(0~14세) 인구 100명에 대한 고령(65세 이상)인구의 비율인 노령화지수는 156.1이었다. 10여 년 전에는 69.6에 불과했다. 특히 전 연령층 중 고령층만이 인구가 증가했는데, 이 추세라면 생산연령인구(15~64세) 100명당 고령인구 비율을 뜻하는 ‘노년부양비’는 계속 상승해 2070년께에는 전 세계 최고치인 100.6명(22년 24.6명·56위)에 달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노인 부양에 대한 사회적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노노케어’는 훌륭한 대안으로 꼽힌다. 정부가 지원하는 노노케어는 노인 일자리 사업(공익형·사회서비스형·민간형)의 일환으로 건강한 노인(만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은 일자리를, 독거노인은 돌봄 서비스를 제공받는 선순환 사업이다. 월 30시간(일 3시간·10회)가량 활동이 진행되며 중구 치매안심센터의 경우 지난해 신당동·약수동 일대 130명의 어르신이 참가했다. 매년 11·12월경 전국 읍·면·동 사무소, 복지관, 대한노인회, 시니어클럽, 노인복지문화센터 등에서 모집한다.
참가자와 수혜자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중구 치매안심센터의 만족도 조사 결과 ‘매우 만족’이 78%(101명)로 나타났다. 센터 관계자는 “활동비도 중요하지만 노노케어를 위해 외출을 하고 다른 이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손 씨도 “몸이 건강하면 계속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데다 이웃들을 따뜻하게 돌봐주는 시간도 참 좋다”며 앞으로도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
올해 중구 치매안심센터에는 지난해보다 10명 늘어난 140명의 시니어가 합류했다. 손 씨는 “노인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건 같은 노인들”이라며 “나도 이웃을 돌봐주고, 그 속에서 이웃도 나를 돌보며 온정을 나눌 수 있어 참 좋은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센터 측은 “서로 대화를 나누는 노노케어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얻고 치매 예방 효과도 볼 수 있다”며 “더 많은 어르신이 이 사업을 알고 참여하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신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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