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대다수는 ‘인생 1막’을 보낼 때 하나의 온전한 일자리에서 비교적 장기간 근무했다. 그들은 ‘인생 2막’에서도 그런 온전한 일자리를 바라고 있다. 이해는 되지만 고용시장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산업화의 역군으로 일하면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든 베이비부머의 집단퇴직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도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다. 그럼에도 이전 세대보다 건강해서 더 오랜 삶을 살게 될 중장년의 입장에서 손을 놓고 놀 수는 없는 입장이다.
방법은 없을까. 주식시장에서 그 힌트를 찾아보려 한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개념이 있다. 자신이 보유한 자산을 특정 종목에만 집중 투자하지 말고, 여러 곳으로 나누어 담아서 위험을 분산하는 투자 개념이다.
이 개념을 일의 세계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이전과 달리 온전한 일자리를 찾기 힘든 연령대거나 경쟁이 치열한 고용시장 상황이라면 말이다. 분산투자의 개념을 일의 세계에 전환한 ‘포트폴리오 커리어(portfolio career)’라는 용어부터 한 번 살펴보자.
포트폴리오 커리어
포트폴리오 커리어란 온전한 하나의 일자리가 아닌 조각 일거리 여러 개를 가지는 개념이다. 이는 인생 1막을 마치고, 하나의 온전함보다 여러 개의 다양함을 추구하는 중장년에게는 적합한 방법론이 될 수 있다. 주로 단기간에 걸친 몇 가지의 일거리에서 일해보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작가로 일하면서 사진사를 병행하거나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스타일리스트 일을 동시에 해나가는 식이다. 다르게 해석해 보면 온전한 하나의 일자리에서 온전한 수입을 얻기 어려울 때에 몇 가지의 일거리에서 조금씩 수입을 만들어 나가면서 온전함을 지향하는 형태다.
필자는 얼마 전 시간제 공공 일자리 면접관으로 참여했다. 지원자 중 일부는 인생 1막에서 두드러지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경우도 있었고, 특정 기술을 가지고 자유롭게 일하면서 지원한 경우도 있었다. 그들에게 “이전의 경력이 화려하고, 현재 종사하는 일이 있는데, 왜 이 시간제 일거리에 지원하셨나요?”라고 질문했다. 그들의 답변 중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시간이 좋아서”라는 답변이었다. 그렇다! 남는 시간에 다른 일을 병행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손자나 손녀를 돌보거나 남는 시간에 다른 일거리에 종사하면서 수입도 높이고 싶은 욕구가 숨어있었다. 바로 그들의 이야기 속에 ‘포트폴리오 커리어’ 개념이 숨어 있다. 이러한 생각은 마치 ‘여러 개의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허공에 띄우면서 저글링(juggling)’ 하는 것이다. 이는 미래 중장년이 지향해야 할 일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
포트폴리오 커리어의 장점은 단연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다양성 유지와 스킬의 활용이 가능하며, 삶에 대한 자율권을 주도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단점도 있다. 자신이 손수 일을 줄 수 있는 다양한 고용주를 찾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직접 일을 만들어야만 한다. 시간과 노력의 투입에 대한 주도적 관리가 어렵고 일반적인 온전한 일자리에 몸담았을 때 얻을 수 있는 각종 복지혜택이 줄어드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러한 평가들은 누군가에게는 장점보다 단점일 수, 단점보다 장점일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포트폴리오 커리어 구상 전략
포트폴리오 커리어를 구상하는 전략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전과 다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분화(쪼개기) 혹은 융합(뭉치기)’이다. 이는 기존의 일을 쪼개거나, 뭉쳐보는 방법이다. 대한민국에는 1만 6000여 개의 직업이 존재한다. 미국의 경우에는 3만여 개 이상의 직업이 있는데 이는 우리보다 전문화가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즉, 분화 혹은 융합을 통한 재창조가 많은 것이다. 이전 삶에서 종사했던 일자리에서 분화시키거나, 기존에 있는 일자리들을 융합해서 새로이 만들어 볼 일자리는 없는지 살펴보자.
둘째, 신직업 안착이다. 이는 새로이 생겨나는 직업을 찾아보는 것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 등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새로이 생겨나는 일자리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우선 새로이 생겨나는 일의 경우에는 초기 진입이 다소 용이하다는 점도 있다. 기술적인 문제를 생각할 수 있으나 복잡한 일의 진행 과정에서 높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이나 자동화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단순한 일에 진입할 수 있다.
셋째, 생애 전용성 소질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전용성 소질이란 ‘이전의 일에서 즐겨 사용하던 혹은 숙달한 소질을 이후의 일에 그대로 옮겨서 사용할 수 있는 소질’이다. 중장년은 삶의 각종 영역, 즉 일·관계·재무·건강·여가 등에서 자신이 전문성을 축적해 둔 것이나 혹은 조금만 개발하면 사용할 수 있는 소질이 없는지 살펴보면 된다. 바로 그 소질을 일거리로 발전시켜보자. 예를 들어, 평소 낚시가 취미인 사람은 낚시 동호회 구성, 낚시 강의, 낚시 전문점 창업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미래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전문성을 가지고 몇 가지의 단기간 일자리에서 일하는 시대다. 그 시대는 이미 우리 앞에 바짝 다가와 있다. 이는 유연성과 다양성을 필요로 하고, 자유로움도 느낄 수 있는 반면 하는 일의 조직화 및 위기감수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연한 생각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됐다면 먼저 저질러보자.
- 표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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