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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경로당 돌며 색소폰 불던 이 남자···은퇴 후 캠핑카 준비하는 까닭은

2012년, 악기 들고 시작한 봉사…매달 찾다 보니 100회 훌쩍 넘겨

은퇴 후 부부가 전국 돌며 봉사 위해 자격증 취득, 유튜브 채널 개설

“어르신들 웃음 보면 기뻐…봉사는 찾아가는 것. 체력 될 때 봉사할래”


3주 전, ‘김호겸의 유랑극단’이라는 이름이 붙은 유튜브 채널에 한 은퇴 남성의 브이로그(일상을 담은 영상)가 올라왔다. 14분짜리 영상에는 앞으로 캠핑카를 타고, 전국의 경로당을 다니며 색소폰을 연주하려 한다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 그가 봉사 계획을 영상을 통해 공개하고, 전국으로 음악 봉사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그리는 인생 2막을 듣기 위해 채널의 주인공 김호겸(60)씨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라이프점프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호겸씨. 정예지 기자


김씨는 1990년대 후반 벤처기업 골드뱅크에 입사했다. 1999년 골드뱅크가 프로농구단 나산플라망스를 인수하며, 그는 농구단 사무국장 업무를 맡게 된다. 이후 여수 코리아텐더프로 농구단 사무국장, KT&G 농구단에서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이후 한국인삼공사 대외협력실장을 지내다 지난해 3월 퇴직했다.


2012년 교회 모임서 떠난 봉사가 지금까지 이어져


“회사가 아닌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고 싶어요. 인생 2막에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을 하고 싶어 봉사를 택했습니다.”

음악 봉사가 그에게 아주 생소한 일은 아니다. 그의 첫 음악 봉사는 2012년으로 거슬러 간다. 그가 속한 교회 모임에서 다 함께 봉사를 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김씨와 첫째 아들은 색소폰, 둘째 아들은 트럼펫을 다룰 줄 알아 ‘어쩌다 보니’ 그의 가족만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는 한 요양원을 시작으로 한 달에 한 번 봉사를 가게 됐다. 아들들의 30분짜리 공연이 끝나면 그가 1시간 30분간 색소폰을 부는 식이다. 아들들이 학업으로 집을 떠나고도 김씨는 그 일을 지속했다. 그 세월이 12년, 어느덧 총 106번의 봉사를 했다.

김호겸의 두 자녀가 요양원에서 음악 봉사를 하는 모습. 김호겸씨 제공


“어느 날 어떤 할머니께서 아이들 손에 1만 원을 쥐여주셨어요. 꼬깃꼬깃 접힌 돈을 보니 그 할머니께는 큰돈이었을 것 같아요. 언젠가는 항상 보이던 어르신이 안 보이실 때가 있어요. 다른 분께 여쭤보면 돌아가셨거나, 건강이 안 좋아져 병원으로 가신 거더라고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한 번이라도 더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요양원도 그의 방문을 반긴다. 하루 종일 하릴없이 누워만 지내는 어르신들이 그가 오는 날이면 방을 나와 작은 신체활동이라도 하고, 노래로 추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는다. 봉사로 인한 변화는 그의 가족에게도 찾아왔다. 봉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초등학생이었던 둘째 아들은 그 당시만 해도 “왜 소중한 주말에 봉사를 가야 하냐”며 반항이 거셌다. 6개월간은 냉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로는 군말 없이 따라왔지만 봉사 자체를 그다지 즐기지는 않던 아들이었다.

“그 녀석이 지금 일본에 있어요. 지진이 났을 때 자비를 들여 피해 지역 부근에 숙소를 잡고, 사흘동안 복구를 돕더라고요. 대학교 4학년인데 아르바이트 두 개와 인턴을 하면서도 꾸준히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도 다니는 걸 보면 봉사는 습관처럼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이 바뀐 것 같아요.”


전국 소외지역 돌며 봉사·전도하려 자격증 취득


그는 은퇴하기 4, 5년 전 음악 봉사를 확대해보기로 결심했다. 전국을 다니며 전도하고 싶었던 신앙 깊은 아내와 음악 봉사를 확대해 보고 싶었던 그의 바람이 합쳐져 ‘유랑극단’이 탄생했다. 이제까지는 연이 닿은 한 요양원에 몇 년간 꾸준히 가는 식이지만 은퇴 후 3년 정도는 캠핑카를 타고 아내와 함께 매달 전국의 소외지역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음악을 들려드리려는 생각이다. 3년이 지나면 부부의 체력과 재정, 어르신들의 만족도를 평가해 봉사를 지속할 지 결정할 작정이다.

부부는 어르신들에게 특식도 제공하고, 머리도 손질도 무료로 해드리기 위해 틈틈이 자격증도 취득했다. 김씨는 회사를 다니며 시간을 내 청소년지도자 자격증, 대형면허, 견인면허를 땄다. 그의 아내는 실버인지놀이지도사 1급을 취득하고, 동화구연 아카데미 과정도 밟았다.

“대형면허는 한 번 만에 땄는데, 견인면허는 네 번 만에 합격했어요. 운동능력, 판단력 등이 필요하더라고요.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취득하는 걸 추천해요. 유튜브 편집이나 요리는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수업을 들었어요. 기술교육원과 구청 등 지자체에서 양질의 교육을 무료로 많이 제공하니 꼭 찾아보길 바랍니다.”

지난해 3월 은퇴한 뒤로는 그해 9월부터 서울 강동구에 있는 서울시동부기술교육원 관광조리과에서 5개월간 요리를 배웠다. 지난해 12월 양식조리기능사에 합격했고, 올 3월에는 중식조리기능사도 취득했다. 아내도 올해 6월 미용사 국가기술자격증을 땄다.

‘전국’ 단위로 커진 봉사 포부는 그의 힘으로는 벅차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유튜버에 대한 꿈은 없어요. 전국 소외지역에 다니려면 캠핑카나 유류비 등이 필요해요. 그런 부분을 협찬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채널을 개설했습니다. 또, 또래 중장년들에게 ‘인생 2막에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하고 인사이트를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에게 남기는 우리 부부의 기록이기도 하지요.”


봉사는 ‘찾아가는 것’…단 1명이 있어도 찾아갈래


김호겸씨가 경기도 이천의 한 요양원에 찾아가 음악 봉사를 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김효겸의 유랑악단’ 갈무리


봉사 13년 차 ‘프로 봉사자’이지만 그가 오는 시간 만을 기다리는 어르신을 위해 아직도 매주 두 번씩은 색소폰을 연습한다. 어느새 그가 연주할 수 있는 노래 목록에는 120곡이 찼다. 봉사 1회에 27~30곡 정도 연주하는데, 음악에 질리지 않게 동요부터 ‘이별의 부산 정거장’, ‘봄날은 간다’와 같은 트로트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들려드린다. 그가 이렇게까지 봉사에 열심인 이유는 무엇일까.

“봉사는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수단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사실 음악은 TV나 라디오에서 더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어요. 헤어 커트는 미용실 가면 더 세련되게 해주고、 음식은 평점 높은 식당에 가면 얼마든지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요. 하지만 ‘나를 위해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요. 어르신들은 ‘나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찾아오는 봉사자를 만나는 것’을 좋아하세요. 제가 연예인도 아닌데 25~30분씩 앉아 계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봉사에 이렇게 열심이니 “벌어 놓은 돈이 많으냐”, “은퇴 자산을 얼마나 모았느냐” 등 주위의 오해도 사기도 한다.

“돈이 많아 봉사하는 게 아니에요. 70세까지 일하고 나면 그 뒤에 제가 진짜 원하던 봉사를 할 수 있을까요. 전 자신 없어요. 그럼 제 삶은 없잖아요. 궁핍해지면 그때 재취업을 알아보려고요. 저희 부부는 100만 원으로 두 달은 살 수 있어요. 일단은 체력이 되고, 어르신 얼굴에 웃음을 볼 수만 있다면 1명의 어르신이라도 찾아가 음악을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정예지 기자
yeji@rn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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