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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해도 밝게 살아야죠"

[봉달호 작가]

'매일 갑니다, 편의점' 저자

아버지 편의점 창업 말리려다

본인이 8년째 점주 생활

편의점 일상 유쾌하게 풀어내


하루에 한번 정도 꼭 들리는 곳. 바로 편의점이다. 한 때 은퇴한 직장인들이 치킨집 못지 않게 창업을 했다가 ‘쓴 맛’을 본 곳이기도 하다. 서울 잠실에서 프랜차이즈 편의점을 운영하는 봉달호 씨는 손님이 없는 시간을 쪼개 에세이 ‘매일 갑니다, 편의점’을 썼다. 점주의 시각으로 동네 상권과 유흥가, 오피스 상권 편의점의 장단점, 특가 세일 진행 과정 등 직접 편의점 일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진열해 놓은 줄을 망가뜨리며 뒤에 있는 물건을 꺼내 가는 손님을 몰래 욕하기도 하고, 무엇이든 진열해 버릇하는 직업병 때문에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사람을 머릿속으로 재배열해봤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선 절로 웃음이 나온다. 라이프점프가 편의점주와 작가로 두 개의 삶을 사는 그를 만났다.



-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책을 쓸 시간이 있나.

“그렇다. 기자들도 데드라인이 가까워져야 기사 마감이 잘 되지 않느냐. 글을 쓸 때 데드라인을 정해 놓는 편이다. 바쁠 때 오히려 글이 잘 써지더라(하하)”

- 손님 없는 시간을 주로 활용하나.

“매일 아침 6시에 편의점 문을 연다. 상품을 진열하고 나면 7시다. 보통 오전 8시부터 손님들이 몰린다. 하루 중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한 시간이 글을 집중해서 쓸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다. ‘매일 갑니다, 편의점’ 처럼 주로 에세이를 쓴다. 편의점에 오는 손님들을 보며 떠올린 생각들을 적는 셈이다. 일이 바빠야 소재도 풍성해지고 글도 잘 써지는 것 같다.”

- 책을 내게 된 과정이 특이하다.

“맞다. ‘매일 갑니다, 편의점’은 시공사라는 대형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냈는데, 사실 책을 출판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몰랐다. 그냥 단순하게 편의점 근무를 하면서 틈틈이 써놓은 습작을 모아서 출판사에 한번 보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판사에 투고하려면 A4용지 한 장에 책 내용을 요약하는 게 기본인데, 그것마저 지키지 않았다. 에세이를 통째로 보냈다. 메일 제목도 ‘한번 읽어보세요’ 정도의 문구가 다였다. 나중에 출판사 담당자가 알려줬는데 대형출판사의 경우엔 작가 지망하는 사람들로부터 한달에 수천 건의 투고가 쏟아진다고 하더라. 그중 절반은 읽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간다는 것도 뒤에 알았다.”

- ‘매일 갑니다, 편의점’을 읽어보면 톡톡 튀는 발상과 위트가 인상적이다. 출판사가 재야의 고수를 찾은 느낌이다.

“아니다. 운이 좋았다. 그동안 편의점을 주제로 한 글들을 내용이 대부분 어둡거나 힘들거나 우울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쓴 글들은 접근 방식이 달랐던 것 같다. 현실의 삶이 어려워도 그 속에서도 밝고 유쾌한 내용을 끄집어 내고 싶었던 거다.”

- 책을 내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출판이나 언론사 기고 의뢰,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즐거운 비명일 수 있지만 인건비는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 편의점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아버지가 한국에서 식당만 30년 넘게 운영하셨다. 연세도 있고 해서 식당일을 그만 두고 편의점을 하겠다고 하시더라. 2013년에 이 건물(잠실 삼성SDS 동관 향군타워) 1층 상가를 분양 받으셨다. 난 당시에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말려야겠다’는 생각에 귀국하게 됐다. 그때만 해도 방송이나 신문에 편의점 주인들이 밤새 일해도 남는 게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뉴스들이 종종 나왔다. ‘아버지 연세가 일흔인데 죽더라도 내가 죽는 게 낫겠다’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 아버지가 상가 분양을 받으신 거면 편의점 운영도 수월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이 건물에 삼성SDS도 입주하고 업체들이 꽉 차 있지만 2013년만 해도 30층 가운데 6개 층에만 회사가 들어와 있었다. 그땐 혼자서 편의점 문을 열고 자정까지 일했다. 지금은 프랜차이즈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당시엔 개인 편의점이었다. 6개월을 밤낮없이 일했다. 건물에 사람이 없는데 장사가 될 일 있겠나. 일이 끝나면 근처 포장마차에 가서 혼자서 소주를 서너 병 갔던 것 같다.”

- 중국에서 생활했다고 했는데 편의점을 운영하기 전엔 무슨 일을 했나.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다. 뒤늦게 졸업하고 상경해서 북한인권 관련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가로 일했다. 그러다보니 중국에 자주 왕래하게 됐다. 심양과 천진을 주로 오갔다. 장사꾼의 피는 속이질 못하겠더라. 중국에서 두 번 사업을 해봤다. 그런데 모두 실패했다.”

- 무슨 업종이었나.

“처음엔 한식당을 했다. 이것 저것 다 만들어서 팔았다.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망했다. 두 번째는 미용실을 열었다. 서른 무렵인 2004년만 해도 중국에 한류열풍이 상당했다. 한국 연예인 헤어스 타일로 마케팅을 해서 장사가 꽤 잘됐다. 경대(좌석)도 100개 정도 설치했고 직원 수도 많을 때는 60명 정도였으니. 그런데 욕심이 과했던 것 같다. 2호점까지는 잘됐는데 무리하게 3호점을 확장하다가 쫄딱 망했다. 친척들에게 빌린 돈도 있어서 어떻게든 갚고 싶었다. 중국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대형마트의 물류 일부터 몸 쓰는 일은 다해봤다.”

- 편의점은 올해로 8년째를 맞았으니 궁합이 맞나 보다. 매출을 공개해주실 수 있나.

“장사는 잘 되는 편이다. 아무래도 대기업이 입주한 건물에 있다 보니. 구체적인 금액을 말하긴 그렇고, 집에 살림비 주고 아르바이트생과 내 월급을 넉넉히 줄 수 있는 정도다.”


-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사람을 다루는 일이 제일 어렵다. 편의점은 혼자서 못한다. 사람이 필요한 업종이다. 하지만 사람 쓰는 게 내 마음 같지 않더라. 편의점의 포스기를 다루는 법, 물건 발주하는 법 등 기본 업무에 익숙해지려면 2~3개월은 걸린다. 그런데 꼭 그 즈음 되면 그만 두는 사람이 생긴다. 편의점을 하면서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게 ‘친절’인데 가끔 손님들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친구들도 있다. 이런 건 컨트롤이 잘 안돼서 힘들다.”

- 지난 몇 년 간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편의점주들의 반발이 거셌다. 작가님의 생각은 어떤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선 나름의 생각이 있지만 언급을 자제하는 편이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최저임금의 경우 업종별 차등화는 필요하다고 본다. 실제 편의점 업계 어렵다. 나는 이제 안정권에 접어들었지만 편의점 업주 모임에 나가면 최근 1~2년 사이에 부쩍 어려워진 가게들이 많다. 7년 전 처음 편의점 업계에 발을 디딜 때만 해도 모임 한번을 하면 점주들이 10명 이상 나왔는데 지금은 많아야 3명 정도다. 편의점을 여러 개 운영하는 이른바 베테랑 점주들은 이미 ‘손절’하고 다른 업종으로 옮겨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 편의점을 열 생각이 있는 4050 예비창업자에게 조언을 해달라

“솔직히 얘기해도 되나.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그래도 하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사실 내가 편의점과 관련된 책을 쓰는 이유도 편의점 함부로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것도 있다.”
/서민우기자 ingaghi@lifejump.co.kr

※ ‘라이프점프’는 국내 최초의 경제지인 서울경제신문이 론칭한 4050세대의 이직·재취업, 창업·창직, 겸·부업 전문 미디어입니다. 라이프점프는 ‘일하는 행복, 돈 버는 재미’를 이야기합니다

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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