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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노하우 피크인데···4050, 재취업땐 '반토막 급여' 移職 망설여

[라이프점프 창간기획-4050 일자리 연장의 꿈]

<중>4050 일자리 미스매치는 현재진행형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자신의 경력을 살리거나 평소 하고 싶었던 분야에 도전하는 4050세대들이 늘고 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중부캠퍼스의 라디오PD 과정에 참여한 4050세대들이 강사의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50플러스재단



# 금융권에서 20년 일하다 지난해 명예퇴직한 김영진(가명·48세)씨는 최근 국내의 한 전직지원 서비스 기관의 출입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김씨는 특별퇴직금으로 2억원가량을 받았지만 고등학생 자녀 둘의 학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가 빠듯해 재취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컨설턴트와 미팅 날짜를 잡고 현장까지 찾아갔다가 포기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이 없어 구직하러 다니는 모습이 남들에게 ‘루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중소기업에 취업해도 전 직장의 반토막 수준의 급여로 가족을 부양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들었다. 김씨는 고민 끝에 컨설턴트에게 ‘죄송하다.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며 거절의 문자를 보냈다.

# 반도체 중소장비업체 A사는 지난해 반도체 산업 호황으로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A사 대표는 ‘회사가 잘 나갈 때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체계적인 재무관리와 경영 전략을 수립할 전문 인력을 채용하기로 했다. 전직지원 기관에 금융 관련 대기업에서 15년 이상 일한 경력자를 뽑아달라고 의뢰했다. 두 달여를 기다린 끝에 적임자가 있다는 기관의 연락을 받은 대표는 뛸 뜻이 기뻤지만 며칠 뒤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재취업하기로 한 사람이 사정이 생겼다며 회사에 오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A사 대표는 “40~50대 실직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의문”이라며 “40~50대 전문 경력자를 뽑는 게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토로했다.

노하우 뛰어나고 일 의욕 많지만

가족부양 의무 위치, 저임금 기피

전문성 이어갈 양질 일자리도 부족

4050세대는 우리 경제·사회의 중추로 전문성·경험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뛰어나다. 일에 대한 책임감과 의욕도 높아서 기업들의 구인 수요도 크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 4050세대의 일자리 미스매치는 현재 진행형이다. 기업들은 “뽑고 싶은데 사람이 오질 않는다”고 아우성인 반면 4050 구직자들은 “옮길 만한 곳이 없다”며 혀를 내두른다. 이런 간극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4050 세대 가족부양 의무…저임금 기피=4050은 평균 소득이 가장 높은 연령층이다. 통계청이 15일 내놓은 ‘2018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결과’를 보면 40대의 평균소득은 365만원으로 다른 연령대와 견줘 가장 많다. 이어 50대가 341만원으로 뒤를 잇고 있다. 이는 4050의 재취업이 어려운 이유로 작용한다. 명목상 평균 소득만 높을 뿐 자녀 교육과 생계 등을 책임지느라 가처분 소득은 낮아졌기 때문이다. 저임금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기업 규모별 임금근로자의 평균 소득을 보면 중소기업은 231만원으로 대기업(501만원)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대기업 근무 경력이 있는 전문성을 갖춘 40~50대를 원하지만 급여 수준이 맞지 않아 옮기지 못하는 4050세대들이 많다는 것이다. 임수정 노사발전재단 서울센터 소장은 “재취업을 고려하는 4050세대가 현실에서 부딪히는 가장 큰 벽이 바로 생계비”라며 “특히 대기업을 다니다 이직을 준비하거나 퇴직 예정인 근로자들이 이전 직장 대비 급여 수준에 가장 민감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자리 미스매치의 원인을 임금에서만 찾는 것은 단편적인 접근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4050세대에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실제 서울경제 라이프점프가 대기업과 금융권에 종사하는 근로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 ‘직장 조기졸업 후 일자리를 갖게 될 경우 적정한 소득 수준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이전 소득의 70% 수준’이라고 답한 비율이 27.3%(27명)로 가장 많았다. 이어 ‘50% 수준’이 23.2%(23명), ‘60% 수준’ 21.2%(21명), ‘80% 수준’ 17.2%(17명) 등의 순이었다. 자신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계속해서 이어갈 수만 있다면 일정 부분 급여가 줄더라도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는 의미다. 안선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서부캠퍼스 일자리지원실장은 “40~50대에게 300만원씩 3년간 일할 수 있는 직업과 200만원씩 5년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제안하면 대부분 후자를 선택한다”며 “급여 수준도 중요하지만 4050에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전문성을 얼마나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느냐 여부”라고 해석했다.

노동유연화·직무중심 개편 시급

전직 교육·숙련창업 유도도 필요



◇ 전직서비스 지원 강화·숙련 창업 유도=하지만 4050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단번에 만들어낼 수 있는 ‘요술램프’는 없다. 우리 경제가 과거처럼 더 이상 고속 성장을 하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는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고용 창출의 부담을 지우는 데도 한계가 있다. 결국 중장기적으로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으로 경직돼 있는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직무능력 중심으로 임금체계가 개편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경직된 고용 상황에서 4050세대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거나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의 노무 담당자는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이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한번 정규직이면 은퇴할 때까지 고용이 보장된다”며 “전체 파이가 커지는 속도가 예전 같지 않다면 그 안에서 손바뀜이 활발하게 일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면 여러 회사와 근로 계약을 맺고 활동하는 ‘공유 고용’ 방식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홍선 서울시50플러스재단 사업개발팀장은 “4차 산업혁명과 산업 구조 고도화의 영향으로 미래의 일자리는 지금처럼 개인과 회사가 1대1로 고용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면서 “1인 프리랜서처럼 자신의 커리어를 짜 나가면서 여러 기업에 용역을 제공하는 공유 고용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는 5월 전직지원 서비스법(고령자고용법) 시행을 계기로 기업들도 근로자의 재취업 교육을 체계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임 소장은 “1,000명 이상 대규모 사업장에서도 전직서비스 교육을 실시하는 곳은 전체의 17%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퇴직에 임박해서 우왕좌왕하지 않고 미리 자신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기업들도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4050세대의 숙련창업을 유도하는 것도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대안으로 제시된다. 그동안 정부의 창업 정책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진행돼왔다. 실제 지난해 정부의 창업지원사업 통합공고를 보면 청년창업 예산은 1,300억원으로 중장년(360억원) 대비 3배 이상 많았다. 하지만 청년창업은 50% 이상이 도·소매, 숙박·음식점 등 생계형 창업이 차지한데다 기술기반 창업이 감소하는 등 혁신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면 중장년 창업은 창업기간의 생존기간이 길고 고용성과도 우수하다.

특히 대기업·공공기관·금융기관 출신의 4050세대가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창업·창직에 나설 수 있는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서경란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중장년 창업정책 관련 예산을 확대하고 대학 교육과정에 창업실무 평생교육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4050세대의 전문성을 활용한 숙련창업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되면 4050의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와 양질의 일자리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우·박해욱기자 ingaghi@

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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